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5일 월요일

[Kon Tum] "이 시간에는 걸어다니면 안돼"

#1.
여행 정보 센터를 다시 찾았다. 점심시간이 막 끝난 텅 빈 사무실에는 똥글똥글한 여직원이 한명이 앉아 있었다. 프엉(Phuong)이라고 하는 스물 다섯의 이 똥글똥글하고 귀여운 친구는 여기서 2년 동안 회계업무를 맡고 있는데,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외국인이 내가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흠찟하다가 나의 베트남어 인사를 듣고는 이내 그 특유의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꼰뚬 여행정보센터에서 일하는, 무지 유쾌한 친구 프엉Phuong  @Choi Yuri


프엉은 뜨거운 한 낮 오랜만에 사무실에 찾아온 누군가가 반가운지, 나를 쇼파에 앉히고는 시원한 물 한잔과 함께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벽에는 한 가득 꼰뚬에서 내가 가보고 싶은 여러 소수민족 마을의 원주민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건 누가 찍은 사진들이에요?"
"음... 아마 외국인 여행자가 찍은 것 같아요."

프엉은 하나하나 마을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최대한 나를 위해 특유의 중부 발음이 강한 단어들은 여러번이고 반복하면서 천천히 소개해 주었다. 소수민족 전통의 모습을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사이로 모닥불 앞에서 여행자들이 원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여기는 어디죠?"
"여기는 바나마을이에요. 이것은 바나족축제고, 이것은 전통 가옥 '냐롱(Nha Rong)'이에요"
"와, 이런 축제는 자주 열리나요? 지금 가면 볼 수 있을까요?"
"자주 열리는 것은 아니고, 또 지금은 여행자도 별로 없어서 보기 힘들꺼에요."
"이 마을은 어떻게 갈 수 있어요? 여기서부터 마을까지 갈 수 있는 버스가 있나요?"
"여기는 교통수단이 없어서 개별적으로 여행하기 힘들어요. 쎄옴(오토바이 택시)을 타고 이동만 하거나 설명을 듣고 싶다면 영어나 프랑스어가 가능한 가이드와 함께 가는 방법이 있어요."
"하하. 전 프랑스어는 '봉쥬르~' 밖에 몰라요. 가이드와 함께 가면 얼마죠?"
"하하. 저도 프랑스어를 몰라요. 여기에 가려면 조금 비싸요. 내일 아침에 미국 여행자들이 올 지도 몰라요. 여러명이 가면 나누어 내면 돼요."
"와, 좋아요. 그 가격은 저 혼자로는 무리이니 내일 아침에 다른 여행자들과 합류하게 된다면 같이 가고, 안된다면 혼자 쎄옴을 타고 가보죠."
"아침에 혼자가게되면 쎄옴 타는 걸 도와줄께요."
"고마워요, 프엉. 내일 아침에 올께요."


꼰뚬 여행 정보 센터 벽에 걸린 소수민족 마을 사진들  @Choi Yuri

그렇게 물 몇 컵을 마시고는 한참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자리를 뜨려는 나에게 프엉이 다급히 말했다.

"아, 이 시간에는 돌아다니지 마요. 너무 더우니까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아요. 4~5시쯤 선선해지면 나와요."
"하하, 전 괜찮아요. 걷는거 좋아해요."
"숙소가 어디에요?"

나는 명함의 주소를 프엉에게 보여줬다.

"우와, 이 더위에 여기서 걸어왔다는 말이에요? 너무 머니까 나가서 쎄옴타고 돌아가요."
"하하하하. 프엉, 여기서부터 고작 300m 정도의 거리에요."
"그러니까요. 너무 멀잖아요. 쎄옴타고 가요."
"하하하................;;;"

역시 '베트남 사람은 삼보(三步) 이상에 오토바이 탄다'는 말이 맞다. 하하.





#2.
밖을 나오니, 역시 숨쉬는 공기조차 뜨겁다. 프엉의 말대로 일단 돌아가서 조금 쉬었다가 선선해지면 나오려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300m 거리에 인적이라고는 가끔 지나가는 오토바이 뿐이다. 저녁에 시끌시끌했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시계를 보니 낮잠시간이다. 모두들 어딘가의 그늘에서 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다.

숙소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어느 가게 앞 그늘에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보더니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어, 더우니까 이리 와."
"하하하. 괜찮아요."
"여기서 얘기하다가 가."

나를 불러세운 뚱뚱 할머니 옆에는 복권가방을 매고 복권을 파는 아줌마, 그리고 계속 무엇인가를 열심히 읽고 계신 고운 독서讀書 할머니 한분이 함께 있었다.

"사진 찍어드릴까요?"
"어, 나 찍어줘."

찰칵, 찰칵. 귀여운 뚱뚱 할머니가 흡족할때까지 몇장의 사진을 찍고나자, 뚱뚱 할머니는 옆에 있는 독서 할머니를 또 찍으라고 부추긴다. 그 와중에도 독서 할머니는 못들은 척, 계속 무언가를 읽으신다. 뚱뚱 할머니와 복권 아줌마는 독서 할머니의 그 모습을 찍는 나를 보고 꺼이꺼이 웃느라 정신없다. 할머니들 정말 귀여우시다.

"저 갈께요. 할머니 또 뵈요."
"응, 잘가. 근데 이 시간에는 걸어다니는 거 아니야. 더워."
"하하하. 네."

이 더운 낮에 걸어다닌다고 혼내시던, 귀여운 아줌마+할머니들  @Choi Yuri

이 동네에는 무슨 법이라도 있는지, 동네사람들이 하나 같이 낮에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큰일이라도 난 듯 호들갑들을 떠신다. 하긴, 어른들 말 들어서 나쁠 것 없지. 그럼 나도 숙소가서 한숨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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