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1일 금요일

[Thanh Hoa] 불편한 진실, '1대1 아동결연 사업'을 만나다 (1)_

*시작하기에 앞서 특정한 단체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 다수의 한국 국제개발협력 엔지오들이 하고 있는 '1대1 아동 결연 사업'에 대한 속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글쓴이의 의도를 이해 바랍니다.


베트남어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일을 했었다는 이유만으로, 베트남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도 따듯한 환대를 주신 보육원 스텝들. 선생님이자 엄마이자 멘토 역할을 하는 스텝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은 내가 아는 그 어느 기관 중에서도 제일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이 분들은 나와 함께 있는 이틀의 시간 내내 '당신이 와주어서 너무 즐겁다'는 말로 6시간 버스 이동의 피로를 싸악 녹게 해 주었다.   @Choi Yuri


얘기치 못했던 큰 환대와 무환 애정을 받고 돌아오는 여정. 학교에서 한 달여간 배운 베트남어보다 이틀간 보육원에서 만난 직원들, 아이들, 주민들과 더 많은 베트남어를 했다. 이렇게 길 위에서 더 잘 배우는 내가 굳이 책상 앞에 앉으려는 건 정말 욕심인 것인가도 싶다.

사실 내가 이번에 이곳을 더 가고 싶었던 이유는 '후원자와 아동을 일대일로 매칭 시켜준다는 '일대일 아동결연 사업'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후원자의 마음을 비교적 쉽게 끌 수 있는 방법이기에 실제로 많은 국제개발협력 엔지오에서 큰 사업 중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약 70%의 한국 엔지오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오래전 첫 월급을 받았을때 '한X야씨 열풍'에 휩쓸려 아프리카에 있는 한 아이의 결연후원을 시작 했었다. 그러나 이 바닥에 발을 담근 뒤로, 그것이 절대 좋은 후원의 방법만은 아님을 알게되었다. 후원 받을 아이들 사진을 늘어놓고 기부자가 고르는 위치에 있는 것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고, 그 마을, 혹은 학교 안에서의 후원 받지 못하는 아이의 소외됨 역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한 가정의 형제 중에 누구는 후원을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하는 사례들도 접하게 되었다. 정기적으로 후원자에게 보내지는 아이의 사진과 그림과 편지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어떠한 과정이 걸쳐지는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내 손에 오게 된 까만 피부의, 놀란 눈을 가진 아이의 사진과 메세지들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 나는 큰 마음을 먹고 기부를 끊고 다른 방식의 후원으로 변경하였다. 나 역시 기부를 끊을때, 내가 만약 멈추면 아이의 식사와 학업이 당장이라도 멈춰질 것만 같아서 죄스럽고 미안했다. 하지만 엔지오에서 홍보하는 내용들 처럼 내가 후원하는 그 돈의 100%가 몽땅 그 아이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후원이 끊긴다고 아이에게 돌아가는 지원이 뚝 멈출리도 없는 것이다. 만약 그런 시스템이라면 이건 정말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 *


나는 이렇게 1대1 아동결연을 반대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지만, 아직도 많은 단체들은 기본적으로 결연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몸담고 있었던 단체는 '한 아이에게 주는 지원보다 가족이, 혹은 마을이 함께 지속적으로 잘 사는 것이 더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역시 아동결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에, 나는 실제로 그 현장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기회가 되어 다른 단체에서 각 마을의 결연 아동에게 지원을 하는 날에 함께 따라가보게 되었다.

이 날은 오전, 오후 통틀어 총 다섯개 마을을 가게 되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미리 준비해 둔, 봉투에 든 5만동(2,500원 상당)과 쌀 15kg 한 포대, 치약, 과자, 세제 등 생필품을 담은 선물 봉지 하나를 한달에 한번 각 마을의 인민위원회, 혹은 마을 회관에 모인 아동들에게 전달을 하는 것이다. 부모 중 한명, 혹은 할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도 있었으며, 혼자, 혹은 형제와 함께 온 아이도 있었다. 대부분 큼직한 자전거를 끌고 오지만, 간혹 밖에서 기다리는 형제, 혹은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기다리기도 한다. 만약 직접 오지 못한 경우, 이달의 지원 내역은 다음 달로 누적 이월된다. 실제로 이날 못 만났던 아이들이 몇 있었는데, 후원아동이 두 명뿐인 한 마을에선 조금 멀리 떨어진 산 위에 집이 있고, 정신 이상인 아버지, 오빠와 함께 지낸다는 한 여자아이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인민위원회 직원과 혼자 자전거를 끌고 온 나머지 한 여자아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아이의 안부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한 곳에 모이면 테이블에 뺑 둘러앉아 명단이 적힌 종이를 돌린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기 이름을 찾아 서명을 한다. 초등학교에 이제 막 들어갔다는 아이는 간신히 자기 이름을 찾아 펜을 꽉 쥐어잡아 꾹꾹 눌러가며 자기 이름을 쓰고, 한창 멋부린 사춘기 청소년들 역시 후딱 서명을 마친다. 함께 온 어른들은 멀찌감치 의자에 앉아 지켜본다.

명단을 적은 아이들은 바로 문 밖으로 나가 한명씩 사진을 찍고 들어온다. 아주 소수의 아이들을 빼 놓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얼굴 가까이 내민 카메라 랜즈를 보며 긴장한 눈치다. 이 사진들은 후원 아동 관리용, 혹은 후원자에게 보낼 용도일텐데, 순간 내가 처음 후원했던 그 아이의 똥그랗게 긴장된 눈도 이렇게 찍혀 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복잡해졌다. 사무실 내 책상 앞에 놓은 아이의 인적사항 적힌 사진 카드를 보고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괜히 으쓱해졌던 내 과거가 정말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이 모두 사진을 찍고 들어와 다시 한자리에 모이면, 지원금이 담긴 봉투를 각각 전달하고 그달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들어보니 이곳에서는 일년 열두달 중에 두 달은 후원자에게 편지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있고, 나머지는 추석, 설, 연말.. 등의 명절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 나머지 한 두달은 이렇게 오늘처럼 함께 영상을 보거나 한단다.

정말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느껴지는 담당 직원 anh은 오늘 닉부이치치의 짧은 영상 두개를 준비해 왔다. 처음엔 팔 다리 없는 닉부이치치의 모습에 아이들도 어른들도 그저 신기한 듯 웃거나 당황해 했지만, 닉부이치치의 이야기가 늘어 갈수록 모두들 진지해 진다. 그가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높은 곳에서 다이빙 하는 장면을 볼땐 아이들의 짧은 환호가 들리기도 했다. 영상을 본 후 Anh 은 아이들에게 소감을 묻고, 닉이 팔다리가 없지만 뭘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아이들 자신이 닉 보다 더 가진 것은 무엇인지 대답을 이끌어냈다.

어떤 마을에선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중도 잘하고, 직원이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는 데 반해, 어떤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엎드려져 있거나 잡담을 하고, 질문에는 꿀먹은 벙어리에 눈도 잘 못마주친다. 연유를 찾아보니 후원 아이들을 선정하는 마을 인민위원회마다 선정기준이 다른 것이다. 어떤 마을은 빈곤 계층 중에 공부를 잘 하는 순으로 주고, 어떤 마을은 하위 빈곤 계층부터 순서대로 아이들을 선정한 것 같다.

각 마을에서 30분여간(오늘은 이례적으로 프로그램이 짧은 날이란다)의 결연활동이 끝나고, 모두 밖으로 나와 차에 실었던 쌀과 선물보따리를 받아간다. 대부분 타고온 큼직한 자전거 뒤에 싣고 가지만, 간혹 밖에서 기다리는 형제, 혹은 친구의 오토바이에 지원품을 실어 가기도 한다.

_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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