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동도 없는 아저씨 곁을 지나며 멈칫멈칫 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아저씨의 행상(?)을 훑어보았다. 맨발이었고, 발바닥과 손과 목덜미가 더러웠으며, 머리 위에는 벗겨진 헬맷이 놓여 있었다. 순간 가까이 가서 살펴봐야 하나 라는 고민과 동시에, 이 높은 육교 위에 있는 걸 보니 교통사고 일리는 없고, 30대 정도로 보이니 이유 없이 갑자기 쓰러진 노인 질환도 아닌거 같고, 더러워진 맨발을 보니 맨발로 걸어다녔다는 이야기고, 여기저기 행색이 남루한 걸 보니 이리 다닌지 꽤 오랜 기간이 흐른거 같고...
그 찰나에 엄청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 속을 스쳤는데, 실은 내 스스로 '내가 아저씨를 그냥 지나쳐도 되는 이유'를 찾고 싶었던 것 일지도 모른다. '만약 취한거라면 벌떡 일어나서 나한테 행패를 부릴지도 몰라. 그게 아니라도 내가 이 아저씨를 깨워서 무슨 말을 해야하지? 쓰러진 아저씨랑 얘기할 정도의 베트남어가 가능하단 말야? 아저씨가 일어나면 그 다음은? 맞아, 난 이 아저씨를 위해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도 몰라...' 이렇게 말이다.
그러는 사이 많은 학생들이 '눈 앞에 있는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것'인냥 평소처럼 육교를 건넜고, 나도 그렇게 쭈삣쭈삣 아저씨를 지나쳐 육교 반대편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작은 체구의 한 여학생이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여학생은 약봉지로 보이는 흰 봉투를 아저씨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숙여 아저씨 몸을 흔들었는데, 아저씨는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잠시 당황했던 여학생은 다시 조심스레 아저씨에게 봉투를 내밀며 뭐라고 이야기를 했고, 계속되는 흔들림에 아저씨는 결국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그 학생을 쳐다봤다. 처음에 아저씨는 봉지의 정체를 알지 못했으나, 학생의 계속되는 설명에 아저씨는 간신히 손을 올려 그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뒤돌아 반대편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고, 계단을 다 내려와서 다시 그곳을 올려다보니 여학생은 마지막으로 아저씨에게 뭐라고 일러주고 천천히 일어나 아무렇지 않게 육교를 건넜다. 아저씨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누워 있었으나, 여학생이 준 봉투를 가슴에 꼭 안고 있었다. 본것을 못본척 하지 않은 그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나에게 창피함을 일깨워준 그가 너무 고마웠다. 나는 이곳에 사람을 만나고 싶어 왔는데, 사람들과 손을 잡고 싶어 왔는데, 알고도 모르는척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게 아직 너무 많은 것 같다. 사람이 간사한지라, 마음 먹은 것과 행동이 참 많이 다르다.
하노이가 미친듯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지만, 이런 괜찮은 청년들의 그 작은 마음과 행동들은 부디 변하지 않기를. 삐까뻔쩍한 건물들은 위로만 높이 향해도, 우리의 시선은 옆과 아래를 향하기를. 오늘은 왠지 하노이가 더 사랑스럽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블로그의 글과 사진을 퍼가실때는 미리 동의를 구해주시고, 비방이나 욕설은 삼가 바랍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