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년전, 이 하노이 시골 촌뜨기가 처음 호치민시티에 내려 왔을때는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하노이와 북부지역에서 봐 왔던 것을 베트남의 전부라 생각하며 반년을 살아왔었는데, 호치민 공항에 도착해 시내로 나오면서 나는 창문에 코를 박은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노이와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일단 북부지방 사람들보다 사람들의 체구가 훨씬 건장했다. 하노이 외곽 우리 시골마을에서는 그래도 제일 키크고, 제일 뚱뚱하다며 우리 동네 대표 덩치였던 나인데, 호치민 거리에는 나보다 키크고 골격 있는 여자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물론 보통의 여성들은 나보다 훨씬 말랐다. 절대 오해하진 말길.
한 여름이 되면 강한 햇볕에 피부가 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하노이 도심의 젊은 여자들은 후드에 챙이 붙여있고, 긴팔의 끝에는 손등을 가리는 장갑이 달려있으며, 매년 유행에 따라 조금씩 디자인이 바뀌지만 간혹 후드의 끝에 마스크까지 부착되어 있는 각종 화려한 문양의 잠바를 입고 다녔다. 한여름 오토바이를 타는 하노이 여자들은 열에 아홉 이 잠바를 입고 다녔고, 때문에 도심위를 꽉 채운 오토바이 위에는 꽃 문양을 비롯한 화려한 패턴이 가득했다. 나와 한국 친구들은 이것을 일명 '개구리 잠바'라 불렀고, 간혹 한 둘은 이 잠바를 구입하여 입고 다녔었다. 마치 한여름에 입지 않으면 베트남 유행에서 도태되는 것만 같이. 그래서 나도 '이번 여행에 이 개구리 잠바를 하나 구입해서 입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공항에서 시내로 나오는 길, 오토바이 위의 세련된 '호치민 신新여성'들을 보고는 나는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금새 얼굴이 붉어졌다. 호치민시 어디에서도 '개구리 잠바'는 절대 찾을 수 없었고, '호치민 신新여성'들은 한국 옷마냥 세련된 후드 잠바나 자켓을 하나씩 걸치고 있었다.
쪼리를 신고 있는 것도 나 뿐이었다. 맹추위로 덜덜 떠는 하노이의 한 겨울에도 털잠바에 털모자에 목도리에 귀마개에 장갑까지 활용하여 무장을 하면서도 맨발로 혹은 엄지 발가락 양말에 쪼리나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우리동네 사람들처럼 나도 늘 익숙해진 쪼리를 신고 여행을 다녔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역시 옷차림이나 뭐나 내가 이 호치민시티 안에서 가장 후질근한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하노이에서 내려온 역 문화충격이랄까. 그 후로도 출장이다 여행이다 해서 여러번 호치민시를 들렀었는데, 매번 느끼는 것은 이곳이 하노이와는 완연히 다른 느낌의 베트남이라는 것이었다.
#2.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치민시를 방문한 지 약 1년여 만에 다시 호치민시를 찾았다. 여행으로 말이다. 여행자 거리인 데탐 거리를 찾았다. 줄곳 호치민에 들를때마다 들렀던 5달러짜리 도미토리를 찾았지만 왠걸, 나의 단골 도미토리는 공사중이었다. 주변에 알고 있던 저렴한 숙소를 모두 찾았다. 상당수가 공사중이었거나 가격을 인상했다. 하노이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여행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구나. 빠른 변화가 내 입장에서는 반갑지만은 않았다. 무려 $7짜리 도미토리를 보여주는 삐끼 아주머니와의 베트남어 수다 끝에 120,000vnd($5.5)에 낙점. 최유리 죽지 않았어.
이제 오늘부터 배낭 여행자 모드다. 궁상맞게 아끼지만은 않았던 베트남 생활 물가에 익숙해진 탓에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필요한 소비만으로 다녀보겠다. 고생은 즐거운 거니까.
#3.
데탐 거리 근처에 유명한 벤탄시장 말고 구석진 시장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내가 늘 여행때 신고다니는, 다 떨어진 뉴발란스 트레킹화 하나를 신고 내려왔는데, 역시 무더위진 남부에서는 무리다. 쪼리를 하나 사러 시장을 돌아다녔다. 사람 한명이면 꽉 채워질 좁은 파티션 안에 온갖 신발들로 가득 쌓인채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다. 하노이에서 사서 올 여름 내내 잘 신고 다니다가 개에게 물어 뜯겨버린 내 사랑스런 쪼리와 같은 것이 있었다. 하노이에서 사서 오려고 했지만, 아직 추위가 풀리지 않은 하노이 시장에선 많은 종류의 여름 신발을 찾을수는 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이거 검정색 없어요?"
할머니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눈동자를 돌려 나를 쓰윽 바라보시더니, 퉁명스럽게 대답하셨다.
"없어."
"......;; 할머니, 그럼 이 색은 더 큰 사이즈 있어요?"
"없어."
"......:: 할머니, 그럼 이 건 더 큰 사이즈 있어요?"
"없어."
역시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답하신다. 하하하..!! 아, 난 왜 베트남 사람들의 이런 시니컬함이 재미있을까?
결국 옆 가게에서 분명 한달 내로 헤져 못신게 될 쪼리하나를 30,000vnd($1.5)에 샀다. 쩌어기 사람들 가득한 벤탄시장에서 처음에 부를 가격의 약 1/3 이다. 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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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컬한 매력의 소유자, 신발가게 할머니 |
#4.
나는 여행중에 한국 음식을 별로 그리워 하지 않고, 사실 뭐든 입에만 넣으면 똑같이 느끼는 덕에 특별히 특정 음식을 찾아 다니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인도 음식점은 가끔 가곤 한다. 일단 한국에 있는 인도 음식점은 가격이 너무 비싼데다가, 동남아 대부분의 나라에는 중국계 화교와 인도인들이 엄청나게 진출해 있는 만큼, 원조의 그것과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인도요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
예전에 가 봤던 호치민 모스크 앞의 무슬림 식당을 다시 찾았다. 퉁명스런 인도계 주인 할머니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일본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도 그대로였지만 식당의 공간도 확장되었고, 인테리어도 바뀌었고, 가격도 올랐다. 인도음식을 한번도 안먹어본듯한 베트남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주문과 함께 인도식 홍차인 '짜이'를 한잔 달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질문.
"뜨거운 것으로 드릴까요? 찬 것으로 드릴까요?"
"...............음;;"
짜이가 차게도 마시는 음료였나??;;;; 순간 나는 멍 해진 상태로 한참을 고민을 하고 따듯한 것으로 달라고 했다. 음.. 하긴 여기는 안되는 것도 되는 것도 없는 베트남에 안되는 것도 되는 것도 없는 인도 식당이니 차가운 짜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모스크 앞의 휑하던 거리는 어떤식으로 입소문이 난건지 또다른 고급 무슬림 식당과 깔끔한 일본식당이 새롭게 나란히 들어섰다. 변화의 속도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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