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탑승 대기 중, 언제 다시 오게 될 지 모르는 하노이 공항이다. 정말 안녕이구나. 이별에 이별로 시작된 여행인지라, 마음이 무겁다. 하노이에서 한달짜리 여행 비자 받기에 실패한데다가, 2년간 정들었던 모든 인연들과 이별해야 하는 아쉬움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일부러 멀리서부터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해보고자 아래로 내려가려 한다. 하노이, 이별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이공에서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해야지.
사실 막상 공항에 오니, 오랜만에 계획 없는 발걸음을 뗀다는 생각에 설레는 기분은 참을 수 없다. 나도 모르게 계속 웃음이 난다. 징그럽게 어울렸던 베트남이고, 징그럽게 어울렸던 베트남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여행자가 되어 바라보니 왠지 달라 보인다. 역시 모든 원인은나였구나. 내 상황과 내 기억과 내가 만들어낸 근심과 괜한 우려들이 실존하는 모든 것을 다르게 판단하고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름과 다름을 구분할 수 있도록 현명해져야 한다.
#2.
2년 전, 다시 한국을 떠나기 전 많은 친구들이 고맙게도 필요한 물품들을 물어봐줬다. 어짜피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생필품은 다 있다고 생각했고, 더군다나 내 앞으로의 2년의 생활은 사치스러워서는 안되는 삶이 었기에 어떤 선물이 필요하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선뜻 답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여행자 신분이 될때 필요한 것들을 부탁했다. 다 떨어진 내 오래된 그것을 대신할 배낭 커버, 꽤 오래된 정보들이지만 베트남 이곳저곳이 속속들이 나와있는 두꺼운 론리플레닛 가이드북, 작은 병에 담긴 스킨 샘플 여러 개, 땀에도 지워지지 않는 썬크림 :)
그리고 친구들이 곱게 메시지를 적어 준 배낭 커버와 가이드북, 스킨 쌤플, 썬크림 등을 들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어쩌면 친구들이나에게 준 선물은 2년간 베트남에서 쟐 살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 떠나가야만 하는 오늘을 위한 선물일지도.
가장 저렴한 저가 항공을 이용하기위해 가방을 모두 기내 반입하기로 했다. 생활하더 짐들은 모두 한국으로 보내거나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지금은 이번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짐만이 있다. 혹시나 너무 무거워서 수하물 요금을 더 내야할까 걱정하는 마음에 슬쩍 무게를 재봤다. 보조가방을 포함한 내 모든 짐의 무게는 '8kg'..!! 욕심을 버리고자, 열심히 들고 다녔던 dslr 카메라도 팔고 작은 미러리스 카메라로 바꾼게 마음의 짐을 가장 크게 덜어줬다. 대부분의 짐은 정말 최소화 되었고, 이전 여행보다 늘어난 것 이라곤 이번에 새로 장만한 1kg가 안되는 넷북 뿐이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집에 돌아와 그 여행기를 정리하기 힘들어진다는 경험하에, 이번에는 매일매일 글을 조금씩 써 볼 용도로 하나 장만했다. 베트남 2년에 대한 정리, 그리고 이 여행에 대한 기록과 생각도 열심히 정리해야겠다.
#3.
2년간 너덜너덜해진 베트남 가이드북 앞 장의 지도를 펼쳤다. 그간 내가 다녔던 곳에 하나하나씩 동그라미를 쳤다. 누가 베트남이 좁다고 했던가. 2년간 베트남 구석구석을 그렇게도 열심히 싸돌아 다녔건만, 나는 아직도 무수히 많은 지역에 동그라미를 표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베트남을 더 여행한다고 했을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질문을 했다.
"그렇게 많이 다녔으면서 또 베트남을 여행한다고? 다 가봤잖아?"
내가 베트남을 더 여행하고자 하는 이유는 첫번째, 군데 군데를 잠시 가 봤다고 해서, 그 지역을 그 나라를 여행했다고 말하는 것에 조심스럽다. 어떤 마을을 여행했다고 하더라도 때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날씨가 다르며 만났던 사람과 마주했던 경험이 다를터인데, 잠시 들러본 그것을 가지고 그 마을의 전부를 익힌냥 가봤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베트남을 모두 여행했다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아직은 못 가본 곳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나 역시 새로운 곳에 대한 갈증은 있다. 나는 아직 많이 배고프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또다른 이유는 단순히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을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다. 2년간 매일 매일 빠짐없이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에 대한 새로운 것들을 배워왔다. 그리고 짧지만 약 한달여동안 더 많은 지역에 가서 더 다양한 베트남 사람들을 만나고, 가려졌던 지역에서의 새로운 베트남 문화를 느끼고, 그간 알지 못했던 숨겨진 이면을 더 느끼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꿈꾸려 한다.
#4.
우스꽝스런 체크 반바지와 빨간 블라우스에 '롯데리아 점원' 스러운 체크 모자를 머리에 얹은, 경력이 오래 되지 않았는지 약간은 긴장하고 있는 'Viet Jet Air'의 스튜어디스 언니들과 함께 탑승이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베트남 내의 저가 항공(Jetstar, Mekong Air, Viet Jet)을 모두 타 봤지만, Viet Jet 언니들이 가장 친절한것 같다. 새로 생겨서 그런가..;;
비행기 이륙. 지금 흘러나오는 곡은 paolo nutini의 'millo f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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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내선을 운영하는 새로운 저가항공사 VietJet Air |
#5.
여행하면서..
- 느리게 걷자
- 느리게 먹자
- 화내지 말자
- 비교하지 말자
- 그러려니 하자
- 감사하자
- 안전하고, 건강하자
- 순간에 나태하지 말되, 서두르진 말자
- 웃자 :)
지금 읽고 있는 책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워커'에서 절대로 걸어서만 살아가기를 시작한 존 프란시스의 결심을 듣고 그의 어머니가 전화로 이런 말을 한다.
"그래, 좋다. 하지만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구태여 행복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단다.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거든."
어쩌면 나는 여행을 통해 맹목적으로 행복을 찾아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내 안의 행복을 보지 못한채. 나도 언젠가는 더이상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경지에 오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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