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요즘 식욕이 미친듯이 왕성하기에, 어딜가도 배부른 줄 모르고 끊임없이 먹는다. 아무래도 병이 아닌가 싶다. 루언네 집에 초대를 받아 가보니 한창 차려진 게 오늘도 폭식을 피하기는 어렵겠구나 하는 감이 왔다.
대부분 한, 두번씩은 안면이 있는 손님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하고, 대게 베트남에서 여자들은 따로 상을 받지만, 외국인인 이상 남자들과 합석을 해도 어색한 건 아니다. 슬슬 시작해 볼까.
자, 모든 잔치의 시작은 건배. 베트남의 술자리에서는 누군가가 일어서서 "못, 하이, 바 (하나, 둘, 셋)"을 선창을 하면, 나머지 술잔을 든 사람들이 "요" 를 외친다. 그걸 세 번 정도 소리를 지른 후에야 잔을 부딪히고 술을 마신다. 그러고 나서는 술을 자유롭게 마시는데, '첨잔 문화'가 있는 민족이라 술잔에 조금이라도 술이 줄어들었다면, 바로 가득 채워준다. 새로온 손님이나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빈잔을 들고 다가가 서로 한잔씩 주고 받은 뒤, 거하게 악수를 한다. 그게 인사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한바퀴 돌고 나면 이미 얼큰하게 취해진 상태, 그리고 역시 애주민족 답게 빨리, 많이 마신다.
오늘의 마실거리로는 '비어 하노이' 맥주와 45도 이상의 곡주인 '지에우', 그리고 베트남 특산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루에 깔려진 멍석 위애 음식이 차려진 쟁반 몇개를 놓고 옹기 종기 둘러 앉아 만찬을 즐긴다. 남자들은 어느 나라나 똑같이 술 앞에 있는 음식은 술 안주로만 보이나보다. 우리 쟁반 위의 음식들이 빠른 속도로 거덜날 동안 남자들은 술안주만 깨작거릴 뿐이다. 진짜 만찬을 제대로 즐기는 것은 여자들 쟁반 뿐이다.
자, 그러면 음식 소개..!! 원래 본인이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는 사람이라 맛에 있어서는 객관적이지 못하고, 평소에 음식 사진 찍고 이런 짓은 거의 안하지만 베트남 떠나면 베트남 가정식을 먹을 기회가 또 언제 있을까 싶어 이렇게나마 담아두고자 한다.
후라이드 치킨, 보통 베트남 가정집에서는 흔치 않은 음식인데 약간 매콤하고 짭쪼롬하니 우리네 시골장 치킨 맛이다.
아, 여기서 정보 하나 더!! 베트남은 '후추'의 세계 1위 생산 국가다 :)
완전 한국 갈비찜과 똑같은 맛!! 소고기 찜에 간장 등으로 양념한 것으로 위에 얹은 고소한 고명은 코코넛이다.
파파야 샐러드, 상콤하고 무엇보다 땅콩의 고소함과 잘 어울러진다. 베트남은 땅콩, 아몬드 등의 견과류도 유명하다.
넴잔. 지역별로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고, 지역별로 크기나 모양이 조금 다르지만 만드는 방법은 모두 비슷하다. 쌀종이(라이스 페이퍼)에 우리나라 만두 소 같은 면과 두부, 목이버섯, 야채 등을 잘라 넣고 이쁘게 말아 튀기는 것. 주로 느억맘(생선 소스)에 찍어 먹는다.
함께 있던 분은 개인적으로 그 향을 매우 싫어 하셨지만, 이 삶은 죽순은 정말 내 입에 꼭 맞는 음식. 짭쪼롭하니 쫀득쫀득한 그 것을 한입 베어 물어 계속 씹으면 버섯같기도 하고 육즙 나오는 고기 같기도 하고 :) 다 먹고 국물에 밥을 비벼 먹어도 좋음.
* 참고, 하노이의 일반 가정집 잔치 식사에선 고기 가득한 음식들을 천천히 천천히 많이 먹고 또 먹고, 배가 터지려고 할 때쯤에야 밥이 나온다. 그러면 그릇에 원하는 만큼 밥을 덜어 국물에 말아 젓가락으로 휙휙 마시면 된다. 그러면 식사 끝.
잔치집에는 보통 아주 다양한 고기, 고기, 고기, 고기, 고기 등(베트남전 승리의 요인은 고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일 고기를 먹는 베트남인들)을 선보인다. 하지만 절대 빠지지 않는 고기가 있으니 바로 이 닭고기 또는 오리고기. 처음엔 거부감 들수도 있으나 자꾸보면 핏빛이 보일락 말락 하는 선홍빛 그 살색이 아주 매력적임. 간혹 손님 오셨다고 귀한 대가리를 권하는 경우도 있으니 놀라지 마시길..!!
소고기 미나리 볶음. 언제부턴가 미나리 향이 매우 좋아졌다. 베트남에서는 러우(샤브샤브) 같이 국물 있는 음식 먹을때 미나리를 매우 많이 사용한다.
한국에 고추장이 있다면 베트남에는 '느억 맘'이 있다. 생선을 장기간 발효시켜 만든 액젖으로 물에 희석시켜서 마늘, 고추등과 함께 소스를 만들어 먹는다. 2년간의 베트남 식탁에 거의 매일같이 올라왔던 소스로 나는 이제 외국인을 처음 만나는 순간 김치 냄새가 아니라, 느억맘 냄새가 날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들이 이 냄새 때문에 도망갔다는 설이... 믿거나 말거나. 베트남 최 남단의 '푸꿕'이라는 섬이 주 생산지이다.
고기를 찍어먹는 소금과 라임, 그리고 눈물 쏙 빼게 맵디 맵지만 맛있는 베트남 고추.
하노이 사람들은 반찬을 소금과 라임을 담뿍 찍어 먹기 때문에, 대체로 고협압이 많다. (의료 봉사 오신 한의사 분이 해 주신 말씀!!)
베트남 특산품중 하나인 '제비집' 음료. 서민들이 먹는 음료니까 제비집이 얼마나 들었겠냐만(제비집 함유량 7.8%)은 그래도 건더기가 찔끔 찔끔 들어 있는데, 먹으면 뭔가가 상상되기는 하다. 맛은 그냥 달달한 젤리 음료 같은 느낌. 어쨌든 베트남 사람들은 건강해 지는 음료라며 무지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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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집 건더기 둥둥~ |
베트남에서 제일 시크한 꼬마 '닷'이 뭐라뭐라 칭얼대자 루언이 갑자기 닭고기를 분해(?)하기 시작한다. 껍질을 벗기는 것이다. 닷이 껍질 안먹어서 버리는 거냐고 물었더니, 루언이 웃으면서 껍질만 먹고 싶대서 살코기 발라내는 중이란다. 식성도 시크한 녀석.
오늘의 후식. 당도 짱!!! 핑크 자몽~~!! 배터질 것 같은데 자몽 하나 다 먹었다.
엄마가 아들 괴롭히는 거 아닙니다. '닷'이 속알맹이 빠진 자몽 껍질을 보자 모자로 쓴다로 달랜다. 근데 엄마는 그걸 또 좋다고 머리에 씌워 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우리나라 엄마들 같으면 혼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순간 그걸 모자로 쓰는게 뭔 잘못인가 하고 또 쓸데 없이 욱해버렸다.
온 몸에 자몽 껍질을 휘두른 '닷'이 내뱉은 말, "뱀이다"
창조적인 아이가 되는 법, 절대 no라고 하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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