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5일 월요일

[Mai Chau] 시골 마을에 써커스 공연단이 떴다

지난 몇년 간 내가 이 마을을 들락날락 한지 십수번 만에 두번째로 조용한 밤을 맞이했다. 떼로 와서는 마을 공터에서 밤 늦도록 가라오케를 미친듯이 틀던 하노이 사람들도 없었고, 타이족 전통 공연을 보겠다고 신청한 여행자들도 전혀 없었다. 모처럼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락 마을에서의 저녁 식사를 하는데, 이 집의 11살 조카 '단' 녀석이 아까부터 동생을 임신한 배불뚝이 엄마에게 뭔가를 계속 조른다. 배불뚝이 엄마는 안된다며 난처해 학고, 역시 작은 엄마인 빙 아줌마도 옆에서 웃기만 할 뿐 아이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거의 울상인 '단'의 모습에 연유를 알아보니 오늘 읍내에서 하는 원숭이 쇼에 가고 싶다고 조르는 것이었다. 동네 꼬마들과 산에 오르거나, 소, 물소, 닭, 개, 고양이와 논밭에서 뒹구는 것이 전부이 녀석에게 정체모를 이 쇼가 일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귀한 문화 생활이라는 걸 알기에, 임신 7개월 엄마와 감기로 누워있는 아빠, 바쁜 어른들 대신에 쑥스러워 눈도 잘 못 마주치는 단 녀석을 데리고 읍내에 가기로 했다.

밤 8시, 이곳은 이미 껌껌해진지 오래, 오토바이를 조심스레 몰고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갔다. 마이쩌우 읍내의 운동장에는 밖에서는 안 보이도록 천막을 치고 어린이는 무료, 성인은 2천원으로 입장을 받고 있었다. 일부 어른들은 아이들만 안으로 들여 보낸 채, 천막으로 가려진 입구 밖에서 오토바이에 앉아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아는 얼굴의 몇 아줌마들이 나에게 들어가서 자신의 아이 누구를 잘 좀 봐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락 마을 어른 대표의 신분으로 입장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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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 제일 앞자리 바닥에 자리를 잡고 나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몇번 봐왔던 떠돌이 쇼가 펼쳐진다. 단이 계속 말하던 원숭이 쇼라는 게 뭔가 확실히 짐작이 오지 않았었는데, 소림사 무술을 아슬아슬하게 따라하는 차력사 아저씨, 불붙은 굴렁쇠를 온몸에 굴리는 반쯤 벗은 아줌마, 외통나무 위에서 균형을 맞추는 젊은 여자, 나이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손을 심하게 떠는 할아버지 마술사 등 흔히 써커스단에서 볼 수 있는 쇼와 원숭이, 구렁이, 악어 등의 조련된(그러나 완전히 조련되지 않은) 동물의 조금은 징그럽고 위험한 서커스였다. 그리고 빠지지 않아야 할 것 또 한가지. 바로 쇼 중간중간 진행되는 물건 판매 타임! 이 쇼에서는 사이공 가수들의 노래모음 음반과, 행운을 부른다는 가짜 종이 돈이 단돈 10,000동(500원)에 판매 되었다. 저걸 누가 살까 싶었는데, 더 놀라운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걸 샀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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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중에 오늘 최고로 충격적인 장면은 이미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무대 뒤에서 여러 번 매를 맞은 원숭이가 (단이 무대에 누가 올라오던, 무대 뒤 원숭이만 찾는 탓에 우연히 목격한 장면들) 조련사의 계속되는 철봉 매달리기 요구에, 갑자기 무대를 뛰쳐 내려온 것. 순식간에 공연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무대 아래서는 조련사와 남자 스태프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원숭이를 포위한 채, 결국 잡아버리고 말았다. 순간 이렇게라도 원숭이가 저 산속 깊숙히 도망가길 바랬지만 결국 녀석은 다시 무대 위로 끌려 올라와 역기 들기 등의 나머지 공연을 마쳤고, 그 후에는 다시 무대 뒤 철장에 갇히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충격 장면. 구렁이쇼라며 구렁이를 몸에 감거나 뽀뽀하는 장면은 티비에서 여러 번 봤어도, 차력사가 자기 입 안 깊숙히 구렁이 머리를 통채로 집어 넣는 장면은 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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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원하던 원숭이를 실컷 본 단 녀석은 뭐가 그리 신난지 오토바이 위에서 연신 헤죽헤죽 웃어대며 나를 쳐다봤다. 과한 잔인함과 비인간적인 모습들에 저게 과연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여러번 들었지만, 그래 네가 그렇게 신났다면야 뭐. 무려 열시 반이 넘어 집에 돌아온 우리는 피곤함에 바로 뻗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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