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걸으니 확실히 뱃살이 빠진다. 앉은뱅이 의자에서 굳어진 뱃살이 신기하게도 고 며칠 내로 쏙 들어갔다. 사실 또 여행에서 걷는 게 익숙해질 때면 다시 오를 살이지만.
지난 이틀간의 고된 일정으로 아침에 천근만근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11시쯤이 되어서야, 허기짐에 숙소를 나왔다. 밤에 도착한 싸늘하고 어두침침했던 읍내의 모습과는 달리, 너무 환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어젯밤 내가 묵고 있는 여관(Nha nghi)이 갑자기 정전이 되어서 창문 하나 없는 어둠 속에 너무 오래 있었던 탓일까, 해발 500m 지대라는 설명이 머쓱하게 내리쬐는 태양은 너무 뜨겁고 후끈후끈한 공기 때문에 숨쉬기가 답답할 따름이다. 나는 재빨리 미간에 만들어진 인상을 풀어줄 '그늘'을 찾는다.
물어 물어 껌빈잔(Com Binh Dan / 베트남식 백반 식당) 가게 하나를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골라 밥과 함께 접시에 담아 허겁지겁 먹고 있으니, 점심시간이 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온다. 식당은 곧 꽉 찼고, 소담을 나누면서 각 테이블 별로 즐거운 점심시간을 갖는데, 어랏? 각 테이블 별로 다른 언어들이 들린다. 중부지방 사투리 가득한 베트남어 테이블부터, 이 지역에 가장 많은 소수민족인 바나족의 바나어로 짐작되는 언어들, 그리고 처음 보는 소수민족 의상을 반쯤만 입은 소수민족 사람들의 새로운 언어가 이 식당 안에 마구 뒤섞인다. 그리고 그 식당 한쪽에선 한국어 가이드북을 펼쳐 놓고 유일하게 하노이 표준어를 쓰고자 노력하는 까만 여자애 하나가 게걸스럽게 밥을 마시고 있다.
여러 소수민족 언어가 공존하는 베트남 서민 식당, 어디서 또 이런 경험을 해 볼까. 진귀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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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꼰뚬 읍내의 친절한 껌빈잔 식당에서 푸짐한 한접시 25,000vnd @Choi Yuri |
나는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껌빈잔을 아주 애용하는데, 사실 혼자 다니다 보면 특별히 별로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먹을 곳도 마땅치 않아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껌빈잔을 애용한다. 왠일인지 나는 그곳이 질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나는 맛을 잘 모르고, 간만 맞고 배만 부르다면 다 맛있다고 해버리는, 미식가들이 경멸할지도 모르는 류의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 메뉴가 간단하며, 찾기 쉽고, 실패할 확률이 적고, 가격이 싼데다, 양까지 많은 껌빈잔은 바로 나를 위한 서민 식당이 아닐까 라고 믿고 있다. 지역마다 가게마다 반찬은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바다나 강이 가까운 지역에서는 해물이 다양하게 나오고, 아닌 곳에서는 다양한 고기반찬 위주로 나온다. 하지만 모든 껌빈잔의 공통적인 맛은 모든 며느리들이 다 알고 있다는 베트남 맛의 비법, '미원'일게다.
베트남에서 경험한 내 최고의 껌빈잔 집은 중부 꽝아이성, 공단 근처의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단돈 17,000동(900원) 짜리 껌빈잔이다. 출장차 찾은 꽝아이 공업단지 내에는 번듯한 식당을 찾는게 너무 어려워 매일을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다가, 며칠이 지나자 그조차도 너무 질리다는 아잉뚜의 요구로 어렵게 겨우 찾아낸 노동자들의 식당이었다. 양도 종류도 맛도 가격도 정말 최고였다. 역시 함바집이나 기사식당이 진리라는 건 어느 나라나 똑같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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