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주 잘 여행해야만 한다는 부담, 2년간의 생활을 잘 정리해야만 한다는 부담, 내가 왜 베트남을 사랑해야만 했는지 그 확실한 이유를 찾아야만 한다는 부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곳을 하나라도 더 담아가야 한다는 부담... 여행을 하던 중 언제부터인가 이런 것들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몸과 마음은 점점 쉽게 피로해졌다.
내가 편해야 한다. 더 놓아야 한다. 잠시 쉬어가자.
#2.
여행 안에서 그 여행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여행자 스스로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 그 모든 순간들에 너무 충실하려고 나머지 그것을 내 것으로 흡수하기 도 전 다른 것을 찾게 된다.
나의 여행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 찍고 찍고 움직이는 일부 한국 여행자들처럼 이동이 빠르다는 의미는 아니다. 매일의, 매 순간의 에피소드를 통해 내 교훈을 가슴에 받아들이고 정리하기도 전에 또 많은 것들을 시청각 기관에 담아 버리려고 한다. 넘치고 넘쳐 하나도 제대로 담지 못하게 된다. 하나도 놓치지 않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라도 제대로 담아가는 것 아닐까. 더 천천히.
#3.
며칠을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하노이에서 편하게 쉬고 있다. 베트남에서 이렇게 저렇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옆에서 보면서, 내가 과연 한국에 가서도 '지금처럼 내 고집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관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들.. 그런 이상들이 어쩌면 한국에서 동떨어져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이 아닐까 하는 겁이 났다. 나도 돌아가면 똑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 역시 아직 성숙치 못한 인간일 뿐이니까.
#4.
내가 생각하는 '국제개발', 혹은 '지역개발'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지속持續'이다. 그런데 그 거창한 '국제개발, '지역개발'이라는 말이 결국은 사람이 어울려 잘 살아가는 것에 대한 모든 활동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삶, 그리고 공동체의 삶을 빼놓고는 사실 아무것도 논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현장에서 계속 살아가는 주민들뿐 아니라, 잠시나마 일개 활동가의 역할로 살아왔던 내 자신의 삶에서도 '지속'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사랑', '가족', '건강', '일'…. 등 각자의 '삶'을 구성하는 이 모든 요소들이 '지속持續'없이 유한有限하기만 하다면 그게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모든 것은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나름의 유연한 '지속持續'은 필수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