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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3일 일요일

호떠이 (서호)의 October 카페를 가다

#1
문군이 느러지게 자느라 나는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거실의 온갖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도 하고, 집정리도 좀 했다. 왠일인지 일요일 아침공기는 상쾌하니 뭔가 다른 것만 같다. 

열한시가 넘어 스물스물 일어난 문군에게 빈 밥통의 실체를 말하자, 역시나 이때다 싶어 중국요리를 시켜 먹잔다. 음.. 중국요리는 한달에 한번 이상 안먹겠다는, 둘만의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으나, 먹은지 한달은 된 것 같으니 콜. 세트메뉴의 욕심에 못이겨 역시나 또 과하게 주문을 해 버렸다. 매번 우리가 시키는 세트메뉴에 젓가락이 세개씩 오는 걸 보니, 우리 둘이 먹은 음식은 3인분인 것 같다.


#2
어제부터 계획했던 오늘의 일정은 늦은 아점을 먹고 민속학박물관에 가는 것. 오늘은 일년에 한 번, 베트남 북부 소수민족여성의 수공예품 공정무역 사회적기업인 Craft Link에서 주최하는 소수민족 바자르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행사에 3년 전에 한번 가 봤는데, 소수민족과 관련된 전국의 여러 단체에서 모여 부스를 선보이고, 각 소수민족의 공연이나 흥미로운 참여 워크샵 등의 프로그램도 중간중간에 있었다. 게다가 이 기간 동안에는 Craft Link의 대부분의 제품을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나는 다행히도 어제 그 홍보물을 발견하고 오늘 가게 되었다. 

문군과 함께 오토바이에 오른 뒤, 확실한 주소를 찾기 위해 다시 그 홍보물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큰 실수를 깨달았다. 행사 날짜가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어제 행사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이런..


#3
우리는 급 계획을 바꾸어 UNIS(UN International School)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역시 오늘 국제하노이여성클럽 (IHWC)에서 주최하는 큰 바자르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처음 가 본 UNIS는 어마무시하게 큰 학교였다. 호떠이(서호) 옆에 붙은 신도시 지구 안에 위치하기도 했고,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학생들이 다니기 때문에 분위기 역시 다른 국제학교들과는 사뭇 달랐다. 학교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입장 표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섰다. 뭔가 이 체계적인 시스템에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쯤, 우리 앞의 앞 사람이 구매하려는 순간 표를 팔던 스탭 아줌마로부터 허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딱 만장을 출력했는데 지금 표가 다 팔렸어요. 규정상 만명 이상은 입장권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오늘은 제대로 꼬인 날인가 보다. 내키보다 훨씬 높은 천막으로 된 바자르 벽을 둘러봤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뾰죽한 수는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바자르에 내가 만나고 싶은 수 많은 엔지오와 사회적기업들이 부스를 차렸단다. 너무 아.깝.다... ㅠㅠ


#4
허망함과 섭섭함을 뒤로 하고 호떠이를 찾았다. 오토바이가 생기고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이다. 마음만 먹으면 차비 걱정 없이, 동선 걱정 없이 호떠이나 호앙끼엠 등 시내를 마음껏 오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드라이브를 마치고 우연히 찾은 이쁜 스튜디오 카페. 11월 어느 날에 만난 10월의 카페. 조용히 앉아 있으니 한바탕 해프닝이 별거 아닌듯 싶다.





9


   

  

2014년 11월 16일 일요일

Mon Hue - 하노이의 후에 음식 전문점

사건의 시작은 이러했다. 내가 우연히 한 포스팅에서 본 Banh Canh (방깡, 우동 같은 면의 후에음식)이 먹고 싶다고 한걸 문군이 기억하고는, 어느날 저녁 퇴근길에 Hue 음식점을 봤으니 가자는 것이다. 부랴부랴 찾아 갔건만, 글쎄 문군이 말한 Hue 음식점이란게 하노이에 있는 Pho(쌀국수)나 Bun Cha(분짜) 집만큼 널리고 널린 Bun Bo Hue(분보 후에, 소고기 뼈와 선지를 넣고 얼큰하게 끓인 후에의 대표적인 국수) 가게 였다. Bun Bo Hue 집의 메뉴는 보통 Bun Bo Hue 뿐이고, 내가 원하던 Banh Canh 은 하노이 아무가게에서나 안판다고 ㅋㅋㅋ 일부러 생각해서 말해준 문군이 고맙고 기특하면서도 지나가다 본 Hue 글씨 하나만 보고 여길 찾아온 우리가 너무 웃겼다. 결국 그날도 Banh Canh 먹기 도전은 실패!!


그리고 얼마전, 문군과 호앙끼엠을 다녀오는 길에 오토바이 위에서 이 식당을 발견했다. Mon Hue(몬 후에, '후에 음식' 전문점)!! 바로 '후에 음식'이라고 군더더기 없이 아주 깔끔한 뜻의 간판이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우리의 눈을 사로 잡았다. 대충 위치를 기억하고 (물론 심각한 방향치인 내가 아니라 문군이) 훗날 가볼 것을 기약 했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 드디어 찾아갔다. 나의 Banh Canh을 찾아서!! ^^


가족끼리 외식을 온 테이블도 많이 보이고, 호앙끼엠 구시가지(Hang Bong거리) 근처라 서양 관광객들도 많다. 가게는 아직 분점이 없이 이곳 한군데 뿐인듯 한데, 주말 저녁 몇개 층을 사용하는 홀은 모두 꽉 찼다. 메뉴니, 디자인이니, 인테리어니 세세하게 신경쓴 것이 보이고, 배달까지 해 준단다. 전화번호는 1000-1111 하지만 따듯한 음식들을 배달시켜 먹는 것이 가서 먹는 것만 하겠나 싶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잘 교육된 직원이 테이블 세팅을 도와준다. 앞에 깔린 종이에는 길거리에 쌔고 쌘 후에 지역의 대표 음식인 Bun Bo Hue의 변형된 몇 종류의 국수가 신상 메뉴로 홍보된다. 길거리에서 보는 그것과 다르게 참 사진을 세련되게 잘 찍었다. 사진만 보면 참 먹음직 스럽다. 직원은 그 종이 위로 젓가락을 사선으로 세팅해 준다. 처음엔 새로온 직원이 떨려서 잘못 놓은 건가 하고, 똑바로 재배치 하려고 했는데, 문군 앞에도 똑같이 젓가락을 배치해준다. 길거리에서 보는 그것과 다르게 참 사진을 세련되게 잘 찍었다. 매니저 발음도 남부 발음이고, 디자인이나 서비스에 하노이에서 보기 힘든 그것으로, 왠지 이 음식점 '호치민'에서 올라온 느낌이 팍팍 난다. 


* 첨부 : 역시나 위 명함 앞면 아래 'Huy Vietnam Group' 을 찾아보니, Mon Hue 뿐 아니라, Com Express, Pho Ong Hung 등 세개의 음식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회사이다. 2006년에 Huy Nhat 이라는 아저씨가 설립했으며, 나의 예상대로 Mon Hue는 호치민을 중심으로 시작, 총 31개의 매장 중 30개의 매장이 호치민에 있다. 나머지 한개가 바로 하노이에 있다. 어쩐지 호치민의 냄새가 풀풀 나더니.. ㅎㅎ



Bun Thit Nuong (분 팃 느엉, 분과 달달한 돼지고기 구이에 느억맘을 부어 비벼 먹는 국수) 

Banh Loc(바잉록, 새우 등을 안에 넣고 전분가루를 쪄 낸 떡)의 한 종류

이름이 기억 안남..;; 두툼한 라이스 페이퍼에 분국수와 야채(우리는 너무 좋아하지만 향채가 엄청 들어 있으니 주의ㅋ)를 넣어 말고, 위에 닭고기와 새우를 얹어 Mam Tom(맘똠, 새우를 발효 시킨 중부지방 소소)에 찍어 먹는 음식. 맘똠은 하노이 사람들도 못먹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집은 소스를 조금 약하게 만들어 대중화 시킨 듯. 

메뉴판에 엄지 척!! 그려진 추천 볶음밥 메뉴. 닭고기인줄 알았는데, 닭 껍질을 가르면 닭 살코기와 버섯과 야채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속이 꽉 찬 아바이 순대 맛이랄까. 근데 이미 이걸 먹기 시작할때부터 배가 불러있던 관계로, 객관적인 미각(원래도 있지도 않은)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ㅎㅎㅎ

Banh Canh (방깡, 국물은 얼큰하고 찐한 칼국수 국물같은 쫄깃한 우동면의 국수)

드디어 만났다. Banh Canh 요녀석!! 흑흑흑 ㅠㅠ 내가 시킨 것은 Banh Canh 중에서도 Cua(꾸아, 게) 어쩌구 저쩌구 하는 메뉴이다. 아주 도톰한 게살 완자가 일품!! 국물도 내 입에 딱 맞았고, 요새 추운 날씨에 찐하고 얼큰한 국물도 딱 좋았고, 두툼한 면발의 쫄깃한 식감까지. 내 스타일이야~~~~!! 물론 로컬과는 약간의 다른 맛과 풍미를 가하지만, 나는 하노이에서 누가 Banh Canh 먹고 싶다면 이집 추천이다!! ㅎㅎ


사실 메뉴판을 보니 후에 전통 음식이라 불리우는 것들도 있고, 기타 중부지역에서 많이 먹는 음식들로 적절히 구성되어 있다. 조리하는 곳도 오픈되어서 깔끔하다. 베트남 중부 지역의 음식을 궁금해 하는 손님이 오면 함께 오면 좋을 것 같다. 국수 하나의 가격은 50,000vnd(약 2500원) 정도로 로컬보다야 물론 더 비싸지만, 손님과 오기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다.


보라. 저 아오자이 입은 종업원 위의 전등갓을. Non La(논라, 베트남 전통 모자) 두개를 겹친 저 센스를..!! 저 전등 어디서 샀는지 다음에 꼭 물어봐야 겠다.


이상. 왠만해서 먹을거 포스팅을 하지 않는 나의 먹을거 포스팅 끝.


2014년 11월 13일 목요일

선택과 집중

#1.
드디어 내 노트북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기존에 쓰던 놈은 어느 순간 상판과 하판(키보드 부분)의 접는 부분이 뻐걱 하고 부러지더니, 한동안 테이프로 연명하다가 그만 잠깐 눌렸는지 모니터에 한줄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녀석의 증상은 아주 빠른 속도로 악화 되어 모니터 상부의 좌측, 전체 모니터의 약 1/3 정도 되는 부분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새 노트북을 구매하기로 했다.

마침 생일 선물을 고민하던 문군에게 나는 친절하게 노트북 구매 의사를 밝혔고, 그렇게 선물 받은 MSI 노트북은 내 노트북 역사상 '맥북' 유저 시절을 제외하고, 가장 고사양인 것이었다. 이제 내 삶에서 고사양의 노트북은 필요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가끔씩 반 강제적(?)으로 프로노보 하게 되는 디자인 및 영상 작업을 위해 조금 더 욕심을 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주 훌륭한 사실은 '넷북'을 제외하고 그간 내가 구입했던 노트북 중 요놈이 가장 저렴한 가격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디자인과 브랜드를 포기한 것이 한몫했다. 움하하하. 

그리고 한국에 있던 넷북을 친오빠 결혼식으로 베트남에 잠시 들어오는 '미'를 통해 전해 받고, 드디어 삼총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제 앞으로 며칠간 열심히 해야 할 일은 '선택과 집중' 모든 데이타를 합치는 일. 그리고 폐기할 놈은 폐기하고, 고칠 놈은 고치고.. 서둘러야 한다. 지금 잠시 미루면 영영 미루게 되는 일임을 알기에.

드디어 내 세개의 노트북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폐기할 것, 새로산 것, 수리할 것 @Choi Yuri

#2.
학교 다녀오는 중간에 늘 도로변에 과일을 쌓아놓고 파는 리어카 행렬이 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주 간격으로 과일의 종류가 바뀌며, 그때 그때 제철과일을 가져오기 때문에 요새 베트남 어떤 지역에서 어떤 과일을 수확하는지 바로 알 수가 있다. 게다가 바로 물건을 받아오는 탓인지 시장보다 싼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오늘 지나던 길에는 올 해 처음으로 딸기를 발견..!! 베트남 남부 달랏(고산지역)에서 수확한 딸기라는데, 키로에 250,000vnd(약 13,000원) 로 가격이 비싸다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구입했다. 조금 싸지면 더 사먹어야지.

하노이에 정말 겨울이 오나보다. 바람도, 풍광도, 사람들의 모습도, 그리고 이리 먹는 것까지 겨울이 다가옴을 느끼고 있다. 차근 차근 월동 준비를 해야겠다.

달랏에서 온 딸기님  @Choi Yuri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들

평소같이 학교 앞 육교를 건너고 있는데, 육교 위 구석에 베트남 아저씨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 길거리 취객이나 노숙자를 보기 어려운(물론 요즘엔 구걸하거나, 노숙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하노이에선 드문 광경이었다. 한국 같으면 전날 과음 후 거리에서 아침을 맞은 취객 정도로 단정하고 당연스레 지나쳤을 법한 상황이었다.

미동도 없는 아저씨 곁을 지나며 멈칫멈칫 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아저씨의 행상(?)을 훑어보았다. 맨발이었고, 발바닥과 손과 목덜미가 더러웠으며, 머리 위에는 벗겨진 헬맷이 놓여 있었다. 순간 가까이 가서 살펴봐야 하나 라는 고민과 동시에, 이 높은 육교 위에 있는 걸 보니 교통사고 일리는 없고, 30대 정도로 보이니 이유 없이 갑자기 쓰러진 노인 질환도 아닌거 같고, 더러워진 맨발을 보니 맨발로 걸어다녔다는 이야기고, 여기저기 행색이 남루한 걸 보니 이리 다닌지 꽤 오랜 기간이 흐른거 같고...

그 찰나에 엄청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 속을 스쳤는데, 실은 내 스스로 '내가 아저씨를 그냥 지나쳐도 되는 이유'를 찾고 싶었던 것 일지도 모른다. '만약 취한거라면 벌떡 일어나서 나한테 행패를 부릴지도 몰라. 그게 아니라도 내가 이 아저씨를 깨워서 무슨 말을 해야하지? 쓰러진 아저씨랑 얘기할 정도의 베트남어가 가능하단 말야? 아저씨가 일어나면 그 다음은? 맞아, 난 이 아저씨를 위해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도 몰라...' 이렇게 말이다.

그러는 사이 많은 학생들이 '눈 앞에 있는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것'인냥 평소처럼 육교를 건넜고, 나도 그렇게 쭈삣쭈삣 아저씨를 지나쳐 육교 반대편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작은 체구의 한 여학생이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여학생은 약봉지로 보이는 흰 봉투를 아저씨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숙여 아저씨 몸을 흔들었는데, 아저씨는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잠시 당황했던 여학생은 다시 조심스레 아저씨에게 봉투를 내밀며 뭐라고 이야기를 했고, 계속되는 흔들림에 아저씨는 결국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그 학생을 쳐다봤다. 처음에 아저씨는 봉지의 정체를 알지 못했으나, 학생의 계속되는 설명에 아저씨는 간신히 손을 올려 그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뒤돌아 반대편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고, 계단을 다 내려와서 다시 그곳을 올려다보니 여학생은 마지막으로 아저씨에게 뭐라고 일러주고 천천히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육교를 건넜다. 아저씨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누워 있었으나, 여학생이 준 봉투를 가슴에 꼭 안고 있었다. 본것을 못본척 하지 않은 그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나에게 창피함을 일깨워준 그가 너무 고마웠다. 나는 이곳에 사람을 만나고 싶어 왔는데, 사람들과 손을 잡고 싶어 왔는데, 알고도 모르는척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게 아직 너무 많은 것 같다. 사람이 간사한지라, 마음 먹은 것과 행동이 참 많이 다르다.

하노이가 미친듯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지만, 이런 괜찮은 청년들의 그 작은 마음과 행동들은 부디 변하지 않기를. 삐까뻔쩍한 건물들은 위로만 높이 향해도, 우리의 시선은 옆과 아래를 향하기를. 오늘은 왠지 하노이가 더 사랑스럽다.

2014년 11월 6일 목요일

하노이 추위

저녁 외출에 후리스를 꺼내 입고, 밤에는 도톰한 솜이불을 꺼내 덮고 잤다. 그런데 하노이 최저 기온은 영상 20도란다. 이번주부터 종일 긴팔 긴바지에 것옷을 걸치고, 오랜만에 양말까지 신고 다니는 중이다. 조금 과한가 싶었는데 오토바이 위에 겨울 패딩를 입은 하노이 사람들이 보인다. 가죽잠바를 입고 장갑을 낀 사람도 간혹 있다.

이런, 추워진거 맞구나.



2014년 10월 26일 일요일

Flea market in Hanoi

날씨 좋았던 일요일, 
호떠이의 한 골목안 야외 식당에서 열린 Flea market.






몇개의 엔지오도 보였고, 재고 물건을 파는 젊은 상인들, 자신이 쓰던 소소한 구제 물품을 파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그림과 작품들을 선보인 예술가들까지. 규모는 아주 작았지만 오랜만에 예술시장 여행한 느낌 충만. 태국 빠이에서 워크샵을 하고 왔다는 한 청년의 물건들을 무지 저렴하게 구입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유난히 맑고 높은 하늘, 그 아래 황홀한 붉은 노을, 길 양 옆으로 녹음 가득한 고목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기분 좋은 시원한 바람. 해가 짧아진 건 너무 아쉽지만,해질녘 라이딩을 하면 아무 고민 걱정 없이 기분을 업시켜주는 하노이의 요즘 날씨는 떠나 보내기 아쉽다. 겨울아 제발 천천히 오니라~



2014년 10월 16일 목요일

전기세를 꼬박꼬박 냅시다!! - VNPT 사무실에서 밀린 전기세 내기

엊그제, 인터넷을 하다가 갑자기 이런 화면이 떳다. '지난 달 당신이 내지 않은 인터넷비 때문에 지금부터 인터넷을 끊겠소. 직접 찾아와 요금을 내시오. 단, 5일 의 시간을 주겠소~!! 두둥~!!'



아.. 그제서야 지난 달 인터넷비 안내고 한국 다녀온 것이 생각났다. 전기세는 문군이 찾아가서 냈다만, 인터넷비는 '설마 끊기겠어?' 라는 생각에 태평하게 요금을 받으러 오는 아줌마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집주변을 검색해보니 꽤 여러개의 VNPT 영업소가 나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왠걸, 떡하니 간판이 있는데, 유리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사무실이 의자하나 없이 텅 비었다. 주차장 경비 청년에게 물으니 이사한지 오래란다. 어디로 갔냐고 물으니 모른단다. ㅡ"ㅡ;;

하는 수 없이 두번째로 가까운 곳을 찾아 갔다. 구글 지도 상에 표시된 길로 갔는데, 그 주소엔 그런게 없다. 옆에 있던 쎄옴 아저씨에게 물으니 돈을 주면 알려주겠다며 실실 웃는다. 뒤도 안 돌아보고 옆 건물의 다른 경비 청년에게 근처에 VNPT 가 있냐 물으니, 저 쯤에 있다며 알려준다. 다시 이동. 아무리 돌고 돌아봐도 그곳엔 없다. 옆에 있던 다른 쎄옴 아저씨에게 물으니, 갸우뚱 하며 주소를 말해 달란다. '아, 아저씨. 내가 주소를 알면 이리 땀흘리며 다니겠어요? ㅠㅠ' 뱅글뱅글 고 동네를 돌기만 하던 나는 시원한 커피나 한잔 마시고 집으로 그냥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 밥 한그릇 뚝딱 비워 원기 충전하고 타오링이 새롭게 알려준 다른 주소를 찾아 들고 다시 집을 나섰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큼직한 VNPT 영업소를 찾았다. 글쎄 나는 인터넷회사 VNPT와 통신사인 vinafone이 같은 국영기업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매일 지나치며 봐왔던 vinafone 사무실이었는데, 고 옆에 나란히 VNPT 간판이 보였다..ㅠㅠ

내 앞에 대기자 두명, 그리고 새치기 하려는 아줌마와의 신경전(나만 신경 쓰는;;)끝에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타오링에개 물어 미리 연습한 비굴 멘트를 술술 내뱉었다. 
"tháng trước tôi không đóng tiền internet nên bị cắt. Hãy nối lại internet cho tôi" 
(지난달에 제가 인터넷비를 안내서 인터넷이 끊겼어요. 다시 인터넷을 연결해 주세요)
그러나 그 언니는 오히려 너무 미안한 표정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지금 내 컴퓨터의 인터넷이 안되요. 다른 곳으로 가셔야 해요. 허허허" 이런 뭣같은..;;

결국 다른 주소를 하나 더 찾아갔다. 큰 도로를 지나치려던 찰나, mobifone 영업소가 보였다. 기쁜마음에 뛰쳐 들어갔더니, 옆 사무실로 가라 일러줬다. 다시 헐레벌떡 옆 사무실로 갔더니 맞다. VNPT 사무실이다. 손님도 없다. 바로 창구에 앉아 비굴 멘트를 했더니, 직원 언니가 사랑스런(?) 웃음을 보였다. 그러곤 1분도 채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마무리 되었다. 이리 간단한 것을...ㅠㅠ 아, 이제 4시간 후면 집에 인터넷이 들어온단다. 얏호!!

네번 만에 어렵게 찾은 VNPT 매장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어제부터 돌아다녔던 네 군데의 영업소 중에 마지막으로 갔던 이 곳이 우리 집에서 가장 쉽게 올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음을 깨달았다. 나 뭔짓 한거야..ㅡ"ㅡ



2014년 8월 16일 토요일

아빠봉

딸바보를 위한 신제품!! 메이드인 베트남!!
아이의 두발 자전거 타기를 돕기 위한 아버지의 발명품!!
이름하야 '아빠봉'!!



더이상 허리 숙여 자전거를 잡아 줄 필요 없습니다.
작은 힘으로 좌회전, 우회전, 전진, 후진 지원 가능합니다.
필요시, 사랑의 매로도 사용 가능!! _"_;;

확, 수출 해버릴까보다... ㅎㅎ



2014년 7월 25일 금요일

꽹과리 특강

초등학교 6학년 풍물반에서 장구를 치던 기억이 났다. 쇠를 치는 녀석들은 단 두명의 남자애들 이었는데, 풍물에서 '쇠'가 리더이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하필 쇠 치는 녀석이 '체' 하는 녀석이어서인지, 아니면 자기 악기를 잘 챙기라는 선생님의 당부 때문이었는지 나는 장구 이외에는 다른 악기를 접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북 몇번 빌려 두드려 본 적은 있으나, 도통 꽹과리를 손에 걸어본 기억도 없다.

그렇게 장구 장단만 알던 내가 드디어 주 3회, 하루 세시간씩 2주간의 빡센 꽹과리 특강을 마쳤다. 것도 이 이국 땅에서 쇠잡이라니. 감개가 무량하다. 첫날은 어찌나 열심히(아마도 잘못된 스냅으로) 두드렸는지, 집에와서는 손목이 욱씬거려 파스를 두개나 붙이고 긴팔로 가리고 다녔는데, 두번째 수업 부터는 세시간 내내 쇠를 들고 있어도 왠일인지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그 2주 내내 밤이 되면 코를 골고, 이를 갈면서, 피곤함에 미친듯이 골아 떨어지기를 반복하곤 했다. 하긴, 3시간의 특강도 특강이거니와 매일 수업 끝나고 이어지는 낮술 뒷풀이 한마당에 기력을 더 쏟았는지도.. ㅎㅎㅎ

내 생활에서 절반의 시간을 풍물, 아니 꽹과리에 빠져있던, 진심으로 신명났던 2주였다. 이제사 소리가 조금 익숙해질 것 같은데 끝난다니 참 아쉽다. 허나, 정말 신명났던, 영광스런 여름으로 기억 될 것이다. 계속해서 놀아보세~~


2014년 7월 11일 금요일

Tò he (떠해)

베트남의 설(뗏), 추석(중추) 등의 명절에는 시골의 마을마다 축제를 하는데, 그때 그 마을 축제에 빠지지 않고 보이는 것이 바로 이 'Tò he(떠해)' 인형이다. 할아버지 혹은 아저씨 공예가들이 각각의 색을 넣은 쌀 반죽을 이용하여 용, 동물, 꽃 등의 다양한 인형을 만든다. 대게 손가락 크기로 만들어 꼬챙이에 끼우는 이 'Tò he' 인형은 주재료가 쌀가루이기 때문에 먹을수도 있다고 하나, 공예가들이 좌판 앞에서 만드는 과정을 보면.. 글쎄. ㅎㅎ

@wikipedia


어쨋든 아이들이 좌판 앞에 쪼그려 앉아 공예가의 섬세한 실력과 갖갖의 보고 있노라면 안사고는 배길 수 없다. 특히 베트남의 추석은 어린이들을 위한 명절이기 때문에, 부모들이 좌판 앞 아이들에게 이 'Tò he' 인형을 하나씩 쥐어주곤 한다. 요새는 로보트나 도라에몽 등의 캐릭터가 인기 있는 모양이다. 우연히 하노이의 한 쇼핑센터를 지나다 베트남 전통 복장을 입고 푸드코트 거리에 앉아 'To He'를 만드는 공예가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만들고 있는 것은 동물도, 식물도, 캐릭터도 아닌... 바로 앞에 앉은 젊은 여성의 '캐리커쳐'!! 'Tò he'의 변화가 놀랍도다..!!

하노이 로얄시티에서 만난 캐리커쳐 Tò he

2014년 7월 4일 금요일

그림을 그리자

그림을 다시 그려볼까 하고 있다. 예전에는 드로잉이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일이 아닌 이상 펜을 손에 쥘 일이 없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종이와 가까워져야 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책을 더 많이 읽고, 종이 위에 드로잉을 시작하겠다.

그냥 집에있는 펜과 종이로도 가능하지만 내가 즐겨 썼던 드로잉 도구들이 있을까 하고 시내에 나간 김에 둘러봤다. 오호라 석고상도 있네? 입시 봤던 옛 기억이 새록새록.. 아그립파 인가? 줄리앙인가?... 이 새로운 석고상은 뭐지????? 가까이 가보니.... 

서점에서 본 석고상은 온통 호치민 주석상뿐!!

앗!!! 호치민 주석 상이구나..!!!@$#^$@&
물론 소묘용이라기 보단 각 학교나 공기관의 단상에 모셔 둘 장식용이겠다만, 막상 호주석 석고장이 이렇게 잔뜩 있는 모습을 직접 보니 당황스러웠다. 

미대 입시 준비를 할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석고 소묘는 줄리앙의 부푼 앞머리, 투사의 섹시한 잔근육, 카라칼라의 찡그린 미간 정도였다. 아니, 다시 말하면 그 부분들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기 보다 그 부분들에 끌렸다. 그 당시 내가 이성에 끌리는 외적인 부분이 바로 그것들이었달까.. ㅎㅎㅎ 

물론 싫어하는 석고상들도 있었다. 비너스의 특징없이 넙대대한 볼따귀, 세네카나 호모의 푹 파인 볼과 주름들, 그리고 아리아스 그 여자의 심하게 꼰 머리 스타일 정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여자 석고상들은 유독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 석고상은 남자가 더 많았고, 내가 본 모든 실기시험에선 남자 석고상만 나왔다. 내가 그리기 힘들어하는 석고상들은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베트남의 미술대학 입학시험은 어떨까 하는 상상이 들었다. 만약 실기 시험이 있다면, 만약 석고 소묘가 있다면 모든 입시생들이 호주석 석고상을 앞에 놓고 경건하게 그리지 않을까? 실제 저 석고상도 실제의 호주석 모습보다 더 통통하고 건장한 청년처럼 잘(?) 생기게 그려놨는데, 입시에서도 잘생긴 호주석의 모습을 채점관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만약 내 상상처럼 실기 시험이 이루어진다면 한국처럼 어떤 석고상이 나올까 고민하지 않아서 좋을테고, 더 나아가 생각해보니 굳이 우리가 일면 관계없는 서구의 얼굴들을 몇 백번씩이나 그리면서 연습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베트남에서 국부인 호주석의 석고상을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듯이, 우리도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이나 유관순 언니 같은 얼굴을 그리라면 어떨까? ㅎㅎㅎ 그래 물론 감안해야 한다. 동양의 얼굴들을 소묘를 그리기엔 서구형 얼굴들보다 밋밋할 거라는 건. ㅎㅎ

호주석 석고상 떼를 보고 놀란 마음을 뒤로 하고, 나는 줄줄줄 그립감 좋은 펜 두자루를 사들고 나왔다. 그림 그려야징. 끄적끄적 다시 시작해야징~


한국 유학 가실래요?

슬럼프. 그간 오르락 내리락 하였지만, 좀체 다시 올라가려 하지 않는 상태.


기분 전환을 위해 간만에 약속을 잡고 시내로 외출을 하는 길. 나름 안입던 옷까지 한껏 차려 입고 쎄옴을 타러 갔으나 일주일간 고향에 벼베기 하러 다녀 왔다는 나의 베스트 드라이버, 'Ha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아저씨들은 적정 가격을 훨씬 넘게 받을 게 불보듯 뻔하니 조금 걸어서라도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우리집 맞은 편에 있는 '노동-사회 대학교'(글쎄.. 난 아직도 이곳이 뭘 가르치는 곳인지 모르겠다) 정문 앞에 왠일인지 정차된 오토바이와 학교에서 나오는 누군가를 맞이하는 사람들로 그득. 때문에 도로변이 통제가 되었다. 


그리곤 학교 안에서 하나 둘씩 학생들이 나오더니, 무서운 인파가 몰려 나오기 시작했다. 가만 있어보자. 오늘이 몇일이더라? 베트남 수능 날인가? (베트남 수능 시험은 원하는 대학교에 가서 직접 그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과목 시험을 본다) 



맞았다. 요 며칠간 바로 베트남 수능 시험이 한창이었다. 학교에서 나오는 학생들은 원서를 넣거나 시험을 봤거나 한 학생들이겠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학생들을 오토바이로 데리러 온 가족들이겠지. 다들 설레이는 표정들이다.


그나저나 이 인파를 헤치고 학교 정문을 지나쳐 가려는데, 어떤 여자가 내 얼굴을 보더니 나를 가로 막고 전단지 한장을 쑥 내민다. 얼떨결에 받아들고 인파를 빠져나와보니...

한국 유학, 밝은 미래를 시작하는 곳


이봐 나도 '한국 사람' 이라고..;;; 덕분에 간만에 크게 웃었다.


2014년 7월 2일 수요일

2014년 6월 27일 금요일

기우 企雨

오늘은 미친 더위. 습한데다, 가끔 불어오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오히려 더 짜증스럽다. 바람에 이러려면 차라리 불지를 말지.. 내가 덥다 덥다 하면 진짜 더운거다. 버스에 내려 집까지 오는 몇 백미터의 길에서 무려 두번이나 커피숍에 들러 더위를 피하다 왔으니 말이다.

오후 다섯시 즈음, 이제 해가 조금 사라졌나 하고 베란다를 빼꼼히 내다보는데 나도 모르게 '에잇, 비나 쏴악 내렸으면 좋겠다' 하고 혼잣말이 나왔다. 그러곤 신기하게도 곧바로 하늘에서 찬 비가 쏴아악 쏟아져 내렸다. 더운 바람이 시원한 바람이 더운 바람을 천천히 밀어냈다.

아, 기분 좋다.


2014년 6월 26일 목요일

오토바이 HONDA CUB 에 꽂히다!!

학교 가는 길, 도착할 즈음에 자전거 뒷바퀴가 펑크났다. 앞바퀴에 바람 빠진 것을 며칠째 불안불안 하면서 탔는데 했는데 왠걸, 멀쩡하던 뒷바퀴가 아예 퍼져 버렸다. 차라리 자전거 끌고 걷는 것이 덜 힘들 정도였는데, 다행히 학교가 코앞이라 앉장에서 엉덩이를 들고 묵직하게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문제는 귀가 길. 집까지의 4km의 아스팔트 도로에 오늘따라 유독 찐하게 내리쬐는 때양볕이 얄궂기만 한데, 나는 다 퍼져버린 뒷바퀴를 굴리며 왕복 6차선 도로에서 끼어들기와 함께 무려 불법 유턴까지 감행했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멀쩡하던 자전거 바퀴의 바람이 피식피식 빠지기 시작하고, 내가 더위에 지쳐 자전거를 안타는 날이 하루씩 늘어나자 문군과 나는 오토바이 구입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조금 천천히 사려 했던 오토바이를 조금 앞당겨 사기로 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둘이서 각각 컴퓨터를 붙잡고 모처럼 날씨 좋았던 일요일을 몽땅 날려버린 날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날씨 좋은 날, 하노이 반대쪽이라도 놀러 갈라는데 오토바이가 있고 없고는 정말 큰 차이라는 나름의 설득력도 구입 의사에 한 몫했다.

나름 오토바이의 구입 기준을 세웠다. 'CITY 100' 과 비슷한 모델인 반수동을 타본 경험도 있고 개인적으로 스쿠터나 큰 오토바이는 무거워서 패쓰, 왠지 예전부터 클래식한 언더본 스타일을 타고 싶었기에 언더본(under bone) 모델로 각축, 베트남에서 외국인이 새 오토바이를 구매할 경우 복잡한 서류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새 물건은 패쓰, 그리고 베트남에서 면허가 없어도 된다(다시말해 무법천지 꽁안-경찰에게 잡힐 일이 없다는 점)는 50cc 모델이 안전하겠다 하면서도, 가끔 하노이 외곽이라도 놀러갈라면 100~110cc 모델 정도는 되야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까지. 플러스 가격에 대한 고민은 기본이고.

그렇게 베트남에서 구입 가능한 모델들을 이것 저것 보다가 꽂힌 녀석!! 한국에서는 배달용 오토바이로 폄하 되지만, 일본이나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내구성 강하고, 연비가 최고이며, 아주 기본적인 기능으로 고장이 적은데다가, 유니크 하기까지 한 이 귀여운 녀석은 바로 'HONDA사의 CUP'(국제적으론 일본식 영어 발음인 '커브'로 읽으나, 베트남에선 베트남식 발음인 '꿉' 정도로 읽으면 되겠다) 이었다.

HONDA CUB 50 - 흔치 않은 노란색 모델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여러가지 요상한(?) 실험을 통해 가장 위대한 모터사이클 순위를 매겼는데, 거기서 바로 당당하게 1위를 얻는 모델이 바로 '슈퍼커브'다. 실험은 이런 것이었다. 엔진오일 대신에 폐 기름을 넣고 달리기, 볼트를 넣은 기름을 넣고 달리기, 크기에 상관없이 어마어마한 양의 짐을 싣고 달리기, 그리고 가장 어이없고도 어마무시한 실험은 오토바이를 22m 상공에서 떨어뜨린 후 달리기 등. 슈퍼커브는 이 모든 실험을 통과했고, 마지막 실험에서도 부서진 상태에서도 시동이 걸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혼다커브를 세계 최고의 모터사이클로 선정하는데 많은 전문가들 역시 전혀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HONDA CUB 시리즈의 커스텀들. CUB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문화가 되어버렸다.
HONDA CUB 50, 55, 90 모델 광고

HONDA CUB은 찾아볼수로 매력이 흐른다. 일단 수송기기의 첫번째 시리즈 중 세계 최다 판매를 자랑한다. 그리고 판매 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원설계 그대로를 이어받으며 생산이 되고 있단다. 그야말로 전설의 매카니즘이 아닌가. 게다가 'CUB는 기름 냄새만 맡아도 50~100km는 간다'는 우스개 소리는 CUB 모델의 훌륭한 연비를 설명해 준다. 요 녀석에 대해 나처럼 급 호기심이 생기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 보시라.

슈퍼커브 히스토리, 혼다의 가장 완벽한 창조물


평소엔 그리 세심하게 보지 않다가 요새는 온통 오토바이 천지인 하노이에서 모든 오토바이를 훝고 다닌다. 그리고 CUB를 알고 난 뒤, 심심치 않게 CUB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이 아주 오래되고 덜덜거리는 CUB 모델을 경제적인 이유로 타고 다니는 노동자들이나 배달원들이 대부분이지만, 경제적인 것 이외에도 유니크함을 찾는 베트남의 일부 젊은 세대들이나 CUB의 진가를 아는 베트남 주재 서양인들에게도 CUB는 통한다. 베트남에선 새 제품이 나오지는 않기에 정말 골동품 처럼 귀하게 중고가 나온다니, 잘 찾아봐야 겠다.

베트남의 흔한 CUB 모습

자, 그럼 고작 50cc의 매력덩어리 장난감으로만 보이지만, 실은 어마어마한 내공의 '혼다 커브 50' 요 녀석으로 베트남 하노이부터 호치민까지를 종주하는 서양 커플의 영상을 함께 보자. 참고로 50cc의 위력을 보여준 이 영상이 내 결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





2014년 6월 25일 수요일

6월말 하노이 더위에 맞서는 방법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부디 이런 날씨로 조금만 더 버텨라!! 하고 주문을 외웠건만, 야속하게도 더위는 다시 돌아왔다. 한낮에 돌아다녀볼까 하는 미련한 생각은 버린지 이미 오래. 정말 온통 아스팔트 가득한 도심이라 하노이 외곽과도 비교되게 뜨겁다. 6월 말, 하노이의 더위에 맞서는 방법을 올려본다. 피할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ㅠㅠ

방학동안 대학교 교정 내에서 진행되는 군사훈련 중 그늘 밑에서 총 들고 농땡이 부리기

길가에 판매 할 돼지저금통을 진열해 놓고 주인은 저 멀리 그늘에 숨어 있기. 손님이 알아서 사가슈~!!

해가 질 무렵부터 열심히 다니기. 단 이시간 육교를 건널 땐, 아직 떨어지는 해를 방심하지 말고 양산 역할의 우산은 필수!! 

해질녁 베란다에서 시원한 바람 맞기. 이때, 최소한의 가벼운 복장으로 숨 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말것.

이열치열, 한낮의 더위엔 뜨거운 국물이 최고!!  찐한 국물의 분보 후에 마시기(?)

오토바이고, 자전거고, 쎄옴이고 다 필요없고.. 에어컨 빵빵 나오는 버스를 타고 다니기!!

가끔은 저녁 공연을 보면서 얼음과 함께 시원한 맥주를~!!

노가다 일은 자고로 덜 더운 새벽에. 새벽부터 저 옥상에서 망치질 하는 아저씨들 덕분에 일요일 아침 잠은 안녕~

한낮에 가장 시원한 곳은 뭐니뭐니 해도 하루 종일 열기 한번 내리쬔 적 없었던 고가도로 밑!!

감당 하고 싶지 않은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틀어 놓고, 금방 뜨거워지는 구식 노트북 밑에는 반드시 열을 빼줄 받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