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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9일 수요일

[Vietnam 사회적기업] '청년 개발 핸디 크래프트'의 매력녀, 찌찌(chi chi) 예찬론

* 이 글은 여행대안학교 '로드스꼴라' 4기의 베트남&라오스 여행 문집에 실린 글입니다.


< 매력녀, 찌 찌(Chị Chi) 예찬론 >

- 로드스꼴라 길별, 부탄


*베트남어로 Chị는 손위 여성의 이름 앞에 붙이는 호칭이다. ‘찌 찌(Chị Chi)’는 베트남어로 ‘찌 언니’라는 뜻이다.



”저… 아직 학생들이 자고 있지 않다면, 내가 살짝 들어가도 될까요?”

갓 샤워를 마치고, 촉촉한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 안은 찌찌가 여자 방문 앞에서 멈칫하며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아 그럼요. 들어오세요.“

깻도안 사무실의 2층 창고에 정성스럽게 마련해주신 잠자리 위에서 다 같이 헤벌레 누워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있던 아이들은 찌찌의 갑작스런 방문에 스물스물 이불을 둘러매고 일어났다.

“오늘 어땠나요? 피곤하죠?”

이곳 ‘깻도안 누에, 커피 농장’의 공정여행을 책임지고 있는 찌찌가 엄마 미소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첫 만남부터 아이들에게 ‘언니라고 불러요’라고 쿨하게 말했지만, 사실 누가봐도 엄마 혹은 이모 뻘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열심히 언니라고 불렀지만.

“아니요오오오… 괜찮아요오오오…”

저런, 영혼 없는 대답들. 내가 민망한 미소로 찌찌를 바라보자, 그녀는 다 안다는 듯한 눈빛으로 다시 함박 미소를 띄운다.

“제가 사실 오늘 여러분에게 할 말이 있어요.”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중하게 입을 여는 찌찌의 말에 아이들이 눈이 반짝인다. 그녀는 분명 사람들을 주목시키는 무언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작은 다락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선이 고정된 가운데 찌찌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저는 어릴 적에 베트남 남부 메콩강 근처의 빈롱(Vinh Long)성에 살았어요. 우리 동네는 매우 가난했고, 우리 집도 매우 가난했죠. 열 일곱 살쯤 되어 나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호치민시(Ho Chi Minh City)로 나와 공장에 들어갔죠. 내가 처음 일하게 된 공장은 한국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그 공장은 굉장히 열악했어요. 근무는 새벽부터 시작해서 밤늦게야 끝났죠. 쉬는 날도 없었구요. 공장 옆의 컨테이너 기숙사에서는 요만한 작은 방에 여러 명이 꽉 차서 자야만 했죠. 선풍기, 냉장고는커녕 화장실도 공용이었고, 뜨거운 물도 없었죠.

베트남에서는 임신을 하면 4개월간 출산휴가를 받고, 보험금으로 수당도 받고, 출산 후 당당히 돌아와서 일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장님은 그러지 않았어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4개월의 출산 휴가는 커녕 출산 수당을 다 받지도 못했고, 출산 후에 다시 못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어요. 베트남에서는 당연한 건데 말이죠.

내 친언니가 재봉기술자로 나보다 먼저 일하고 있었는데, 몇 년간 그곳에서 일하면서 몸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그런 환경 속에서 몇 년을 고되게 일을 하니 몸이 성할 리가 없죠. 나는 그 상황과 우리 언니를 보면서 8개월 만에 그 공장을 그만두었어요. 언니의 지금 모습이 몇 년 뒤 내 모습일 것만 같았어요. 나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으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죠.”




잠시 모두의 침묵이 흘렀다. 창 밖의 매미 우는 소리, 문 밖에 남자 애들이 떠드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어릴 적, 나는 두 개의 나라를 너무 싫어했어요. 하나는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싫어하는 중국. 그리고 다른 하나는… “

“한국이요?”

한 아이가 되물었다. 그러자 찌찌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한국. 내 고향 빈롱에서는 한국으로 시집가는 여자들이 많았어요. 어릴 적부터 나는 늘 한국으로 시집을 가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자라왔고, tv에서는 한국으로 시집 갔다가 남편에게 맞거나 죽은 베트남 여성의 이야기가 나왔어요. 나는 그때부터 한국이라는 나라가 싫어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첫 직장인 호치민시의 한국공장에서 일하면서 한국이 더 싫어졌어요.”

아이들 얼굴에 조금 당황스런 빛이 돌았다. ‘이런 얘기를 왜 하는 거지?’라는 궁금증 어린 표정부터 ‘안 됐네..’라는 공감의 표정까지. 나 역시 이번 베트남 여행 중 처음 맞는 낯뜨거움 이었다.




사실 내가 2년 동안 지냈던 하노이 외곽의 시골 마을에서조차 한국에서 일하다 온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앞집 아줌마의 조카, 슈퍼 아주머니의 친척 동생, 동네 쎄옴(오토바이 택시) 아저씨… 등 한국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귀국 이주 노동자’들이 그 당시 ‘한국인 이주노동자’ 신분이었던 내 주변에 널려 있었다. 넉살 좋은 하노이 사람처럼 그들과 한바탕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한국생활이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는 모두들 하나같이 ‘한국 이쁘다’, 한국 깨끗하다’, ‘한국사람 똑똑하다’ 정도의 대답뿐, 정작 내가 궁금해 한 그들의 진짜 한국 생활에 대한 사담은 일체 들을 수가 없었다. ‘좋은 게 다 좋은 거다’ 라고, 앞에서 얼굴 붉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의 성향 덕분에 더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옆에서 이야기하는 이 여자를 보라. 이렇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쏙쏙, 그것도 직구로 시원하게 던져줄 수 있는 베트남 여성을 만난 건 나 역시 첫 경험이었다. 찌찌의 당돌함에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간 대답 없이 반복되었던 내 질문들이 방향을 찾은 듯 하여 나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다면 불편했을 수도 있을 이야기를 찌찌는 솔직하게 이어나갔다.

“’아맙(AMAP)’이라는 단체를 만났어요. 어느 날 우리 ‘청년 개발 핸디 크래프트’ 사무실로 구수정 선생님과 권현우 선생님이 찾아왔죠. 그리고는 그들이 중부에서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을 알게 되었어요. ‘아, 이런 한국 사람들도 있구나’, ‘한국인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한국에 대한 마음을 열고 그들이 하는 일을 응원하게 되었고, 이렇게 오늘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여러분은 제가 처음 만난 한국 청소년들이에요. 근데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하면서 한국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라는 하나에요. 하하하하 맞아요. 중국이에요.”

베트남 내 큰 중국 공장들의 열악한 노동자 환경, 그리고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아직 중국은 좋아할 수 없겠다면서 호탕하게 웃는 찌찌, 그녀를 보고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비친다.



* * * * *



내 베트남 이름은 ‘링(Linh)’ 이다. 4년 전 처음 하노이에 도착해서 만난 베트남어 선생님이 이름을 지어달라는 내 요구에 귀찮은 듯,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 이름을 준 게 시작이었다. 그 후로 베트남에서 나는 줄곧 ‘링’ 이었다.

“링, 내가 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농민들과 함께 협동농장에서 커피나무를 자르고, 뽕잎을 따는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마당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내 옆으로 찌찌가 슬그머니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학을 가서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었어요. 영어선생님을 구한다길래 찾아 갔는데, 길거리 비닐하우스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죠. 부모가 없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놀며 지내는 곳이었는데, 저는 3일째가 돼서야 그곳에서 저한테 급여를 줄 수 있는 형편이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자원봉사자를 모집한 것이었죠. 저는 당장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다른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그만둔다고 말했어요. 아이들은 펑펑 울더군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구할 때까지 며칠만 더 있기로 했는데, 그게 며칠이 되고, 몇 주가 되고, 몇 달이 되더니, 결국 몇 년을 그곳에서 활동하게 되었지요. 하하. 다행히 그 간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했구요. 차비조로 한 달에 만 원 정도를 주었지만, 일주일에 두 번씩 그곳에 갈 때마다 과자니 우유니 사가느라 정작 제 돈을 더 써야만했죠. 수년간 활동하면서 아이들이 자랐고, 그때 처음 초등학생으로 만났던 친구들은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죠. 저기 투이(Thuy) 보이죠? 투이 저 친구도 초등학생일 때 그 비닐하우스에서 저를 처음 만났어요.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다가, 저희 ‘청년 개발 핸디 크래프트’의 정식 직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한쪽에서 열심히 짐을 나르고 있는 활발하고 성격 좋은 스물다섯의 투이(Thuy). 호치민에서부터 우리의 럼동성 깻도안 공정 여행을 찌찌와 함께 준비해 온 친구다. 늘 함께 있으면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득 내 뿜는 이 젊은 친구가 찌찌의 첫 학생이었다니, 이 공간에서 풍기는 오랫동안 묵힌 연대의 느낌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쩐지 ‘찌찌(찌 언니)’라고 해도 될 법 한데, 투이는 늘 ‘꼬찌(찌 선생님)‘ 이라는 호칭을 쓰더라니..

“그러다 저는 대학원에서 국제개발(International Development)을 공부했어요. 그리고는 베트남의 여러 로컬 NGO에서 PM(Project Manager)로 일을 하게 되었죠. 덕분에 필리핀에서 1년간 더 공부를 할 기회도 있었고요. 기존 국제개발 NGO의 한계를 느꼈어요. 다양한 지원으로 자립을 돕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그들 스스로의 힘을 합쳐, 함께 천천히 성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제가 일하는 ‘청년 개발 핸디 크라프트’는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수공예품을 만들고, 공정여행을 진행해요. 호치민 시내에 사무실과 수공예품 매장은 있지만, 작업장은 일부러 호치민 외곽에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줄어든 임대료로 작업장 옆에 노동자들의 숙소를 만들었어요. 저희 기숙사엔 선풍기와 냉장고, tv도 마련되어 있어요. 물론 각자 잘 수 있는 공간도 넉넉하고요. 그리고 임신한 여성, 출산 휴가를 받은 여성, 그리고 출산 후 갈 곳이 없는 모든 여성 노동자들이 언제든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지요.“




이미 열 명 남짓한 직원 중에 2/3 정도가 임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내내 과거 한국공장의 노동자였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는 듯 했다. 그리고 몇 번씩이고 기숙사의 설비와 이용 환경을 자랑하며 그녀가 자신의 일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한 때 노동자의 신분으로 상처를 받았던 그녀가 어느새 지금은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고, 그들로부터 힘을 얻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 그녀의 소망은 좋은 회사를 다니는 것도, 이제 갓 8개월 된 딸아이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닌, 여성 노동자들이 지금처럼 편안한 환경에서 계속 어울려 즐겁게 일하고, 올 해 깻도안의 커피와 누에 수확량이 더 많아져서 모든 조합 노동자들의 임금이 조금씩 올라가는 것이었다.

땀 흘려 일한 만큼의 노동의 힘을 아는 그녀, 나 혼자 아니라 함께 어울려 잘 사는 법을 꿈꾸는 그녀, 한국에서 온 청소년들을 위해 계획에 없던 ‘짜죠(베트남 만두)’ 요리 교실을 만들고 40인분의 김치를 직접 담궈 멀리까지 가져와 조심스레 내미는 그녀, 아무리 돈을 많이 주는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 이렇게 당돌하고도 푸근한 ‘찌 언니’, 내 어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매력녀 찌 언니와 함께하는 베트남 요리교실  @choi yuri


2013년 5월 22일 수요일

[Vietnam, Laos] 39일간의 로드스꼴라 여행 - making film

로드스꼴라 4기 길가온2 과정 - 여행 메이킹 영상

; 2013.4.14 - 5.22 / 베트남, 라오스 38박 39일 :>




연출 : 하늘&부탄
촬영 : 로드스꼴라 4기 떠별, 길별
편집 : 하늘
BGM : 두번째 달 'Ag Danhsa leis an Ghaoth'
Running Time : 00:04:32






<베트남 남부>

HCMC - Cu Chi - HCMC - Ca Mau - HCMC - Lam Dong














<베트남 중부>

Quang Ngai - Quang Nam - Hoi An - Hue - Quang Tri









<베트남 북부>

Ha Noi - Mai Chau - Ha Noi (Bus to Laos)













<라오스 북부>

Luang Prabang - Vang Vieng Vientien











2013년 2월 4일 월요일

[Vietnam, Laos] 로드스꼴라 여행 답사

자도 자도 시간이 흐르지 않는 오랫만의 장거리 이동!! 내 이제 계란 한판 부터는 이딴 짓 안하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가 볼 가장 난 코스 중 하나인 이 장거리 이동을 미리 답사해 보기는 해야겠다는 신념하나로, 25시간을 누워서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예전에 하노이에 지낼 때, 알고 지냈던 한국 여행사 사장님이 이 버스 티켓의 가격을 묻는 나에게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거 가다가 사라지는 버스에요. 그냥 돈 더주고 비행기 타고 가세요!!" 



그때 아저씨가 말렸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세계 여행자들이 기피하는 난코스 중 하나인 베트남 하노이 - 라오스 루앙프라방 구간을 또 온 것이다. 내가 미쳤지..



오늘이 언제인지, 여긴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영혼을 반 쯤만 가진 채 나는 루앙프라방 시내로 뚝뚝을 타고 들어왔다. 야시장도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는 늦은 시각, 왠일인지 예전에 묶었던 허름한 게스트하우스 문 앞에는 모두 'full'이라고 써 있는 종이가 매정하게 휘날렸다. 여행자들이 넘쳐나는 덕에 숙소도 모자르고, 한국 여행사의 단체 관광객 어르신들도 여기저기 자주 마주치고, 비엔티엔에는 외국인 상대의 강도 사건들이 많아지고 있다니... '라오스 이녀석, 너무 열렸구나' 하는 섭섭합이 훅 다가왔다. 흑흑. 간신히 가정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의 방 하나를 잡고 누워보니, 허리가 아파 잠도 오지 않고, 오히려 지난 베트남 답사 2주의 단상이 떠올랐다. 조잘조잘 떠들어 봐야지.





* * * * * * * * * * * * * * *




1. 여 행 명 : 로드스꼴라 4기 길가온2 과정 베트남, 라오스 답사

2. 대상, 인원 : 총 1명 (최유리)

3. 일 시 : 2013년 1월 15일(화) ~ 2013년 2월 4일(월), 총 19박 21일






#1

HOTPOT, Tra Viet, KoTo, Life Art, To He, Tay Bac, Craft Link... 등등 멋찐 일을 꾸미고 진행해 오고 있는 베트남의 젊은(?) 사회적 기업가들을 만나고 왔다. 이미 베트남 내에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호치민은 물론이고 하노이의 사회적기업가들까지 소개소개 받고, 새로운 베트남 사람들을 만나 열정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한 발짝만 더 그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더 새로운 인연들이 있고, 더 많은 배움이 무한 할 것 같다. 물론 직접 그 안에 들어가 깊은 만남을 하게 되면, 양쪽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지금과는 또 다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Tra Viet의 베트남 전통 다도체험


To He 작업실에서 Nguyen 대표






#2

오래만에 찾은 호치민 모스크 앞의 하랄 음식점. 바로 옆에 세련된 하랄 음식점과 일본 식당이 생겨서 언제부터인지 손님이 적어진건 눈에 띄였는데, 이번에 가보니 변해도 너무 변했다. 인테리어나 서비스는 조금 부족해도 늘 옹고지게 앉아게신 시크한 '인도 주인 할머니'와 '음식 맛'만은 인도에서 맛 본 정통 커리 식당 같았는데, 이번에 먹어보니 이건 뭐 인도 음식인지, 벳남 음식인지... ㅠㅠ;; 에잇, 이젠 나도 안갈란다.

보기와는 다르게 의미 심장한 맛
무슬림 분위기 물씬 나는 식당 벽의 액자




#3

하노이 빠리바게뜨겐 바게뜨가 없다? 호치민에만 있던 한국 프랜차이즈 빵집이 드디어 하노이에도 문을 열었다. 뜨레주르와 빠리바게뜨가 연이어 이곳저곳에 오픈을 했는데 이소식을 들은 왕년에 하노이 살았던 지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그럼 동네 로컬 빵집 다 죽겠네?" 그러게나 말이다. 근데 매장에 가 보니, 베트남 제빵류 중 최다 판매 품목인 '바게뜨'가 없다. 벳남 제과 업계의 상도를 지키는 것일까? 아니면 쫀득쫀득하고 맛있으며 가격까지 저렴한 베트남 국민빵 '바게뜨'를 따라잡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일까?



하노이에서 Viet 선생님을 만났다. 북한 함흥대학에서 6년간 공부하셨다는 선생님을 잠시나마 뵙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선생님의 촌철살인 멘트들에 여러번 감명받기를 여러번, 또박또박 정확하고자 하는 발음으로 해 주신 마지막 멘트엔 정말이지 탄성이..  

"Viet Nam- Han Quoc la anh em sinh doi cung mot benh. 한국과 베트남은 같은 병을 가진 쌍둥이 입니다." 


내 수첩에 빼곡히 무언가를 적어주시는 Viet 선생님






#5 

잠시 들르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 장기간 거주하게 되면 오히려 움직임이 더 한정되어, 매일을 여행자 모드로 살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나도 하노이 촌구석에 살 때는 몰았던 구석구석을, 이렇게 가끔씩 방문하는 동안 더 잘 찾게 되는 것 같다. 이번에도 여러번 가 봤던 호떠이(서호)를 다시 찾았는데, 가끔씩 큰 맘먹고 폭식하러 가던 부페 쪽이 아닌 호수 뒷 쪽 골목으로 가보니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유독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조용하고, 깨끗하고, 세련되 보이는 외관을 가진 집들이 많은 골목으로, 오토바이와 차가 거의 없는 거리에선 사람들이 여유롭게 조깅을 하고 있고, 각 집의 마당에는 수영장이 있고, 멘션에는 풋살장과 골프 연습장도 딸려 있었다. 그리고 아기를 목마 태운 각국의 엄마 아빠들이 공원에 큰 개를 데리고 나와 산책시키고, 일본, 폴란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의 다국적 식당과 가게들이 모여있다. 마치 하노이의 '서래마을' 같구나.





#6 

베트남 북부의 화빙(Hoa Binh)성은 고산지형과 선선한 날씨 덕에 꿀이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마이쩌우(Mai Chau)의 꿀이 맛있다. 그런데 그 마이쩌우 사람들이 진짜 꿀이라고 부르는 건 깊은 산 속, 몇개의 마을에서 나는 꿀 뿐이다. 그걸 나에게 누누히 일러주신 하오(Hao) 아저씨와 함께 그 중 하나인 Ban Te (떼 마을)에 들렀다. 아이들의 홈스테이를 부탁하러 간 집은 마을의 경찰 아저씨 집이었는데, 역시 타이족 관습대로 우리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술을 한잔 내미신다. 근데 요녀석 봐라, 달달하니 술에 꿀탄 듯, 꿀에 술탄 듯 너무나도 맛있다. 알고 봤더니 50도가 넘는 베트남 전통 곡주인 '지에우'에 아저씨 댁 1층에서 직접 양봉한 꿀을 섞어 보관하는 이 동네만의 비법이란다. 이런 귀한 손님 접대에 몇잔을 받아 마셨더니, 말 그대로 입에서 살살 녹는구나.


주인 아저씨와 집 앞에서 사진 찍는 뒤로 어마어마한 벌집들이!!






#7

베트남 중부의 후에 터미널에서 꽝찌에 가는 미니버스(우리나라의 봉고차 정도)를 탔다. 출발시간은 이미 지난 지 오래,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는 심사로 뒷문을 열고 차장이 몸을 반쯤 차문 밖으로 내민채 텅 빈 거리위를 걷는 한 두 명에게 열심히 호객행위를 한다. 덕분에 버스는 몇 십분 째 터미널 근처를 뱅뱅뱅 맴돌고 있다. 차장 옆자리에서 스무살쯤 되어 보이는 손자가 할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옆에 앉아 있런 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 앉아 있던 청년이 그 손자의 귓등을 손가락으로 '딱' 소리나게 때렸다. 앞에 있던 사람들이 뒤를 힐끔 쳐다보자, 뒤에 있던 청년은 태연하게 "귀에 벌레가 붙어서.."라고 말을 했다. 더욱 놀라운 건 뒤를 돌아봤던 손자와 할아버지 역시 '그런가보다' 하고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둘의 대화를 시작했다는 것. 역시 시크의 절정은 베트남 사람들!! 



버스가 네 바퀴 정도 터미널을 멤돌며 승객을 가득 밀어넣고 본격적인 출발을 할 때 쯤,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던 청년는 차에서 뛰어 내렸다. 그러고는 차가 멀어질때까지 길 위에서 할아버지에게 손을 흔들었다.



후에 터미널 미니버스 안에서 창밖 구경 중, 저렇게 실린 많은 짐들이 곧 승객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 할 예정




#8

베트남 중부 꽝찌(Quang Tri)성의 쩌린(중부 발음으로는 여린)현에 갔다. 꽝아이(Quang Ngai)성, 꽝남(Quang Nam)성은 가 봤지만, 고엽제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인 꽝찌성은 첫 방문이었다. 곳곳에 플랜테이션 농법으로 경작되기 시작했다는 고무나무도 신기하고, 후추나무도 신기했다. 나무에 한알한알 알린 후추 열매는 보기 전까지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것이었다. 



중부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투명하고 쫀득한 쌀국수 면이 아니라, 하얀색의 점성이 적은 쌀국수인 '분'을 주로 먹는다. 분을 활용한 유명한 음식인 후에(Hue)의 '분보'와는 또다른 맛의 분 쌀국수들이 있었다. 정말 맛있었고, 무엇보다 음식들이 정말정말정말정말 눈물 나도록 쌌다. 중부 물가가, 그 중에서도 이런 시골의 물가는 너무나 고맙도록 쌌다.


후추 나무의 후추 열매





#9 

북부는 서늘했고, 남부는 더웠고, 중부는 뜨거웠다. 베트남 남부-북부-중부-북부를 마구 오가면서 지난 2주 간의 내 체감 온도는 너무 자주 변했다. 심지어 중부 광찌(Quang Tri)성의 동하(Dond Ha)역에서 출발하는 하노이행 기차 6인실 침대칸에서는 미친듯이 틀어대는 에어컨에 온갖 욕을 하면서 흔지 않게, 잠자리를 설치기까지 했다. 나로서는 참 드문 일이다.   



아침이 되어 비몽사몽 눈을 뜨니 에어컨 냉기에 온 몸이 얼얼한데다가, 남부에서부터 북쪽까지 올라오는 동안 기온은 점점 내려가서 새벽녘 하노이의 냉기까지 밀려왔다. 지난 밤 번잡하게 꽉 차있던 6인실 침대칸 안에는 건너편 하노이 아가씨와 나 둘만 남아 있었다. 잔뜩 웅크린 채 굳은 몸을 어찌할바 몰라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데, 건너편 아가씨는 침대에 누운 채, 가방에서 온갖 도구들을 꺼내 머리에 뽕을 띄우고, 아이폰으로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그녀의 화려한 아침 치장은 기차가 요동을 치건 말건 하노이 역에 내릴때 까지 계속 되었고, 나는 신기한 듯 계속 그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꽝찌성 동하역의 밤 풍경 





#10

하노이발 루앙프라방 행 버스. 승객의 절반은 설을 맞이해 고향에 가는 라오스 유학생들과 일을 하러 가는 베트남 아줌마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베트남 여행을 마치고 라오스로 넘어가는 외국인 여행자들이다. 옆에 앉은 라오스 유학생과 한바탕 어눌한 베트남어로 대화를 하니, 가끔씩 오지랍 넓은 베트남 아줌마들이 둘 사이를 베트남어로 다시 통역해 주신다. 국경에 다다르자 절반의 승객인 외국인 여행자들이 비자피를 내기 위해 수속을 밟는 동안, 15일 무비자 한국사람은 버스에 먼저 돌아와 뿌듯하게 앉는다. 그것을 본 기사 아저씨가 한국인의 빠른 비자 수속을 축하하며, 버스 안에 있었다던 한국 노래를 틀어준다. "앗싸~ 돌리고 돌리고~, 승객 여러분 잠시 후 휴게소에 정차 할 예정입니다" 라는 멘트와 함께 쿵짝쿵짝 관광버스 메들리가 나온다. 





#11

초저녁부터 버스의 조명을 꺼버리는 통에 너무 어두워 책을 볼수도, 최대 140도 정도로 펴지는 의자 때문에 허리가 너무 아파 잠을 더 잘 수도, 고작 4시간의 밧데리는 이미 방전이 되어 영화를 더 볼수도 없게 되었다. 나는 말똥말똥 뜬 눈으로 느리게 가는 시계를 보면서 폭풍우에 배 멀미도 안하던 나에게 울렁거림을 느끼게 할 정도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25시간이나 오르내렸다. 어찌되었든 결국 이 미친 시간은 모두 흘러서 나는 무사히 루앙프라방에 도착했고, 어렵사리 숙소에 와서 짐을 내려놓고 나서야 기사 아저씨의 머리 위에 내가 가장 아끼는 모자를 얹어 놓고 온 것이 생각났다. 에잇 ㅠㅠ


푸시힐 초입에서 바라본 루앙프라방의 명물, 야시장
라오스어 동화책을 만들어 팔아 시골 아이들에게 책을 전달하는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