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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일 목요일

Prologue

'마이쩌우'의 이야기를 쓰려 합니다.
지난 4년간 내가 본 '락 마을'의 변화를
그리고 하오 아저씨 가족의 삶을
거짓 없이 깊게 기억하고 나누기 위해
천천히, 그리고 신중히 쓰고자 합니다.

때로는 반성의 글이 될 수도,
때로는 희망의 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이쩌우 이야기.
천천히, 쭈욱 응원해 주세요 :)

애증의 개구쟁이, 단

2014년 8월 26일 화요일

[Mai Chau] '가족'은 '짱'을 걷게 만든다

빙 아줌마의 친 언니가 살고 있다는 옆 타이족 마을 트레킹을 하던 중, 열아홉의 장애우를 만났다. 만나는 사람마다 타이어로 안부를 묻던 아줌마는 어김없이 어디론가 뛰어가는 이 소녀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내가 소녀의 장애에 대해 묻자, 아줌마는 내가 전에 일하던 엔지오의 장애인 재활센터에 저만한 나이의 친구가 들어갈 수 있는지를 되물었다. 안타깝게도 나이가 많은 친구는 입소 제외 대상이었다.

소녀를 보다가 문득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줌마의 조카 '짱'이 생각났다. 다른 옆 마을에 살고 있는 '짱'이 어릴적에는 엄마 품에 안겨 자전거를 타고 와서 한번 만났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후로는 본 기억이 없었다. 알고 보니 8살이 된 짱의 몸이 너무 커버려서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게 어려워진 것이다. 짱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 하던 우리는 결국 다음 날 짱네 집에 놀러가기로 했다.

*

다음 날, 모기장 안에서의 늦은 기상. 이미 빙 아줌마는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어 짱네 가져갈 과자를 여러 봉지 사다 놓으셨다. 우리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단지 놀러갈 뿐이라는 것을 여러번이나 어필했지만, 아줌마는 설레임은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집안의 장애 아이를 보러 누군가 가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줌마는 마냥 신난 듯 했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부슬비를 맞으며 도착한 짱네 집는 환하게 맞이해주시는 짱의 친할머니, 짱의 엄마, 그리고 집에서 손님을 처음 맞이한 짱과 4살난 짱의 여동생이 있었다. 며칠 몸이 아팠다는 짱은 낮선이의 방문에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엄마 품을 찾았다. 우리는 짱이 우리에게 조금 떨어진 침대에서 할머니 품에 앉겨 진정이 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온가족의 관심과 사랑으로 난생 처음 물리치료를 받아보는 '짱'  @choi yuri


잠시 후, 진정이 된 짱을 눕히고 여기 저기 살펴본 결과, 다행히 작업치료사인 수형이 보기에 짱은 아직 몸이 많이 굳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거의 누워서만 생활하던 짱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아이가 다양한 것을 보면서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게, 그래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는 수형의 말을 내가 베트남어로 통역하면, 내 베트남어를 빙 아줌마가 다시 타이어로 짱 엄마와 할머니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는 짱을 매일 아침마다 맛사지 해주는 법, 앉혀서 밥을 먹이는 법, 두명이 잡고 아이에게 걷는 연습을 시키는 법을 모두 알려줬다. 엄마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진지한 표정으로, 그리고 긴장된 표정으로 이 모든 것을 열심히 듣고 익혔다. 할머니와 외숙모인 빙 아줌마도 옆에 앉아 동작 하나 하나를 열심히 새기고 거들었다. 짱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맛사지를 받는 내내 우리와 눈을 마주치며 밝게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이족 전통집의 넓은 대나무 마루를 두번이나 걸은 뒤,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나서야 어렵게 한마디 뱉었다.

"놀러 나가요!"

한시간도 채 안되는 치료가 아이를 웃고, 걷고 싶게 만들었다.
짱은 연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계속 걷는 연습을 하고싶어 했다.
@choi yuri


*

아까부터 한쪽 구석에 있는 어린 동생 마이(Mai)의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과자를 줘봐도, 장난을 쳐봐도, 무릎 위에 앉혀봐도 미동이 없다. 아이답지 않게 줄곧 어두운 표정이던 아이는 엄마가 언니의 맛사지를 다 하고 나자 슬쩍 엄마 무릎 위로 옮겨 앉았다. 엄마가 언니의 걷기 연습을 다시 도와주기 시작하자, 나는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 집 이곳 저곳을 걸으며 말을 걸어본다. 하지만 여전히 녀석은 무표정에 온몸이 굳어 있다. 아이를 안은 채 멀리서 바라보니, 짱을 둘러싸고 수형과 엄마와 할머니와 작은 엄마가 애정을 담아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짱 당장 앉은뱅이 보조 의자나 보행기나 휠체어를 가질 순 없지만, 그래도 이 마을의 유일한 장애 아동인 짱에겐 이렇게 애정과 사랑을 가져주는 가족들이 있고, 틈만나면 들여다 보는 친척들이 있고, 창문 밖에서 오다 가다 말 걸어주는 이웃들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직 4살 밖에 안된 요 녀석은 조금 안됐다는 생각이 들 때쯤, 누워 있던 짱이 다시 한마디 내뱉는다.
"내 동생 어딨어요?"

장애가 있는 언니에게 가족들의 관심이 쏠린 탓에 고작 네살인 마이의 표정은 밝지 않다  @choi yuri


*

마을을 나서자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어느 가게 처마 밑에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지만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진다. 아무래도 마이쩌우에 하루 더 묵으라는 뜻인가 보다. 시장 옆 의자에 앉아 오늘 가려던 목쩌우는 내일로 미루겠다고 말하자, 빙아줌마의 얼굴에 어김없는 함박 웃음이 번진다. 비도 마음도 참 시원하다.

마을 슈퍼 의자에 한참을 앉아 들었던 빗소리 @choi yuri


2014년 8월 25일 월요일

[Mai Chau] 시골 마을에 써커스 공연단이 떴다

지난 몇년 간 내가 이 마을을 들락날락 한지 십수번 만에 두번째로 조용한 밤을 맞이했다. 떼로 와서는 마을 공터에서 밤 늦도록 가라오케를 미친듯이 틀던 하노이 사람들도 없었고, 타이족 전통 공연을 보겠다고 신청한 여행자들도 전혀 없었다. 모처럼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락 마을에서의 저녁 식사를 하는데, 이 집의 11살 조카 '단' 녀석이 아까부터 동생을 임신한 배불뚝이 엄마에게 뭔가를 계속 조른다. 배불뚝이 엄마는 안된다며 난처해 학고, 역시 작은 엄마인 빙 아줌마도 옆에서 웃기만 할 뿐 아이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거의 울상인 '단'의 모습에 연유를 알아보니 오늘 읍내에서 하는 원숭이 쇼에 가고 싶다고 조르는 것이었다. 동네 꼬마들과 산에 오르거나, 소, 물소, 닭, 개, 고양이와 논밭에서 뒹구는 것이 전부이 녀석에게 정체모를 이 쇼가 일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귀한 문화 생활이라는 걸 알기에, 임신 7개월 엄마와 감기로 누워있는 아빠, 바쁜 어른들 대신에 쑥스러워 눈도 잘 못 마주치는 단 녀석을 데리고 읍내에 가기로 했다.

밤 8시, 이곳은 이미 껌껌해진지 오래, 오토바이를 조심스레 몰고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갔다. 마이쩌우 읍내의 운동장에는 밖에서는 안 보이도록 천막을 치고 어린이는 무료, 성인은 2천원으로 입장을 받고 있었다. 일부 어른들은 아이들만 안으로 들여 보낸 채, 천막으로 가려진 입구 밖에서 오토바이에 앉아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아는 얼굴의 몇 아줌마들이 나에게 들어가서 자신의 아이 누구를 잘 좀 봐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락 마을 어른 대표의 신분으로 입장을 하게 되었다.

*



안으로 들어가 제일 앞자리 바닥에 자리를 잡고 나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몇번 봐왔던 떠돌이 쇼가 펼쳐진다. 단이 계속 말하던 원숭이 쇼라는 게 뭔가 확실히 짐작이 오지 않았었는데, 소림사 무술을 아슬아슬하게 따라하는 차력사 아저씨, 불붙은 굴렁쇠를 온몸에 굴리는 반쯤 벗은 아줌마, 외통나무 위에서 균형을 맞추는 젊은 여자, 나이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손을 심하게 떠는 할아버지 마술사 등 흔히 써커스단에서 볼 수 있는 쇼와 원숭이, 구렁이, 악어 등의 조련된(그러나 완전히 조련되지 않은) 동물의 조금은 징그럽고 위험한 서커스였다. 그리고 빠지지 않아야 할 것 또 한가지. 바로 쇼 중간중간 진행되는 물건 판매 타임! 이 쇼에서는 사이공 가수들의 노래모음 음반과, 행운을 부른다는 가짜 종이 돈이 단돈 10,000동(500원)에 판매 되었다. 저걸 누가 살까 싶었는데, 더 놀라운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걸 샀다는 사실이다.



*

게 중에 오늘 최고로 충격적인 장면은 이미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무대 뒤에서 여러 번 매를 맞은 원숭이가 (단이 무대에 누가 올라오던, 무대 뒤 원숭이만 찾는 탓에 우연히 목격한 장면들) 조련사의 계속되는 철봉 매달리기 요구에, 갑자기 무대를 뛰쳐 내려온 것. 순식간에 공연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무대 아래서는 조련사와 남자 스태프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원숭이를 포위한 채, 결국 잡아버리고 말았다. 순간 이렇게라도 원숭이가 저 산속 깊숙히 도망가길 바랬지만 결국 녀석은 다시 무대 위로 끌려 올라와 역기 들기 등의 나머지 공연을 마쳤고, 그 후에는 다시 무대 뒤 철장에 갇히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충격 장면. 구렁이쇼라며 구렁이를 몸에 감거나 뽀뽀하는 장면은 티비에서 여러 번 봤어도, 차력사가 자기 입 안 깊숙히 구렁이 머리를 통채로 집어 넣는 장면은 참... ㅠㅠ



*

돌아오는 길. 원하던 원숭이를 실컷 본 단 녀석은 뭐가 그리 신난지 오토바이 위에서 연신 헤죽헤죽 웃어대며 나를 쳐다봤다. 과한 잔인함과 비인간적인 모습들에 저게 과연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여러번 들었지만, 그래 네가 그렇게 신났다면야 뭐. 무려 열시 반이 넘어 집에 돌아온 우리는 피곤함에 바로 뻗어버렸다.


2014년 8월 24일 일요일

[Mai Chau] '마을'은 아이를 자라게 한다


인간만을 위한 길이란건 본디 없었다 @Choi Yuri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락마을 입구 풍경 @choi yuri


물소는 목욕중? 수영중? 배변중? @Choi Yuri



부지런한 닭은 이미 새벽 4시부터 울어 재끼기 시작했지만, 지난 하루가 피곤했는지 나는 닭소리를 자장가 삼아 느릿느릿 모기장 밖으로 나왔다.

아침 9시. 사람들은 어디에선가 각자 자기 몫의 일을 하고 있다. 논을 돌보는 할머니와 혹 아저씨, 수레에 여물 가득 끌고 가는 옆집 아저씨, 집안 곳곳의 청소를 마치고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능숙하게 쓸어 담는 빙 아줌마, 그리고 이미 아침 일을 마치고 시원하게 씻고 쉬는 할아버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서두르는 사람이 없다. 이 마을에서 과하게 늦은 아침을 맞이한 이들은 우리밖에 없는데도, 아침잠 많은 나를 잘 아는 빙 아줌마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냐 하신다. 그리곤 거한 아침상을 바로 차려주실 기세다. 역시 이곳에 온 뒤로 무럭무럭 살찌는 소리가 들린다.


옆마을 산책 중 만난 탈곡기. 마을마다 추수가 한창이다 @Choi Yuri


그러고보니 내내 들리던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꼬맹이들은 이미 학교에 간 모양이다. 한 아저씨가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자 마을 곳곳 어딘가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 사람들이 아이에게 말을 걸어준다. 덕분에 아버지는 몇걸음 가지 못한 채 유모차를 연신 이웃의 집앞에 세운다. 이곳에서 아이는 어느 누구 집의 아이가 아니라 마을의 아이이다. 뛰 놀다가 누구네 집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하고, 대문 없는 아무네 집에 들락날락 거리기는 예사다. 아이를 좋아하는 나를 보고 빙 아줌마가 아기를 언제 가질 거냐고 묻는다. '아기를 가지게 되면 내 일을 아무것도 못할까' 하는 요즘 젊은 엄마들의 그것과 같은 내 고민을 듣고, 아줌마는 쿨하게 이야기 한다. 

"괜찮아. 애들은 6개월, 아니 1년 지나면 풀어놓고 엄마 일 봐도 돼!"

정말 이곳에선 가능할 것 같다. 아이가 집 밖을 기어도 차나 오토바이 같은 오염되고 위험한 것들을 찾기는 쉽지 않고, 마을 어디를 돌아다니든 내 아이에게 눈 마주치고 말 걸어줄 사람들은 천지.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면 나 혼자 내 아이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육아 부담이 적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빙 아줌마가 한마디 더 내뱉는다.

"엠링~ 아기나면 여기 데리고 와~!"

으하하하하. 말만이라도 '깜언'. 조금씩 든든해진다.


내가 이곳에 오래 있으면 안되는 이유, 매끼 이런 식사를 차려주시니 정말 살 찌는 소리가 들린다  @Choi Yuri


2014년 5월 1일 목요일

[Mai Chau] 무려 4년, 마이쩌우의 변화







마이쩌우에 처음 간 것이 4년 전. 그간 한 스무번 가까이 이 마을을 찾아 머물면서 마을의 변화를 그 누구보다 크게 느껴왔다. 갓난쟁이었던 '마이'는 이제 낮가림 없는 꼬맹이가 되었고, 너무 귀여웠던 '마이쩌우의 강동원' '뚜'는 이제 학교 급식을 먹으면서 배 뽈록 나온 통통이가 되었으며, 나를 흠모하며 쑥쓰럼 타던 '란'은 이제 음흉한 눈빛을 보내는 까불이가 되었다. 나 역시 이제는 탕와이현에서 일하는 녀자도 아닌, 한국에서 놀러온 녀자도 아닌, 그냥 하노이에서 놀고 먹는 그런 녀자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베트남의 연휴라 마을에는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북적댔고, 그간 늘어난 하노이 관광객들 때문에 마을 곳곳엔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농사만 짓던 마을 외곽의 사람들도 너도나도 홈스테이를 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자전거 대여와 음향기기 대여업을 시작했으며, 차량이 집 안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 골목골목을 시멘트 길로 포장했고, 타이족 전통 스타일인 대나무가 아닌 하노이식의 시멘트로 집 앞에 담을 쌓고 있었다. 쓰레기통 따위는 전혀 필요 없었던 마을 이었는데, 집 앞 길가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지역 특산물을 파는 사람들이 생겼고, 거기서 나오는 비닐봉지가 이제는 마을 곳곳에 버려져 있었다.

이 마을을 너무 좋아했던 이방인인 나는 이 변화가 너무 슬펐고, 많은 마을 어른들 역시 이 변화를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급격히 늘어난 관광객과 하노이에서 만들어진 투어 프로그램 등의 관광 시스템을 막지는 못했다. 마을의 모두가 이 변화를 따라가진 못했지만, 마을의 모두가 이 변화를 거부하지도 않았다. 슬프고, 답답했다. 한편으론 나 역시 이 마을을 이렇게 변하게 만든 여행자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에 참으로 미안했다. 나야 이제 이곳에 안오면 되는 사람일 뿐이지만, 이 곳 사람들은 삶의 터전이 몇년만에 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이곳에서 내가 유일하게 위안 삼은 한 가지는 내가 만난 사람들이 아직까진 '사람을 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직 마을에 남아있는 공동체, 그리고 아직 손님을 돈의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그게 이 마을의 유일한 기대이자 희망으로 보였다.





그 어떤 경우에서도 돈이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베트남 정규방송으로 일주일에도 몇 편씩 방송하는 한국 막장 드라마들이 얼마나 뻥인지, 실제로는 사람 대신 돈을 좆다가 이모양 이꼴에 빠진 한국 사회를 이곳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 청년들이여, 이 빠른 변화 안에서도 부디 이런 것만은 따라하지 않기를. 오래도록 내려온 마을 어른들의 지혜를 가볍게 여기지 말기를.

한국의 높으신 양반들, 이곳에 와서 사는 법 좀 배우실라우? 내 하노이에서 출발하는 왕복 8시간 버스비 정도는 후원해 드리리라. 단, 아무리 높은 양반이어도 1인 1석이 아닐수도 있음은 유의해 주시라. 여기선 버스 차장이 곧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