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6일 화요일

[Mai Chau] '가족'은 '짱'을 걷게 만든다

빙 아줌마의 친 언니가 살고 있다는 옆 타이족 마을 트레킹을 하던 중, 열아홉의 장애우를 만났다. 만나는 사람마다 타이어로 안부를 묻던 아줌마는 어김없이 어디론가 뛰어가는 이 소녀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내가 소녀의 장애에 대해 묻자, 아줌마는 내가 전에 일하던 엔지오의 장애인 재활센터에 저만한 나이의 친구가 들어갈 수 있는지를 되물었다. 안타깝게도 나이가 많은 친구는 입소 제외 대상이었다.

소녀를 보다가 문득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줌마의 조카 '짱'이 생각났다. 다른 옆 마을에 살고 있는 '짱'이 어릴적에는 엄마 품에 안겨 자전거를 타고 와서 한번 만났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후로는 본 기억이 없었다. 알고 보니 8살이 된 짱의 몸이 너무 커버려서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게 어려워진 것이다. 짱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 하던 우리는 결국 다음 날 짱네 집에 놀러가기로 했다.

*

다음 날, 모기장 안에서의 늦은 기상. 이미 빙 아줌마는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어 짱네 가져갈 과자를 여러 봉지 사다 놓으셨다. 우리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단지 놀러갈 뿐이라는 것을 여러번이나 어필했지만, 아줌마는 설레임은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집안의 장애 아이를 보러 누군가 가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줌마는 마냥 신난 듯 했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부슬비를 맞으며 도착한 짱네 집는 환하게 맞이해주시는 짱의 친할머니, 짱의 엄마, 그리고 집에서 손님을 처음 맞이한 짱과 4살난 짱의 여동생이 있었다. 며칠 몸이 아팠다는 짱은 낮선이의 방문에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엄마 품을 찾았다. 우리는 짱이 우리에게 조금 떨어진 침대에서 할머니 품에 앉겨 진정이 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온가족의 관심과 사랑으로 난생 처음 물리치료를 받아보는 '짱'  @choi yuri


잠시 후, 진정이 된 짱을 눕히고 여기 저기 살펴본 결과, 다행히 작업치료사인 수형이 보기에 짱은 아직 몸이 많이 굳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거의 누워서만 생활하던 짱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아이가 다양한 것을 보면서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게, 그래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는 수형의 말을 내가 베트남어로 통역하면, 내 베트남어를 빙 아줌마가 다시 타이어로 짱 엄마와 할머니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는 짱을 매일 아침마다 맛사지 해주는 법, 앉혀서 밥을 먹이는 법, 두명이 잡고 아이에게 걷는 연습을 시키는 법을 모두 알려줬다. 엄마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진지한 표정으로, 그리고 긴장된 표정으로 이 모든 것을 열심히 듣고 익혔다. 할머니와 외숙모인 빙 아줌마도 옆에 앉아 동작 하나 하나를 열심히 새기고 거들었다. 짱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맛사지를 받는 내내 우리와 눈을 마주치며 밝게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이족 전통집의 넓은 대나무 마루를 두번이나 걸은 뒤,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나서야 어렵게 한마디 뱉었다.

"놀러 나가요!"

한시간도 채 안되는 치료가 아이를 웃고, 걷고 싶게 만들었다.
짱은 연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계속 걷는 연습을 하고싶어 했다.
@choi yuri


*

아까부터 한쪽 구석에 있는 어린 동생 마이(Mai)의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과자를 줘봐도, 장난을 쳐봐도, 무릎 위에 앉혀봐도 미동이 없다. 아이답지 않게 줄곧 어두운 표정이던 아이는 엄마가 언니의 맛사지를 다 하고 나자 슬쩍 엄마 무릎 위로 옮겨 앉았다. 엄마가 언니의 걷기 연습을 다시 도와주기 시작하자, 나는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 집 이곳 저곳을 걸으며 말을 걸어본다. 하지만 여전히 녀석은 무표정에 온몸이 굳어 있다. 아이를 안은 채 멀리서 바라보니, 짱을 둘러싸고 수형과 엄마와 할머니와 작은 엄마가 애정을 담아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짱 당장 앉은뱅이 보조 의자나 보행기나 휠체어를 가질 순 없지만, 그래도 이 마을의 유일한 장애 아동인 짱에겐 이렇게 애정과 사랑을 가져주는 가족들이 있고, 틈만나면 들여다 보는 친척들이 있고, 창문 밖에서 오다 가다 말 걸어주는 이웃들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직 4살 밖에 안된 요 녀석은 조금 안됐다는 생각이 들 때쯤, 누워 있던 짱이 다시 한마디 내뱉는다.
"내 동생 어딨어요?"

장애가 있는 언니에게 가족들의 관심이 쏠린 탓에 고작 네살인 마이의 표정은 밝지 않다  @choi yuri


*

마을을 나서자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어느 가게 처마 밑에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지만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진다. 아무래도 마이쩌우에 하루 더 묵으라는 뜻인가 보다. 시장 옆 의자에 앉아 오늘 가려던 목쩌우는 내일로 미루겠다고 말하자, 빙아줌마의 얼굴에 어김없는 함박 웃음이 번진다. 비도 마음도 참 시원하다.

마을 슈퍼 의자에 한참을 앉아 들었던 빗소리 @choi y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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