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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1일 금요일

[Thanh Hoa] 불편한 진실, '1대1 아동결연 사업'을 만나다 (1)_

*시작하기에 앞서 특정한 단체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 다수의 한국 국제개발협력 엔지오들이 하고 있는 '1대1 아동 결연 사업'에 대한 속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글쓴이의 의도를 이해 바랍니다.


베트남어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일을 했었다는 이유만으로, 베트남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도 따듯한 환대를 주신 보육원 스텝들. 선생님이자 엄마이자 멘토 역할을 하는 스텝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은 내가 아는 그 어느 기관 중에서도 제일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이 분들은 나와 함께 있는 이틀의 시간 내내 '당신이 와주어서 너무 즐겁다'는 말로 6시간 버스 이동의 피로를 싸악 녹게 해 주었다.   @Choi Yuri


얘기치 못했던 큰 환대와 무환 애정을 받고 돌아오는 여정. 학교에서 한 달여간 배운 베트남어보다 이틀간 보육원에서 만난 직원들, 아이들, 주민들과 더 많은 베트남어를 했다. 이렇게 길 위에서 더 잘 배우는 내가 굳이 책상 앞에 앉으려는 건 정말 욕심인 것인가도 싶다.

사실 내가 이번에 이곳을 더 가고 싶었던 이유는 '후원자와 아동을 일대일로 매칭 시켜준다는 '일대일 아동결연 사업'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후원자의 마음을 비교적 쉽게 끌 수 있는 방법이기에 실제로 많은 국제개발협력 엔지오에서 큰 사업 중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약 70%의 한국 엔지오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오래전 첫 월급을 받았을때 '한X야씨 열풍'에 휩쓸려 아프리카에 있는 한 아이의 결연후원을 시작 했었다. 그러나 이 바닥에 발을 담근 뒤로, 그것이 절대 좋은 후원의 방법만은 아님을 알게되었다. 후원 받을 아이들 사진을 늘어놓고 기부자가 고르는 위치에 있는 것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고, 그 마을, 혹은 학교 안에서의 후원 받지 못하는 아이의 소외됨 역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한 가정의 형제 중에 누구는 후원을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하는 사례들도 접하게 되었다. 정기적으로 후원자에게 보내지는 아이의 사진과 그림과 편지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어떠한 과정이 걸쳐지는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내 손에 오게 된 까만 피부의, 놀란 눈을 가진 아이의 사진과 메세지들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 나는 큰 마음을 먹고 기부를 끊고 다른 방식의 후원으로 변경하였다. 나 역시 기부를 끊을때, 내가 만약 멈추면 아이의 식사와 학업이 당장이라도 멈춰질 것만 같아서 죄스럽고 미안했다. 하지만 엔지오에서 홍보하는 내용들 처럼 내가 후원하는 그 돈의 100%가 몽땅 그 아이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후원이 끊긴다고 아이에게 돌아가는 지원이 뚝 멈출리도 없는 것이다. 만약 그런 시스템이라면 이건 정말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 *


나는 이렇게 1대1 아동결연을 반대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지만, 아직도 많은 단체들은 기본적으로 결연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몸담고 있었던 단체는 '한 아이에게 주는 지원보다 가족이, 혹은 마을이 함께 지속적으로 잘 사는 것이 더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역시 아동결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에, 나는 실제로 그 현장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기회가 되어 다른 단체에서 각 마을의 결연 아동에게 지원을 하는 날에 함께 따라가보게 되었다.

이 날은 오전, 오후 통틀어 총 다섯개 마을을 가게 되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미리 준비해 둔, 봉투에 든 5만동(2,500원 상당)과 쌀 15kg 한 포대, 치약, 과자, 세제 등 생필품을 담은 선물 봉지 하나를 한달에 한번 각 마을의 인민위원회, 혹은 마을 회관에 모인 아동들에게 전달을 하는 것이다. 부모 중 한명, 혹은 할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도 있었으며, 혼자, 혹은 형제와 함께 온 아이도 있었다. 대부분 큼직한 자전거를 끌고 오지만, 간혹 밖에서 기다리는 형제, 혹은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기다리기도 한다. 만약 직접 오지 못한 경우, 이달의 지원 내역은 다음 달로 누적 이월된다. 실제로 이날 못 만났던 아이들이 몇 있었는데, 후원아동이 두 명뿐인 한 마을에선 조금 멀리 떨어진 산 위에 집이 있고, 정신 이상인 아버지, 오빠와 함께 지낸다는 한 여자아이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인민위원회 직원과 혼자 자전거를 끌고 온 나머지 한 여자아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아이의 안부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한 곳에 모이면 테이블에 뺑 둘러앉아 명단이 적힌 종이를 돌린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기 이름을 찾아 서명을 한다. 초등학교에 이제 막 들어갔다는 아이는 간신히 자기 이름을 찾아 펜을 꽉 쥐어잡아 꾹꾹 눌러가며 자기 이름을 쓰고, 한창 멋부린 사춘기 청소년들 역시 후딱 서명을 마친다. 함께 온 어른들은 멀찌감치 의자에 앉아 지켜본다.

명단을 적은 아이들은 바로 문 밖으로 나가 한명씩 사진을 찍고 들어온다. 아주 소수의 아이들을 빼 놓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얼굴 가까이 내민 카메라 랜즈를 보며 긴장한 눈치다. 이 사진들은 후원 아동 관리용, 혹은 후원자에게 보낼 용도일텐데, 순간 내가 처음 후원했던 그 아이의 똥그랗게 긴장된 눈도 이렇게 찍혀 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복잡해졌다. 사무실 내 책상 앞에 놓은 아이의 인적사항 적힌 사진 카드를 보고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괜히 으쓱해졌던 내 과거가 정말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이 모두 사진을 찍고 들어와 다시 한자리에 모이면, 지원금이 담긴 봉투를 각각 전달하고 그달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들어보니 이곳에서는 일년 열두달 중에 두 달은 후원자에게 편지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있고, 나머지는 추석, 설, 연말.. 등의 명절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 나머지 한 두달은 이렇게 오늘처럼 함께 영상을 보거나 한단다.

정말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느껴지는 담당 직원 anh은 오늘 닉부이치치의 짧은 영상 두개를 준비해 왔다. 처음엔 팔 다리 없는 닉부이치치의 모습에 아이들도 어른들도 그저 신기한 듯 웃거나 당황해 했지만, 닉부이치치의 이야기가 늘어 갈수록 모두들 진지해 진다. 그가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높은 곳에서 다이빙 하는 장면을 볼땐 아이들의 짧은 환호가 들리기도 했다. 영상을 본 후 Anh 은 아이들에게 소감을 묻고, 닉이 팔다리가 없지만 뭘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아이들 자신이 닉 보다 더 가진 것은 무엇인지 대답을 이끌어냈다.

어떤 마을에선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중도 잘하고, 직원이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는 데 반해, 어떤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엎드려져 있거나 잡담을 하고, 질문에는 꿀먹은 벙어리에 눈도 잘 못마주친다. 연유를 찾아보니 후원 아이들을 선정하는 마을 인민위원회마다 선정기준이 다른 것이다. 어떤 마을은 빈곤 계층 중에 공부를 잘 하는 순으로 주고, 어떤 마을은 하위 빈곤 계층부터 순서대로 아이들을 선정한 것 같다.

각 마을에서 30분여간(오늘은 이례적으로 프로그램이 짧은 날이란다)의 결연활동이 끝나고, 모두 밖으로 나와 차에 실었던 쌀과 선물보따리를 받아간다. 대부분 타고온 큼직한 자전거 뒤에 싣고 가지만, 간혹 밖에서 기다리는 형제, 혹은 친구의 오토바이에 지원품을 실어 가기도 한다.

_ (2)화에 계속

2014년 11월 17일 월요일

베트남 협동조합 연맹 VCA (VIETNAM COOPERATIVE ALLIANCE)

* Country: VIETNAM

* Logo and Name of the Member Organization: VIETNAM COOPERATIVE ALLIANCE

Sector to which coop belongs
Agriculture, Fisheries, Industry & Handicraft, Consumers, Credit Unions, Transport, Construction, Environment, Electricity and others.
Country code and other detail
00(84-4)
General Profile
The Vietnam Cooperative Alliance (VCA) is a non-governmental social, economic organisation and an apex organisation of Vietnam Cooperative Movement. It is organised at the central and provincial levels. The co-operative enterprises at the primary level are affiliated to the provincial cooperative alliance, which, federate into the central alliance. The cooperative alliance has been established in all 63 provinces and cities throughout Vietnam.
As at the end of 2006, there were 17,500 cooperatives and cooperative associations in the whole country, including 8,458 agricultural cooperatives, 586 trade and service cooperatives, 2,205 industrial – craft industry cooperatives, 557 construction cooperatives, 486 fishery cooperatives, 1,060 transportation cooperatives, 915 credit cooperatives, 2,585 electronic cooperatives, and 217 other types of cooperatives.
The National Representative Congress of Cooperatives, the highest decision-making body of the VCA, meets every five years. The Congress elects the Central Executive Committee, responsible for managing the VCA, meets twice every year. The Central Executive Committee of the second congress currently has 117 members, including representative leaders from ministries and mass organisations, directors of departments and affiliates of VCA and representatives from cooperatives, cooperative associations and professional organisations of all sectors.
As the national organization representing and associating all cooperatives in Vietnam, VCA renders support services to the cooperatives as well as implementing viable and effective economic activities to steer and uplift the movement. The support services and economic activities of VCA are carried out through programmes and the training, consulting and supporting centres or provincial cooperative alliances.
Address
77, Nguyen Thai Hoc Street
Ba Dinh District
Hanoi, Vietnam
Website
www.vietnamcoop.org

Year of establishment
1961
Year of affiliation to ICA1988
Status: whether regular or notRegular Member
Membership of the Coop7,142 cooperatives
No. of Board of Directors15
ChairpersonMr. Nguyen Tien Quan
Vice-Chairperson
Director of International Relations
Department:
Mr. Hoang Nghia Trung


* 본문 프로필 내용 번역 : 
베트남 협동 조합 연맹 (VCA)은 비정부적인 사회, 경제조직이며 베트남 협동조합 운동에서의 최고 조직이다. 그것은 중앙과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별적인 협동 조합은 지방 협동조합 동맹, 그리고 중앙 협동 조합 동맹에 가입되어 있다. 협동 조합은 베트남의 63개 주와 도시에서 조직되어 있다.

2006년 말, 전국에 17,500개의 협동 조합과 조합 관련 단체가 있다. 8,458개의 농업 협동 조합, 586개의 무역/서비스 협동 조합, 2,205개의 공예/산업 협동조합, 557개의 건설 협동조합, 486개의 어업 협동 조합, 1,060개의 운송 협동조합, 915개의 신용 협동 조합, 2,585개의 전기 협동조합, 그리고 217개의 다른 종류의 협동조합이 있다.

VCA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협동 조합 회의의 국가대표는 5 년마다 선출된다. 의회는 VCA 관리를 담당하는 중앙 집행위원회는 매년 두 번 만족 선출한다. 의회에서는 중앙 실행 위원회를 선출하여 VCA의 경영 책임을 위해  매년 두번씩 모임을 갖는다.

두 번째 의회의 중앙 집행위원회는 현재 117명의 회원을 갖고 있다. 의회의 대표와 대중 조직을 포함, 정부기관의 대표와 VCA 협력 단체, 그리고 각 조합, 조합 연맹, 전문 단체 등의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 기관의 대표로서, 베트남의 모든 협동 조합에 관하여 VCA는 협동조합이 잘 실현 가능하도록 하고, 활동을 제고하여 효과적인 경제 활동이 되도록 서비스를 지원해야 한다. VCA 서비스의 지원과 경제 활동은 프로그램과 교육을 통해 중앙 혹은 각 지역의 협동조합 연맹으로 수행된다.


2011년 호치민시 아시아 생협 컨퍼런스 (퍼옴 : 아이쿱 생협)

아시아생협 컨퍼런스 참가 및 공정무역 산지 방문 2011-09-22 본문스크랩 / 프린트


iCOOP생협 공정무역위원회는 iCOOP생협의 물품과 물품정책들을 아시아 협동조합에 알리고 다른 나라 협동조합 물품 중 한국에서 취급할만한 물품이 있는지를 탐방하기 위해 지난 6일과 7일 양일간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생협 컨퍼런스(협동조합을 통한 전략적 사업 연맹에 대한 컨퍼런스)에 참가했다. 또 8일과 9일은 아시아 지역으로 새로운 공정무역 커피생산지를 발굴하기 위해 라오스 팍세(Laos Pakse)지역을 방문 커피 생산과정 및 품질을 점검하고 생산자와의 유대관계를 갖는 시간을 가졌다.

베트남 호치민 시티 Liberty 호텔에서 열린 이번 컨퍼런스는 아시아 생협간의 상품교류와 산업전략 개발에 대해 향후 긴밀히 협조하자는 취지로 열렸다.

아래 글은 아시아생협 컨퍼런스에 참가한 iCOOP생협사업연합회 개발부 무역팀 주혁규 직원의 탐방 보고서이다.



1. 첫째날 (9월 6일)
아시아 생협 컨퍼런스의 첫째 날은 사이공생협의 경영대표인 Nguyen Thi Hanh씨의 환영인사를 시작으로 베트남 아시아생협 컨퍼런스가 개최됐다.


1) ICA-AP 소비자협동조합 위원회 활동과 일본 생협 간의 전략적 사업 제휴 발표 : ICA-AP 소비자협동조합 위원회 의장, 하루요시 아마노(Haruyosi Amano).>

첫 순서로 ICA-AP 소비자협동조합 위원회 의장인 하루요시 아마노(Haruyosi Amano) 씨의 특별 연설이 진행되었다. 주제는 ICA-AP 소비자협동조합 위원회 활동과 일본생협 간의 전략적 사업 제휴에 대한 내용이었다. ICA-AP 소비자협동조합 위원회는 13개국의 22개 조직이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활동으로는 일본에서 진행한 매장 매니저 트레이닝(Manger Training) 교육, 싱가폴에서 매니지먼트 워크샵(Management Workshop), 협동조합 발전 워크샵(Co-op Development Workshop), 소비자협동조합 위원회 미팅, 조사 및 자료 수집 등이 있다. 앞으로의 업무와 도전과제는 회원간의 협력을 도모하고 사업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 증가, 새로운 멤버들의 참여, 아시아 태평양 소비자 및 소매 협동조합의 정보 수집 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어진 일본의 소비자 협동조합이 겪은 사업경험에 대해서 나누었다. 인구 감소와 노령화 문제, 저 출산, 가족구성원 변화를 통해 일본사회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엿볼 수 있었고 현재 일본이 직면한 이슈들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일본이 직면한 문제들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한 일본소비자 협동조합이 가진 역사와 경쟁사들, 그리고 협동조합이 가진 가치와 미션들을 들을 수 있었다.


2) FairPrice 업적과 사이공생협과의 협업 발표 : NTCU FairPrice 그룹 경영대표, 탄 캰 츄(Tan Kian Chew)

싱가폴의 FairPrice는 1973년을 시작으로 38년간 협동조합 활동을 해왔다. 현재 싱가폴에는 쌀과 설탕 같은 기초 물품들의 가격이 급상승함으로써 인플레이션에 맞서 가격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 협동조합 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Fairprice 경영대표는 협동조합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8가지 요소로 사회적 초점, 전문성, 기초 역량, 소비자에 집중, 고용에 집중, 기업의 시민의식, 브랜드 통일성, 전략적 파트너쉽과 연합 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요소들이 제대로 발휘될 때 협동조합은 경제불황 속에서도 살아나갈 수 있고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 협동조합 브랜드 물품 발전 정책 발표 : 싱가폴 FairPrice의 그룹 카테고리 팀장인 스티븐 앙(Steven Ang,) 사이공 생협의 부 경영진인 Ms. Tran Thi Kim Quyen, JCCU생협의 카즈오 무라카미(Kazuo Murakami))

이어진 협동조합 브랜드 물품 발전 정책에 대해서 싱가폴 FairPrice의 그룹 카테고리 팀장인 스티븐 앙(Steven Ang), 사이공 생협의 부 경영진인 Ms. Tran Thi Kim Quyen, JCCU생협의 카즈오 무라카미(Kazuo Murakami)씨의 설명을 통해 각국의 협동조합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사업적 전략을 세우고 시장에 접근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싱가폴의 FairPrice의 경우 베트남의 사이공생협과의 협업을 통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각 나라의 협동조합들이 필요에 의해서 서로 협력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좋은 롤모델을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는 iCOOP생협과 유사한 형태의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고 더욱 발전된 모습의 조직 형태를 볼 수가 있었다.


4) 한국 농업의 현실과 iCOOP생협 물품정책 발표(생협연합회 오미예 회장, 개발부 주혁규)

iCOOP생협연합회 대표로 오미예 회장은 현재 국내 농업과 유통업체가 처한 현실과 앞으로의 iCOOP생협의 비전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다. 현재의 낮은 식량 자급률을 통해 식량 자급률을 높여야할 필요성을 전하고 대기업들의 횡포에 맞서 협동조합이 그 방패막 역할을 해야한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리고 이후 이어진 iCOOP생협의 물품 정책 발표를 통해 여러 나라 협동조합에 iCOOP생협이 가진 철학과 비전을 알릴 수가 있었다.

[협동조합 간 물품전시회]


5) 인터쿱(Intercoop,Italy)의 협동조합물품 발전에 대한 발표, 인터쿱(Intercoop Ltd.) 경영대표 조세 바스콘(Jose Bascon)

인터쿱(Intercoop)은 유럽의 협동조합이지만 본사는 홍콩으로 삼은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유럽의 약 6개나라(이탈리아,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등)가 합자한 협동조합으로 유럽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들을 아시아 시장에서 구매하여 유럽으로 수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부분 협동조합들이 관심을 가지는 식품사업이 아닌 비식품류에 사업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쿱(Intercoop)이 식품이 아닌 비식품 물품을 다루는 이유는 마진율이 높고 소비자와의 원스탑(One Stop)쇼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식품 물품의 어려운 점은 가격이 높고 선택하기까지 많은 정보 제공이 필요하고, 구매 후 재구매까지 기간이 아주 길다는 데 있다.
인터쿱(Intercoop)의 궁극적인 목적은 협동조합 형태에서 구매하는 형식을 전세계 협동조합 소매자에게 전파하는 것이고 이러한 활동들은 큰 사업적 기회에 부합하고 의미가 있다고 한다.


6) 질의응답 시간(베트남 사이공생협, 일본 JCCU, 싱가폴 FairPrice)

질의응답 시간은 각 국의 협동조합이 처한 현실, 활동에 대한 어려움 등을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싱가폴의 경우 해외진출을 통해서 느낀 어려운 점과 사이공생협과 협업을 통해서 얻은 경험들을 나누었고, 일본의 경우는 이미 성공한 협동조합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다른 협동조합이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해 주었다. 베트남의 경우는 다른 나라의 협동조합과 협업을 할 수 있는 점과 이를 통한 성공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여러 협동조합들의 귀감이 되었다.




2. 둘째날(9월 7일)

1) 베트남 협동조합 법
베트남의 협동조합 법은 2003년 11월 23일 6번째 전국의회 회의에 합의가 되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 여전히 이 협동조합법은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 존재했다. 이 법은 현재 10조 52항으로 규정 돼 있다. 개정이 필요한 부분에는 협동조합의 성격, 정의에 관한 명확한 규정, 조합원에 대한 물품공급 제한, 공통자산에 대한 배당금, 협동조합이 받을 수 있는 혜택 등이 있다.


2) 베트남 협동조합 법의 개정에 대한 질의응답.
베트남 사이공생협이 진행 중인 생협법 개정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7개 부분으로 협동조합의 정의, 조합원 출자 비율, 조합원과 비조합원 구분 문제, 배당, 소득세, 정책을 토한 협동조합 지원, 거래를 하는 협동조합의 연합에 대해 각국의 여러가지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협동조합은 별도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를 했으며, 조합원 출자비율에 있어서는 다양한 의견들을 들을 수가 있었다. 20% 또는 50%를 조합원 출자비율로 산정한 곳이 있는가 하면 제한을 두지 않는 조직 또한 있었다. 또한 배당 문제에 있어서 조합원 배당을 통해 조합원이 이득을 볼 수 있게 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조합원 배당을 하지 않고 협동조합 기간 사업에 투자하던지 아니면 지역사회에 투자를 하는 나라도 있었다. 다양한 국가에서 참여한 만큼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 그리고 적용할만한 부분들을 알 수 있는 자리였다.


3) 사이공생협 매장방문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사이공생협에서 운영하고 있는 'Coop-Food'라는 작은 지역 매장이었다. 사이공생협에서 공급하는 약 4천여 가지 물품이 판매되고 있으며 자사 제품비율은 50%를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사이공생협마크가 붙어 있는 PB제품의 경우는 일반물품의 절반 가격으로서 사이공생협은 iCOOP생협처럼 친환경, 안정성을 고려한 고품질 정책보다는 소비자에게 저렴한 물품을 제공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사이공생협 Coop-Food 방문]


이후 방문한 곳은 사이공생협에서 운영하고 있는 Coop-Mart라는 대형마트였다. 이 곳은 우리나라 이마트와 같은 대형 마트로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이공생협물품도 다수 구비되어 있지만 타사제품이 주를 이루었다. 타사제품 중 한국에서 수입된 물품들도 다수 보였다. 가격을 비교해 보니 한국 내 판매가와 거의 동일했고 일반 시중물품에 비해서는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이공생협 Coop-Mart 방문]


3. 총평
짧은 일정 속에 서로가 가진 노하우, 경험, 생각 등을 나눌 수 있었고 각국의 협동조합 간의 상이한 점, 그리고 각 국내에서 협동조합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서 자국의 협동조합을 발전시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서로가 국제적, 세계적으로 강력한 연대를 형성할 필요도 있다는 내용을 공유할 수 있었다. 지금의 어려운 경제상황도 각 협동조합이 협력할 수 있다면 이겨낼 수 있다는 공통의 의견 또한 형성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러한 자리가 많이 생겨서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협동조합은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이번 컨퍼런스는 끝이 났다.



* 출처 : 아이쿱 생협 http://www.icoop.or.kr/v2/announce/view.php?code=announce&homepage=003&page=1&number=4687&keyfield=&key=&no=1098&fid=1110&thread=A

2009년 농협, 베트남 협동조합연합회와 MOU 체결 (퍼옴 : 축산물품질평가원)

농협, 베트남 협동조합연합회와 MOU 체결농업발전 위한 사업 협력 동반자 관계 수립

한국 농협이 베트남 농협과 양국 농업 발전을 위한 협력 동반자가 됐다. 최원병 농협회장은 2일 일본 동경에서 베트남협동조합연합회(Vietnam Cooperative Alliance)의 콴 회장과 업무협력의정서(MOU)를 체결하고 두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한 전략적 사업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이날 양국 농협은 △한국농협 농산물유통센터의 베트남 진출 협력 △베트남의 농업연수자 송출 협력 △베트남 여성의 결혼 중개 관련 서비스 개발 △양국 농산물, 농자재 및 농기계 무역교류 촉진 △양 기관간 정보교류 및 연수방문 등을 위해 공동 노력키로 했다. 농협관계자는 “이번 업무협력의정서 체결은 정부의 신아시아 외교 구상을 협동조합간 협력사업으로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실질적인 사업협력을 통해 두 나라 농업인의 공동 번영을 추구하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협동조합연합회는 베트남의 모든 농협·수협·신협·건설조합 등 1만7000여 회원조합과 1천 만명의 조합원을 대표하는 전국기관이다. 소속된 농협은 약 8000여개에 달하며 베트남 국내총생산의 약 10%를 차지할 만큼 베트남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양 기관의 협력은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출처 : 축산물품질평가원 http://www.chukkyu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007


HCA(호치민협동조합협의회) 관계자 iCOOP생협연합회 방문 (퍼옴 : iCOOP생협)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아' 친구가 있어서 먼 곳으로부터 찾아 온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의 학이 제일편(學而 第一篇)에 나오는 글 가운데 하나이다.

멀리 베트남에서 호치민협동조합협의회(이하 HCA) 관계자와 정부기관 기관장들로 구성된 방문단 26명(가이드 포함)이 지난 4월 22일 iCOOP생협을 찾았다.

이들은 호치민 시의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의 iCOOP생협과 농협 등 한국의 협동조합을 견학하고자 입국 22일 오전 신길동에 위치한 iCOOP생협연합회를 방문했다.


<방문 목적이 무엇인가요? iCOOP생협과 더욱 긴밀한 교류를 위해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지만 한국과 베트남의 협동조합간의 민간 교류는 iCOOP생협과 HCA가 최초.>


iCOOP생협연합회 이정주 회장(상단 사진 왼쪽)은 인사말을 통해 "iCOOP생협은 친환경 먹을거리의 대중화 운동을 위해 조합원들이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며 "방문 목적에 맞게 방문 기간동안 한국의 협동조합의 운영에 대해 다양하게 살펴보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국가간 협동조합의 교류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 질 것이다"며 "iCOOP생협과 베트남 생협과의 첫 교류이기 때문에 생협의 가치와 맞는 교류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관계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HCA 응엔 디이 휴(NGUYEN DUY HIEU) 회장(상단 사진 오른쪽)은 "베트남은 경제적으로 더 잘살기 위해 정부에서 협동조합단체와 같은 곳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호치민시는 베트남에서 중심도시이고 가장 크다. 현재 베트남에는 외국기업들이 많이 상주하는데 한국기업들도 많다. 그러나 한국의 협동조합과의 교류는 전혀 없었다"며 "iCOOP생협을 통해 한국의 생협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는 계기와 지속적인 교류확장을 바란다"고 전했다.


<비록 선물의 크기는 다르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주고 받는 마음만은 똑같다.>


인사말에 이어 선물증정식의 순서를 가졌다.
iCOOP생협은 한국의 전통음식인 '한과'와 '공정무역 커피' 등 의미가 있는 선물을 전달했고 HCA는 대표 상품인 '수공예 죽제품'으로 답했다.

선물 증정식이 끝나고 iCOOP생협연대 김균섭 상무이사가 iCOOP생협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균섭 상무이사는 "iCOOP생협 조합원을 대신해 환영한다"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한국에서의 생활협동조합 탄생 배경과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의 특징, iCOOP생협에 대한 성장 및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설명했다.


이후 질의응답의 시간을 통해 방문자들은 '소비자 조합원들의 농촌체험 활동', '한국에서의 생협과 농협와의 관계' 식품안전을 지키기 위해 iCOOP생협은 어떠한 노력을 하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받았다.


<아! 달콤해, 童心으로 잠시 1주년 기념으로 자연드림 관악점에서 나눠준 아이스크림을 받아들고 행복하게 먹고있다.>



<"이곳 물류센터에서는 한국의 수도인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 조합원 3만명의 가정에 친환경 물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CS 조용찬 상무이사가 HCA 방문자들에게 물류센터를 설명하고 있다.>


이후 방문단은 자연드림 관악점을 방문 생협에서 운영하는 매장을 둘러보았으며 군포 물류센터로 이동 조합원 공급과정에 대한 설명과 1, 2층으로 나뉘어진 물류센터를 견학했다.

혁신을 거듭하는 베트남의 생협 (퍼옴 : 참좋은생협)

<베트남 생협의 현황>
최근 수년 동안 베트남 협동조합은 베트남의 도이모이(경제혁신) 정책에 따라 구체제 하의 협동조합을 새로운 협동조합으로 변혁하는 과정에 있다.

2002년 12월 말 현재 베트남 국내의 생협은 단협이 398개, 연합회가 13개이다. 호치민시가 가장 많아 단협이 80, 연합회가 2개이다. 이것은 전국의 21.6%이다. 이어 츄론 델타지역이 20.3%, 북부가 8.8%, 북서부산악지대가 3.0%이다. 조합원은 전국에서 3만 1천명이다.

협동조합 개혁의 성과로서 단협의 리더가 연수를 받아, 단협 연합회 이사장의 51.4%, 회계책임자의 60.2%, 감사회 리더의 40.8%가 교육훈련을 받았다. 생협 자본금은 총계 로서 전년비 2.7배가 되고 전체의 70% 생협에서 잉여가 발생하였다. 생협의 공급액은 평균 8-10% 증가하고 있다.


<베트남생협의 취약점>
생협의 대부분은 대도시에 존재하고, 농촌이나 산악지대에서는 그다지 강하지 못하다. 하노이, 하이퐁, 다낭, 호치민의 4대 도시에 전체 35.6%의 생협이 존재한다. 생협의 규모는 작고 자본력이 낮고 시설은 시대에 떨어져, 시장 경험이 적은 것은 단점이다. 매네전 직원의 지식이나 기술은 아직 향상의 여지가 크다.


<향후 베트남 생협의 발전 방향>
-도시형 생협을 발전시키려면 정부 임원, 노동자, 교원, 대학과 직업훈련학교의 학생 등을 대상으로 조직을 확대해야 한다.
-잉여금 처분 방법은 조합원 간에 공평하게 처리해야 한다.
-정부 역할과 생협의 기능을 나누어 추진해야 한다.


<앞으로 발전하려면>
-협동조합이 보다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정부의 정책과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협동조합법 제정 뒤 사실에 맞지 않는 부분을 검증하고 법개정을 추진한다.
-협동조합과 저우 직영사업, 기타 경제 섹타의 협력관계를 구축한다.
-생협에 대한 정부의 효율적 관리와 실효성을 높인다.
-각 협동조합이 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연합회의 역할을 명확하게 한다. 협동조합의 홍보활동을 개선하고 정부의 정책이나 법제도 개혁에 개입도를 높인다.


자료. 2003년 2월 18일 열린 ICA 아태지역생협위원회 보고자료, `베트남의 생협`에서.
일본 생협전국연합회 자료에서 번역함.

* 출처 : 참좋은생협
http://www.charmjhon.or.kr/club/cross_club_view.htm?skey=&sel_key=&st=117&wh=s_cross_club&sno=50

2014년 10월 30일 목요일

36 Hours in Hanoi (퍼옴@New york times)


BY Jonah M. Kessel and Eugene Yi | Oct. 29, 2014 | 5:36

Hanoi is changing fast, but with its tree-lined lanes, graceful old architecture,
a flourishing arts scene and sophisticated night life, the city is having its moment.

* * *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곳 중의 하나, 그러나 여전히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
'New york times' 에서 바라본 하노이의 새로운 모습

2014년 7월 17일 목요일

베트남에 원전 수출? (퍼옴@한국NGO신문)

출처 : 한국NGO신문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천병태 이사장
 기사입력 2014/03/01 [04:26]

2014년 1월 20-22일 개최된 「제5차 원자력 Asia 2014」 참가로 베트남 Hanoi를 다녀왔다. 
2006년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 2007년 WTO 가입 등으로 나타났다. 러나 최근의 베트남은 2012년 5.03%로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과 심각한 자원고갈, 환경오염, 사회적 갈등 등 경제성장에 뒤따르는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 일례로 동남아에서 3번째로 많은 석유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석유는 이미 2011년 순수입국으로 전환됐으며, 석탄 역시 2015년에는 순수입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에너지생산이 소비를 충당할 수준이었으나, 매년 전력수요 증가율이 14%에 이른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에너지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비해 전력공급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전력공급이 안정적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수력 43.9%, 가스화력 34.2%, 석탄화력 18.9%, 수입 2.2%(2012년 기준 베트남의 전원별 발전량)에서 보듯이 지나친 수력발전 의존도 때문이다.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 베트남은 과거 주로 강수량이 적은 건기에 정전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우기에도 충분한 강수량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자연의 상황에 따라 발전량이 결정되는 수력발전으로는 기후변화로 인해 안정적 전력공급이 어렵게 되었다. 불안정한 전력공급은 잦은 정전사태를 일으켜 주민 생활의 불편은 물론 기업의 생산 활동까지도 어렵게 하는 등 경제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와 에너지원의 다변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즉 기후 등과 관계없이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에너지원의 필요성과 이산화탄소 배출감축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2020년까지 베트남 최초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운영할 계획에 있다.
베트남의 원자력발전은 2010년 발표된 원자력 마스터플랜에 의하면 2030년까지 8개 지역에 총 14기의 원전을 신규 건설하기로 되어 있다. 동 계획은 1단계 2015년까지 투자, 입지, 계약자 선정 및 기술자 교육, 2단계 2015-2020년까지 1,000MW급 발전소 가동, 3단계 2020-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13기를 건설한다는 3단계로 되어 있다. 그 계획에 따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최초의 원전 건설프로젝트인 제1기(Ninh Thuan 1, 2호기) 건설공사는 이미 러시아에 돌아갔으며, 2010년 10월 베트남 정부와 러시아 정부 간 정식협정이 체결되었다. 제2기 공사는 2010년 10월 일본이 최종 수주하였다.
우리나라는 5, 6호기 원전건설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베트남과 진행 중에 있지만, 막대한 자금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일본과 러시아가 맹추격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 첫 원전건설 계획을 6년간 연기한다고 발표하였지만, 지금 베트남에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 원전수출 기술을 가진 국가들의 사활을 건 수주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여 원전수주에 힘을 보탠 것 역시 그 치열함의 증거이다. 현재 핀란드로부터 원전수출이라는 희소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2009년 UAE 원전수출 이후 별다른 성과가 없는 원자력계에 베트남의 원전시장이 또 다른 성장 동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간절하다.

베트남과 한국은 두 국가 모두 내전을 겪고, 식민 지배를 받았으며 빈곤과 저개발 상태를 극복해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공통점으로 베트남인의 마음속에는 한국은 흥미롭고, 접근하기 쉬운 문화라는 의식이 깔려져 있어서, 어쩌면 이것이 최근 베트남 한류 열풍의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아마 베트남 국민들은 한류라고 하는 문화를 접하면서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또 다른 한국」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막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산업화의 역군 원자력발전이 있었고, 지금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과 그 과정에서 세계 최고의 원자력기술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베트남 국민이 알게 된다면 「또 다른 한국을 꿈꾸는 베트남」의 원전수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 재단에서도 지난 12월 일주일에 걸쳐 베트남 과학기술부, 외교부, 베트남원자력기구, 현직기자 및 원자력 유관기관 공무원을 상대로 「한국-베트남 원자력 PA 트레이닝 워크숍」을 개최한 바 있다. 이러한 자그마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베트남 원전수출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천병태 이사장 



<사설>------------------------------
동남아시아 최초로 베트남이 원전을 건설한단다. 것도 14개나. 누구를 위해 전기가 필요한 것일까? 몇십년 정전과 물난리를 매해 겪어왔던 주민들이 불편한걸까, 아니면 갑자기 밀고 들어오는 외국 기업들이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필요한 걸까? 베트남 정부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렇게 갑자기 원전을 만들겠다고 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베트남 구석 구석에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 보급된다. 이미 베트남 전체 세수의 18%를 낸다는 S사는 추가로 대규모 공장을 지을 계획에 있고, 중국에서 S사 밑에 있던 1,2차 밴더들이 베트남으로 엄청나게 넘어왔다. L사가 베트남의 유통업계를 뒤흔들만큼의 준비를 하고 있고, 호치민이나 하노이에서 한국 교민들을 만나는 건 오래전부터 어렵지 않았다. 한국 학교는 이미 포화상태라 아이들을 선별해서 뽑는다는 이야기도 돈다. 모든 아이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공교육인데 타 외국인 학교와의 경쟁 때문에 아이를 가려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미 베트남에 자리잡은 여러 한국의 식품 업체들 덕에 한식, 한국식 카페, 베이커리 등을 즐기는 건 이제 일상이다. 한때 한국에 징그럽게 퍼져 나갔던 XX베네 커피전문점이 베트남에도 상륙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올해 2014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사이공에만)스타벅스가 들어오게 된 세계 2위의 커피 국가에, 몇년 후면 여기서도 징그럽게 그 커피 전문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의 낭만있는 노점 커피숍들이 힘들어질 날들도 올 것이다.

어른들조차 '오빠'라는 단어를 알 정도로 한국 아이돌과 한국 드라마에 열광을 한다지만, 공부를 잘해야만 갈수있는 인기학과인 한국학과 학생들은 막상 졸업을 하고 한국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너무 힘들어 한다. 돈은 다른 직업보다 많이 벌지만 한국회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가족'보다 '일', '노동자'보다 '회사'가 우선시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오신 한 아줌마가 베트남은 원래 주6일제 이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아니요. 왠걸. 베트남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주 5일제였다. 야근과 주말근무 등을 좋아하는 한국, 일본 등의 외국계 회사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더니, 이제 하노이의 베트남 큰 회사들도 덩달아 주 6일제를 하기 시작했다. 나쁜건 늘 금방 배우는 법이니까...

나는 가끔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 베트남이 한국의 30~40년전 같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건 지난 30~40년간의 한국을 고대로 답습하길 바라는 의미는 아닐게다. 그렇다고 한국과 동등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훌쩍 자라버리는 것도 반가워 할 사람은 많지 않을게다. 베트남에 들어올때 이들 고유의 문화와 역사와 이야기를 지켜주면서 들어오면 안될까? 이미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신중하게 들어보고 살펴보고 조금씩만 들어오면 안될까? 조금 늦더라도 그들의 방식대로 일어날 수 있게 조금만 천천히 들어오면 안될까? 

싱숭생숭 복잡복잡한 어느 날... 하노이에서.

하노이시, 경제발전 및 정비 계획 수립 (퍼옴)

 자료 : Vietnam News, 베트남 정부 및 코트라 하노이KBC 자체종합


하노이시, 경제발전 및 정비 계획 수립

- 하노이 정치중심지에서 경제발전 거점도시로 변화 모색 -


□ 개요


 ○ 2010년은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 정도(定都) 1000년을 기념하는 시기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음.
  - 지난 4월 하노이시와 인민위원회는 정도 1000년 기념을 위해 각종 사업을 추진함과 동시에 경제발전 마스터플랜을 발표했음.
  - 경제발전 계획에 의하면 하노이는 올해부터 연간 10% 증가율 달성을 목표로 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를 추진 중

 ○ 또한 하노이는 지난 4월 말 도시 개발 마스터플랜을 공개하는 등 정도 1000년 기념 분위기가 고조됨.(Vietnam News 4월 28일)

□ 주요 내용

 ○ 하노이는 1975년 통일 이전 북베트남의 수도는 물론 이전 왕조의 수도로서 역사가 깊은 도시임.
  - 그러나 베트남 최대의 상업도시인 호찌민시에 투자 및 인프라가 집중돼 있어 호찌민과 경제적 격차는 매우 큰 상태임.
  - 외국인투자기업들은 하노이의 인프라가 열악하고 시장 성숙도가 낮아 투자 대상지로 호치민시를 선호했음.
  - 이러한 이유로 그동안 베트남은 정치 중심지로 하노이, 경제 중심지로 호치민 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했으며, 하노이 경제발전에 저해 요소로 작용함.
  - 하노이는 호찌민시에 비해 대기오염, 쓰레기, 하수처리 등의 문제가 심각해 생활여건이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바, 하노이 시장국은 이를 극복하고 경제 도약을 하기 위해 노력함.

 ○ 하노이 경제발전 계획 수립
  - 하노이는 베트남의 평균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10% 성장목표를 수립해 하노이는 물론, 베트남의 경제성장을 기여하겠다고 밝힘.
  - 이를 위해 생필품의 'Made in Vietnam' 사용하기, 하노이 시민을 위한 직업훈련 강화, 하노이 지역 생산품목의 수출상품화 등을 추진키로 함.
  - 하노이는 현재 9만5000여 개의 기업이 있으며, 외국인투자금액도 3억 달러에 달해 하노이 경제발전 기반은 갖춘 것으로 나타남.
  - 하노이시 당국과 인민위원회는 기업들에 대해 향후에도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창출을 독려해 10% 성장률 달성을 모색하고 있음.

 ○ 하노이 도시개발 계획
  - 정부종합청사 조성 : 현재 하노이 시내 곳곳에 혼재된 정부청사를 시내 중심에서 약 30㎞에 있는 Ba Vi 지역에 정부종합청사 단지를 조성해 이전하는 것임.
  - 하노이는 홍수 범람, 단전, 쓰레기, 하수도 부문이 고질적인 문제로 대두되며, 하노이 개발계획을 통해 기술 복합 도시로 변모를 모색함.
  - 하노이시는 거주지로서 인기가 낮은 홍강 유역에 교육단지를 조성해 기존 대학 이전 및 대학을 설립해 도시 균형 발전과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학을 육성키로 함.
  - 하노이 지역을 둘러싸는 Hoa La, Son Tay, Xuan Mai, Phu Xuyen 및 Soc Son는 위성도시로서 베드타운, 녹지공원으로 개발될 예정임.
  - 또한 도시 공간의 68%를 자연친화적인 녹색회랑(Green Corridor)를 조성할 계획이 포함돼 있어 주목됨.

□ 문제점

 ○ 정치 중심지인 하노이가 발전을 위해 신도시 개발 등 부분적으로 추진한 프로젝트는 있었으나 경제발전 계획을 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국가 균형발전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됨.
  - 그러나 경제발전 계획을 보면 시민의 실천 운동, 기업에 대한 투자 및 고용 창출 요구 등이 중심으로 제도적 인센티브 등 시 정부 차원의 이행계획은 다소 미흡함.
  - 특히 경제 성장 거점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수인력 유치, 생활환경 개선 등 기본 요소가 이뤄져야 함에도 이에 대한 언급은 없음.

 ○ 하노이 개발 마스터플랜은 향후 20년간 추진될 계획으로서 개발과 동시에 몇 가지 문제가 노정될 가능성이 있음.
  - 하노이 인민위원에 자료에 따르면 이 계획 추진시 시내 거주자 40만 명의 이주가 불가피해 도시 빈민 발생 우려가 있음.
  - 최근 급증하는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비해 도로 포장률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어 교통체증 및 하수도 시스템 개선에 대한 실현 가능성도 의문시됨.
  - 대부분의 인프라는 원조에 의존하는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나 2010년 이후 인프라 관련 원조 유입도 주춤하고 나아가 원조금 사용에 대한 투명성 확보노력도 병행돼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 재원조달 방안도 더욱 구체화돼야 할 것임.


2014년 5월 5일 월요일

What will it take to end poverty in Vietnam? (퍼옴@World Bank)



Vietnam's poverty rate has fallen from nearly 60 percent to 20 percent in the past two decades, but challenges remain. Let's follow a story of two brothers born in a poor family, one living in the mountainous area, one migrating to the city, to respond to the question: What will it take to end poverty in Vietnam?

베트남어(Tiếng Việt) : http://bit.ly/1iSbWdE 


지극히 월드뱅크 스러운 영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는 ‘이미 중소득국이 된 베트남을 왜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대적인, 사회적인 답이 영상에 담겨 있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하노이 시내의 높은 빌딩과 자동차들이 아니라 그 뒤에 가려진 제2, 제3의 풍꽁, 풍땃 형제들이다.

2014년 5월 2일 금요일

Liter of Light Project in Vietnam (퍼옴@VTV1)




Liter of Light Project (베트남어로는 Chai nước chiếu sáng thay bóng điện)는 필리핀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며, 빈 패트병에 물 1리터와 약간의 표백제를 넣어 지붕 사이에 끼우면, 빛이 패트병을 통해 실내로 들어와, 한낮에도 어둠속에 살아가야만 했던 산악지역이나 도시빈민들이 밝은 실내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 주는 프로젝트이다. 세계 여러 국가에 이어, 베트남의 북부 하장 지역에서도 진행되었다. 영상은 베트남 뉴스에 나온 베트남 프로젝트 이야기. 

전체 프로젝트 홈페이지 : http://aliteroflight.org/

2013년 6월 19일 수요일

[Vietnam 사회적기업] '청년 개발 핸디 크래프트'의 매력녀, 찌찌(chi chi) 예찬론

* 이 글은 여행대안학교 '로드스꼴라' 4기의 베트남&라오스 여행 문집에 실린 글입니다.


< 매력녀, 찌 찌(Chị Chi) 예찬론 >

- 로드스꼴라 길별, 부탄


*베트남어로 Chị는 손위 여성의 이름 앞에 붙이는 호칭이다. ‘찌 찌(Chị Chi)’는 베트남어로 ‘찌 언니’라는 뜻이다.



”저… 아직 학생들이 자고 있지 않다면, 내가 살짝 들어가도 될까요?”

갓 샤워를 마치고, 촉촉한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 안은 찌찌가 여자 방문 앞에서 멈칫하며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아 그럼요. 들어오세요.“

깻도안 사무실의 2층 창고에 정성스럽게 마련해주신 잠자리 위에서 다 같이 헤벌레 누워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있던 아이들은 찌찌의 갑작스런 방문에 스물스물 이불을 둘러매고 일어났다.

“오늘 어땠나요? 피곤하죠?”

이곳 ‘깻도안 누에, 커피 농장’의 공정여행을 책임지고 있는 찌찌가 엄마 미소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첫 만남부터 아이들에게 ‘언니라고 불러요’라고 쿨하게 말했지만, 사실 누가봐도 엄마 혹은 이모 뻘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열심히 언니라고 불렀지만.

“아니요오오오… 괜찮아요오오오…”

저런, 영혼 없는 대답들. 내가 민망한 미소로 찌찌를 바라보자, 그녀는 다 안다는 듯한 눈빛으로 다시 함박 미소를 띄운다.

“제가 사실 오늘 여러분에게 할 말이 있어요.”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중하게 입을 여는 찌찌의 말에 아이들이 눈이 반짝인다. 그녀는 분명 사람들을 주목시키는 무언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작은 다락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선이 고정된 가운데 찌찌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저는 어릴 적에 베트남 남부 메콩강 근처의 빈롱(Vinh Long)성에 살았어요. 우리 동네는 매우 가난했고, 우리 집도 매우 가난했죠. 열 일곱 살쯤 되어 나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호치민시(Ho Chi Minh City)로 나와 공장에 들어갔죠. 내가 처음 일하게 된 공장은 한국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그 공장은 굉장히 열악했어요. 근무는 새벽부터 시작해서 밤늦게야 끝났죠. 쉬는 날도 없었구요. 공장 옆의 컨테이너 기숙사에서는 요만한 작은 방에 여러 명이 꽉 차서 자야만 했죠. 선풍기, 냉장고는커녕 화장실도 공용이었고, 뜨거운 물도 없었죠.

베트남에서는 임신을 하면 4개월간 출산휴가를 받고, 보험금으로 수당도 받고, 출산 후 당당히 돌아와서 일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사장님은 그러지 않았어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4개월의 출산 휴가는 커녕 출산 수당을 다 받지도 못했고, 출산 후에 다시 못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어요. 베트남에서는 당연한 건데 말이죠.

내 친언니가 재봉기술자로 나보다 먼저 일하고 있었는데, 몇 년간 그곳에서 일하면서 몸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그런 환경 속에서 몇 년을 고되게 일을 하니 몸이 성할 리가 없죠. 나는 그 상황과 우리 언니를 보면서 8개월 만에 그 공장을 그만두었어요. 언니의 지금 모습이 몇 년 뒤 내 모습일 것만 같았어요. 나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으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죠.”




잠시 모두의 침묵이 흘렀다. 창 밖의 매미 우는 소리, 문 밖에 남자 애들이 떠드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어릴 적, 나는 두 개의 나라를 너무 싫어했어요. 하나는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싫어하는 중국. 그리고 다른 하나는… “

“한국이요?”

한 아이가 되물었다. 그러자 찌찌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한국. 내 고향 빈롱에서는 한국으로 시집가는 여자들이 많았어요. 어릴 적부터 나는 늘 한국으로 시집을 가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자라왔고, tv에서는 한국으로 시집 갔다가 남편에게 맞거나 죽은 베트남 여성의 이야기가 나왔어요. 나는 그때부터 한국이라는 나라가 싫어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첫 직장인 호치민시의 한국공장에서 일하면서 한국이 더 싫어졌어요.”

아이들 얼굴에 조금 당황스런 빛이 돌았다. ‘이런 얘기를 왜 하는 거지?’라는 궁금증 어린 표정부터 ‘안 됐네..’라는 공감의 표정까지. 나 역시 이번 베트남 여행 중 처음 맞는 낯뜨거움 이었다.




사실 내가 2년 동안 지냈던 하노이 외곽의 시골 마을에서조차 한국에서 일하다 온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앞집 아줌마의 조카, 슈퍼 아주머니의 친척 동생, 동네 쎄옴(오토바이 택시) 아저씨… 등 한국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귀국 이주 노동자’들이 그 당시 ‘한국인 이주노동자’ 신분이었던 내 주변에 널려 있었다. 넉살 좋은 하노이 사람처럼 그들과 한바탕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한국생활이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는 모두들 하나같이 ‘한국 이쁘다’, 한국 깨끗하다’, ‘한국사람 똑똑하다’ 정도의 대답뿐, 정작 내가 궁금해 한 그들의 진짜 한국 생활에 대한 사담은 일체 들을 수가 없었다. ‘좋은 게 다 좋은 거다’ 라고, 앞에서 얼굴 붉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의 성향 덕분에 더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옆에서 이야기하는 이 여자를 보라. 이렇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쏙쏙, 그것도 직구로 시원하게 던져줄 수 있는 베트남 여성을 만난 건 나 역시 첫 경험이었다. 찌찌의 당돌함에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간 대답 없이 반복되었던 내 질문들이 방향을 찾은 듯 하여 나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다면 불편했을 수도 있을 이야기를 찌찌는 솔직하게 이어나갔다.

“’아맙(AMAP)’이라는 단체를 만났어요. 어느 날 우리 ‘청년 개발 핸디 크래프트’ 사무실로 구수정 선생님과 권현우 선생님이 찾아왔죠. 그리고는 그들이 중부에서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을 알게 되었어요. ‘아, 이런 한국 사람들도 있구나’, ‘한국인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한국에 대한 마음을 열고 그들이 하는 일을 응원하게 되었고, 이렇게 오늘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여러분은 제가 처음 만난 한국 청소년들이에요. 근데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하면서 한국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라는 하나에요. 하하하하 맞아요. 중국이에요.”

베트남 내 큰 중국 공장들의 열악한 노동자 환경, 그리고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아직 중국은 좋아할 수 없겠다면서 호탕하게 웃는 찌찌, 그녀를 보고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비친다.



* * * * *



내 베트남 이름은 ‘링(Linh)’ 이다. 4년 전 처음 하노이에 도착해서 만난 베트남어 선생님이 이름을 지어달라는 내 요구에 귀찮은 듯,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 이름을 준 게 시작이었다. 그 후로 베트남에서 나는 줄곧 ‘링’ 이었다.

“링, 내가 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농민들과 함께 협동농장에서 커피나무를 자르고, 뽕잎을 따는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마당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내 옆으로 찌찌가 슬그머니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학을 가서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었어요. 영어선생님을 구한다길래 찾아 갔는데, 길거리 비닐하우스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죠. 부모가 없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놀며 지내는 곳이었는데, 저는 3일째가 돼서야 그곳에서 저한테 급여를 줄 수 있는 형편이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자원봉사자를 모집한 것이었죠. 저는 당장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다른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그만둔다고 말했어요. 아이들은 펑펑 울더군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구할 때까지 며칠만 더 있기로 했는데, 그게 며칠이 되고, 몇 주가 되고, 몇 달이 되더니, 결국 몇 년을 그곳에서 활동하게 되었지요. 하하. 다행히 그 간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했구요. 차비조로 한 달에 만 원 정도를 주었지만, 일주일에 두 번씩 그곳에 갈 때마다 과자니 우유니 사가느라 정작 제 돈을 더 써야만했죠. 수년간 활동하면서 아이들이 자랐고, 그때 처음 초등학생으로 만났던 친구들은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죠. 저기 투이(Thuy) 보이죠? 투이 저 친구도 초등학생일 때 그 비닐하우스에서 저를 처음 만났어요.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다가, 저희 ‘청년 개발 핸디 크래프트’의 정식 직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한쪽에서 열심히 짐을 나르고 있는 활발하고 성격 좋은 스물다섯의 투이(Thuy). 호치민에서부터 우리의 럼동성 깻도안 공정 여행을 찌찌와 함께 준비해 온 친구다. 늘 함께 있으면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득 내 뿜는 이 젊은 친구가 찌찌의 첫 학생이었다니, 이 공간에서 풍기는 오랫동안 묵힌 연대의 느낌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쩐지 ‘찌찌(찌 언니)’라고 해도 될 법 한데, 투이는 늘 ‘꼬찌(찌 선생님)‘ 이라는 호칭을 쓰더라니..

“그러다 저는 대학원에서 국제개발(International Development)을 공부했어요. 그리고는 베트남의 여러 로컬 NGO에서 PM(Project Manager)로 일을 하게 되었죠. 덕분에 필리핀에서 1년간 더 공부를 할 기회도 있었고요. 기존 국제개발 NGO의 한계를 느꼈어요. 다양한 지원으로 자립을 돕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그들 스스로의 힘을 합쳐, 함께 천천히 성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제가 일하는 ‘청년 개발 핸디 크라프트’는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수공예품을 만들고, 공정여행을 진행해요. 호치민 시내에 사무실과 수공예품 매장은 있지만, 작업장은 일부러 호치민 외곽에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줄어든 임대료로 작업장 옆에 노동자들의 숙소를 만들었어요. 저희 기숙사엔 선풍기와 냉장고, tv도 마련되어 있어요. 물론 각자 잘 수 있는 공간도 넉넉하고요. 그리고 임신한 여성, 출산 휴가를 받은 여성, 그리고 출산 후 갈 곳이 없는 모든 여성 노동자들이 언제든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지요.“




이미 열 명 남짓한 직원 중에 2/3 정도가 임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내내 과거 한국공장의 노동자였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는 듯 했다. 그리고 몇 번씩이고 기숙사의 설비와 이용 환경을 자랑하며 그녀가 자신의 일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한 때 노동자의 신분으로 상처를 받았던 그녀가 어느새 지금은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고, 그들로부터 힘을 얻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 그녀의 소망은 좋은 회사를 다니는 것도, 이제 갓 8개월 된 딸아이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닌, 여성 노동자들이 지금처럼 편안한 환경에서 계속 어울려 즐겁게 일하고, 올 해 깻도안의 커피와 누에 수확량이 더 많아져서 모든 조합 노동자들의 임금이 조금씩 올라가는 것이었다.

땀 흘려 일한 만큼의 노동의 힘을 아는 그녀, 나 혼자 아니라 함께 어울려 잘 사는 법을 꿈꾸는 그녀, 한국에서 온 청소년들을 위해 계획에 없던 ‘짜죠(베트남 만두)’ 요리 교실을 만들고 40인분의 김치를 직접 담궈 멀리까지 가져와 조심스레 내미는 그녀, 아무리 돈을 많이 주는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 이렇게 당돌하고도 푸근한 ‘찌 언니’, 내 어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매력녀 찌 언니와 함께하는 베트남 요리교실  @choi yuri


2012년 1월 22일 일요일

[국제자원활동] 아름답게 떠난다는 것 : 2011 동계 단국대 봉사단 평가집 기고

아름답게 떠난다는 것

-베협력센터 최유리 간사 -

여름겨울 방학 시즌이 되면 하노이 공항 입국장에는 봉사단이라는 이름 하에 수많은 한국 청년들이 밀려 들어온다나 역시 베트남에 2년 남짓 활동하는 기간 동안 총 9팀의 대학생기업청소년 봉사단을 비롯하며 약 500여명의 오고 가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던 것 같다봉사단을 기획하고 진행한다는 것은 사실 큰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이미 봉사단이 돌아간 뒤현장에서의 리스크를 여러 번 경험한지라 잘해야 본전이고다양한 요구들 사이에서 욕을 먹지 않으면 다행이다하지만 그렇게 수십 번째 공항 마중이라도,막상 공항에서 피켓을 들고 서면봉사단이 나오길 기다리는 그 순간은 무척 즐거운 일이 된다. ‘이번엔 또 어떤 친구들이 우리 마을에우리 동네의 학교에 밝은 에너지를 듬뿍 전해주고 갈까?’라는 생각에 설레기 때문이다물론 개인적으로는 봉사단과 함께 찾아오는 우리 한-베협력센터 아주머니들의 황홀한 식사가 기대되는 것도 무시 못하지만 말이다.하하하.




한국에서 대학생 봉사단이 오면나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꼭 해주곤 한다.
여러분이 오셔서 봉사 활동하는 그 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이곳을 떠나시고 난 뒤 그 학교가그 마을이 어떨까를 계속 생각하는 것입니다무조건적으로 퍼주고 가는 것은 이곳에 도움이 안됩니다우리가 떠난 뒤에 학생들이 한국 선생님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학교와 학교 선생님들을 더 사랑하고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게 더 중요합니다학교 선생님들보다 더 좋은 교육을 해주고 오는 것이 아니라조금은 부족하더라도 학교 선생님들이 직접 애정을 갖고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언제 또 만날지 모르는 우리가 아니라그 곳에 살고 있고그 나라를 이끌어 갈 베트남 대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이런 봉사활동에 나설 수 있게 인식을 심어주는 게 더 중요합니다활동하는 동안에도 계속 우리가 떠나고 난 뒤의 이곳을 생각해 주세요어짜피 우리는 떠날 사람이니까요.”


단국대학교 봉사단의 활동이 끝난 지금돌이켜보면 단국대 친구들은 내가 전해주고 싶었던 이 말의 의미들을 잘 이해해주고 돌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처음엔 한국에서 준비해왔던 것과는 다른 현지의 상황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지만고맙게도 그 변화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친구들 마음속에서 시작되었던 아주 작은 변화들은 점점 커져서결국 떠나는 그 순간 아주 큰 에너지로 만들어졌다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서른 네 뭉치의 에너지들은 언제어디서든 이 세상을 더욱 따듯하게 만들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가장 아름다운 변화는 여러분이 베트남에 만들어 주고 온 것이 아니라바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아름답게 떠나준 그대들고맙습니다깜언 :)





_'2011 동계 단국대 봉사단' 평가집 기고

2012년 1월 16일 월요일

[국제자원활동] 제3회 ‘한-베 자원활동 캠프’ 참가자 ‘프엉(Phuong)'의 이야기


'지구촌나눔운동'의 베트남 사업소 중 하나인 '한-베협력센터'는 2010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베트남에서 총 4회의 '한-베 자원활동 캠프'를 진행했다. '한-베자원활동캠프'는 이전까지 한국 대학생들이 주가 되어온 봉사 프로그램에서, 양국의 청년들이 함께 먹고 자고 준비하면서 동등한 입장에서 자원활동에 참여하며 국제개발협력과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약 10일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캠프에 참가한 양국의 청년들은 서로의 국가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갖고, 단기 자원활동 프로그램 이후에도 지속적인 교류와 각국에서의 자원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여름, 땀과 눈물을 쏟아냈던 '낌안 중학교'에 다시 다녀왔어요!!"
-제3회 '한-베 자원활동 캠프(Viet-Korea Volunteer Camp) 참가자, 프엉(Phuong)의 이야기



지난 2011년 무더웠던 여름, 37명의 한국과 베트남 청년들이 베트남 하노이시 탕와이현 농촌마을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낌안 중학교'에서 열흘동안의 자원활동을 하고 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겨울, 낌안 중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40도를 웃도는 더위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땀과 눈물을 듬뿍 쏟아내고 갔던 그 여름의 양국 대학생 청년들을 아직도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 함께 활동을 했던 베트남 대학생인 프엉(Phuong)에게서 반가운 연락이 왔다. 서툰 한국어로 조심조심 말하는 프엉의 용건은 바로 베트남 외상대학교 봉사단 학생들이 '낌안 중학교'에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2012년 1월 6일, 다섯명의 아름다운 베트남 청년들이 아름아름 모아 온 '헌책'을 양손 가득 들고 두시간의 이동 끝에 그리웠던 '낌안 중학교'를 다시 찾았다.



다시 만난 베트남 외상대학교 한국학센터 봉사단과 낌안 중학교 학생들



영원한 이별일 줄로만 알고 펑펑 울던 서로가 다시 만난 것이 놀라운지, 처음에는 베트남 대학생들도 낌안 중학교 학생들도 이 놀라운 상황에 어색해했지만, 곧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다시 또 이야기 꽃을 피웠다. 프엉과 친구들은 6개월 사이에 훌쩍 자라난 아이들을 발견하고는, 자신보다 키가 커진 여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연신 즐거워했다. 그러나 자라난 것은 낌안 중학교의 아이들 뿐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응안(Ngan)은 그새 대학교를 졸업해서 어엿한 회사원이 되었고, 프엉을 비롯한 많은 친구들은 사회로 나가기 위한 졸업 준비에 바빴으며, 베트남에서 마지막 추억을 봉사활동으로 마친 아잉(Anh)은 공부를 위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고, 베트남어보다 한국어 이름이 더 잘 어울렸던 민후(Hung)는 한국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난 여름 봉사활동 이후, 캠프에 참가했던 베트남 대학생들 모두는 한국어 공부와 봉사활동에 더욱 관심이 많아진게 가장 큰 변화였다.



반년 사이 키가 훌쩍 커버린 낌안 중학교 학생들과 프엉(가운데)


어색함도 잠시, 다시 만나 반가운 응안(Ngan)과 낌안 중학교 학생들


다시 찾은 청년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낌안 중학교 사서 선생님은 봉사단이 개관식을 했던 처음보다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가 잘 되고, 넓어진 '꿍냐우 희망 도서관'을 자랑스럽게 소개해 주셨다. 그리고 이날 가지고 온 헌 책도 도서관 한켠에 잘 정리해 주셨다.



모아온 헌 책을 낌안 중학교 '꿍냐우 희망 도서관'에 기증하는 외상대 친구들



그리웠던 낌안 중학교에서 반가운 만남을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을을 나오는 길, 유채꽃이 아름답게 핀 길에서 프엉은 입이 귀에 걸린 채 '"오늘 너무 행복해요!!" 라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며칠 전 베트남 뉴스에서 베트남 북쪽 산간지방에 헤진 옷을 입고다니는 소수민족 아이들의 모습을 봤다면서, 친구들과 헌 옷을 모아 기증하는 일을 벌일 계획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늘이 만남이 어땠내는 질문에 프엉은 이런 메일을 보내주었다.



Hôm nay tôi đã cùng các bạn v thăm lại trường THCS Kim An -  nơi mà chúng tôi và các bạn sinh viên Hàn Quốc đã cùng nhau làm tình nguyện vào tháng 7/2011. Thời gian thật sự trôi rất nhanh,mới đó thôi mà đã 6 tháng trôi qua.

Gặp lại các em học sinh tôi thật sự rất vui,chúng tôi đã được các cô giáo trường Kim An đưa đi thăm Thư Viện Cùng Nhau Hi Vọng. Thư viện được cô giáo và các em học sinh giữ gìn sạch đẹp.Việc xây dựng thư viện này thật sự rất có ý nghĩa,vì ở đây các em học sinh có thể ngồi đọc sách hoặc học bài nên có vẻ rất vui.

Bên cạnh những quyển sách và truyện mà chúng tôi đã sắp xếp ban đầu nhà trường đã trang bị thêm rất nhiều sách tham khảo tốt và phân loại theo từng khu vực tạo điều kiện tốt cho các em học sinh học tập.


Hơn nữa đến bây giờ các em học sinh vẫn rất nhớ các giáo viên Hàn Quốc của mình,các em đã nói là sẽ chăm chỉ học thật tốt để sau này có thể đến Hàn Quốc.Tôi nghĩ như vậy có thể thắt chặt hơn tình bạn của hai nước Việt – Hàn. Xin chân thành cảm ơn Tổ chức GCS  Hàn Quốc và Trung tâm hợp tác Việt – Hàn đã giúp đỡ chúng tôi.

16/01/2012  Phuong

(번역)
오늘저는 친구들과 함께 다시 낌안 중학교에 다녀왔습니다. 낌안 중학교는 지난 2011년 7월에 우리 외상대 한국학센터 친구들이 한국의 대사협 봉사단인 L.I.V 팀과 함께 자원활동을 했던 곳입니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났습니다. 그곳에서 활동을 한지 벌써 6개월이나 지났네요.

학생들을 다시 만나서 아주 기뻤습니다. 낌안 중학교 사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낌안 중학교 '꿍냐우 희망 도서관'을 다시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도서관은 정말 깨끗하고 예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도서관을 만드는 것은 아주 의미있는 일 같습니다. 이 도서관에서 여기 농촌의 학생들이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으니 저는 매우 기쁩니다. 도서관의 한쪽 면에는 소설과 여러 책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고,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좋은 참고서와 좋은 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만난 학생들이 한국 선생님들(한국 대사협 봉사단)을 보고 싶다고 하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한국에 꼭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전 이런 것들이 바로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우정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촌나눔운동과 한-베협력센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2년 1월 16일 프엉




돌아오는 마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 프엉네 반 학생들

일반적인 봉사단 활동 이외에도 이런 '-베자원활동캠프'를 기획하고 진행해왔던 입장에서 가장 보람있는 일은 바로 활동이 끝나고 들려오는 봉사단 친구들의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활동 소식이다틈틈히 들려오는 베트남에 다녀간 한국 친구들끼리의 국내 봉사활동이나 기부 등의 선행 소식그리고 함께 활동을 했던 베트남 대학생 친구들의 작은 변화들에 대한 소식 말이다

1, 2 ,3나는 이렇게 총 세 번의 한-베 자원활동 캠프를 진행했는데매번 활동이 끝나고 나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첫번째 캠프에 참여했던 친구들은 자체적으로 봉사단을 조직한다는 소식을 들었고실제로 몇몇 친구들은 앞장서서 다른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를 했다두번째 캠프에 참여한 친구들 중 한 친구는 보수가 좋은 직장 대신에 하노이에 있는 베트남 로컬 NGO에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하노이의 명문대 중 하나인 외상대를 졸업한 우수한 인재로써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그 친구의 어려운 결정에 캠프에 참여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정말이지 보람을 느꼈다세번째 캠프에 참여했던 친구들은 유독 팀웍이 좋았는데,덕분인지 아직까지 모임도 자주 갖고 있고이렇게 '프엉'같은 학생들을 주축으로 활동을 했던 현지 학교에 방문하여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노력들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친구들의 사후 활동이야 당연히 반가운 소식이지만현지에 남아 활동했던 학교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나로써는 베트남 친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변화가 정말이지 너무 고마운 소식이다늘 떠나는 우리가 아니라현지 사람들의 변화를 고민하고 추구했던 나에게 그 베트남 친구들이 보여준 가능성은 역시 아직은 많이 부족한 이 '-베 자원활동 캠프'의 방향성과 진정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남아있는 사람들계속 살아갈 사람들그리고 이 나라를 이끌어갈 청년들이야말로 '자원활동 캠프'의 중요한 목적이자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