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일 토요일

[Cu Chi] 다시 돌아온 베트남에서 잡생각, 내가 장거리 이동을 잘 견뎌내는 이유

#1.
장거리 이동을 너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대부분은 반나절 이상이 걸리는 버스나 기차의 이동시간을 듣고는 지레 겁먹고 질색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나는 장거리 이동이 나쁘지만은 않다. 반도국이지만 육로로는 그 어느 다른 나라로의 여행을 갈 수 없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나로써는 버스를 타고,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때로는 직접 걸어서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는 그 차제가 아직까지도 매번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다. 물론 수고는 따른다. 대부분 국경이동을 위한 큰 관광버스나 미니밴이 있는 경우가 있지만, 혹시라도 로컬버스를 이용하게 되면 밀입국자나 짐짝 취급을 받는것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2.
많은 사람들이 장거리 이동을 꺼려하는 이유는 불편한 자리이다. 푹신한 의자, 혹은 침대버스나 침대칸 기차라 할지라도 오랜시간 한 자세로 있어야 하는 것은 고역이다. 하지만 나는 감사하게도 어떤 장소와 어떤 환경과 어떤 자세에서도 자는 순간만큼은 편안히 숙면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지라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에 비하면 핑계거리가 되지 못한다.

스물 두살, 내 첫 배낭 여행인 인도에서 나는 인도 북부 라다크 지역의 추위와 허기짐을 핑계로, '캘커타에 가면 맛있는 게 많이 있다'라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잠무(Jam Mu)부터 캘커타(Kolkata)까지의 무모한 장거리 기차 여행을 선택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루트'의 개념도 엉망진창이었고, 그 당시에는 인도 사람들이 말해준 약 30여 시간의 이동시간을 체감 하지 못했기에 무작정 기차에 올랐었다.

내 인생 첫 장거리 기차 이동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약 30여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기차 안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과 차장밖의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는 데서 오는 설레임, 그리고 혼자만의 공상을 펼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짐에 나는 감사했다. 그러나 기차안에서 몇끼째 짜이와 사모사와 바나나로 연명하며, 먼지 가득한 침대칸에서 마주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버리고 도착 예정 시간인 30시간은 훌쩍 넘어 버렸다. 마침내 바라나시에서 모든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썰렁해진 기차에서는 시간이 더욱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잤을까 깨어나서 시계를 보면 고작 5분이 지났다. 그러기를 수십번 반복하자, 기차는 결국 '49시간'이 걸려 캘커타에 도착했다. 정말 잊지못할 2박3일이었다. 내 인생 첫 장거리 여행이 49시간이었기 때문일까. 그 후로 나는 49시간 이하의 모든 장거리 이동은 잘 할 수 있는 자신이 생긴것 같다.




#3.
내가 장거리 이동을 좋아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버스나 기차에서 볼 수 있는 차창 밖의 풍경이 오롯이 내것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앉아서, 혹은 누워서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퀴 달린 이 커다란 tv는 이 세상 하나뿐인 나만의 다큐멘터리를 틀어준다. 버스는 때로 시골길을 달리면서 내가 직접 찾아가기 힘든 구서구석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때로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낭떠러지 꼬부랑 산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곡예하듯 달리며 숨겨진 절경들을 나에게 보여준다. 내가 다큐멘터리를 끔찍이도 좋아하는 것은 맞지만, 나만이 볼 수 있는 창 밖의 리얼 다큐는 정말 질리지 않는 최고의 채널임에 분명하다.

Buon Ma Thuot에서 계속 만나게 되었던 정체 모를, 행선지 모를 차
로컬인듯, 로컬아닌 광역같은 루트의 차  @Choi Yuri



내가 장거리 버스 이동을 좋아하는 또다른 이유는 가난한 배낭 여행자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낼 고급 이동수단의 최고급 좌석부터 짐이나 심지어는 가축과 함께 타야하는 경우까지의 저려한 좌석까지 다양한 수단을 이용하게 되면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날 수 있다. 직항 국영 항공의 비지니스석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꾸역꾸역 십수시간을 통로에 찌르러져 가야하는 로컬버스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분명 다르지 않은가. 물론 아직 비즈니스석에서 누굴 만나볼 기회는 없었지만.;; 같은 버스를 함께 타고 가는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사님의 기호에 맞춘 휴게소와 노천 화장실과 온갖 사건사고(차량 고장, 교통 사고, 도로 유실 등)을 함께 겪으면서 돈돈한 사이가 될 수 밖에 없다.

Buon Ma Thuot 에서 Kon Tum 가는 길. 
터미널에서 출발할 때부터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 승객들이 내려서 밀어야만 했던 봉고차는 두번이나 중간에 서 버렸고, 결국은 타이어가 펑크까지 나면서 퍼져버렸다. 차가 설때마다 사람들은 태연히 각자 편한 자리를 찾아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터미널에서 출발할 때부터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 승객들이 내려서 밀어야만 했던 봉고차는 중간에 두번이나 멈춰 버렸고, 결국에는 타이어까지 펑크가 났다. 차가 설때마다 사람들은 태연히 각자 편한 자리를 찾아 수다를 떤다. 어느 누구 초초해 하는 이 없이.  @Choi Y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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