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9일 금요일

[Ha Noi] 웰컴백 투 하노이

#1.
찌뿌드드함에 눈을 뜨자 창 밖으로 익숙한 풍경들이 나타났다. 물에 잠긴 진초록의 논, 그 중간중간에 방향없이 얹어진 묘들, 그리고 안개 낀 서늘한 아침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하노이였다.

'다낭'발 '하노이'행 야간 침대버스의 도착 예정시간은 6시였지만, 역시나 터미널은 커녕 이제 막 하노이 외곽에 접어든 시간은 아침 8시가 되어 있었다. 차창 밖 간판에 문득 익숙한 주소가 보였다. 우리 센터 여직원 Tham의 마을이었다. 제 작년 Tham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직원들과 찾아갔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지나쳤던 기찻길도 보였다. 엊그제 같던 생생한 기억인데 Tham은 이미 아이를 출산하러 휴직을 한 상태다.

저 길로 계속 가면 내가 2년을 보냈던, 가족같았던 우리 직원들이 있던, 그리운 소똥냄새 가득한 우리 센터 마을이 나오는데.... 향수를 느끼기도 잠시, 버스는 바로 머리를 꺽어 다른 방향을 향한다. 우리 동네가 다시 멀어진다.

어쨌든 하노이에 돌아왔구나. 오래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2.
"요즘 하노이 날씨 완전 따듯해. 날씨 다 풀렸어."

전화 넘어로 들려온 이 한마디만 철썩같이 믿고, 반팔 하나에, 발목을 내보인 짧은 바지에, 2주만에 이미 헤질데로 다 헤진 쪼리를 신고 하노이 남부의 지압밧 터미널(BX. GIÁP BÁT)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추위에 놀란 나머지, 나는 떼로 몰려드는 삐끼 아저씨들을 가로질러 화장실로 뛰어갔다. 체온의 변화에 몸이 놀랬나 보다. 하노이 예보를 믿었던 내가 잘못이지..;;

화장실 관리인 아주머니에게 이용료 2000vnd을 내고는 미딩으로 가는 버스를 물어봤다. 그러자 아줌마는 웃으며 내 뒤를 가리키신다.

"그냥 저 아저씨 쎄옴타고 가"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내가 버스에서 비몽사몽 내릴때부터 나에게 말을 걸었던 아저씨가 서 있다. 내 화장실까지 쫒아오신게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반가운 하노이 발음으로 베트공 모자를 쓴 아저씨가 가격을 제시한다.

"7만동에 태워줄께."
"아저씨, 쎄옴 타다가는 추워서 죽겠어요."
"알았어. 6만동."

나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얼른 배낭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그래도 발이 시려운건 어찌할 방법이 없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진흙탕이 된 터미널 바닥 위를 조금 걸었다고 내 맨발엔 이미 여기저기 구정물이 튀어 있다. 신발은 내 배낭 제일 밑에나 들어있다. 귀찮다.

"아, 추워요. 5만동!!"
"하하하. 알았어. 5만동"

아직은 한참 한겨울 복장을 한 하노이안들이 잔뜩 움추린채, 내 쪼리와 옷차림새를 향해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왔다. 나는 애써 그 눈길들을 외면하며 내 앞에서 운전하고 있는 쎄옴 아저씨 등이 조금만 넓었으면 좋았겠다는 원망만 15분째,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회사에 있는 친구네 집 열쇠를 받아다가 주인 없는 빈 집에 뛰어 들어가 뜨거운 물로 몸을 한참 녹였다. 추위와 피로가 슬슬 풀렸다.

고작 '영상 10도'에 하노이에서 부모의 오토바이를 타던 아기가 추워서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을때는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었는데, 오늘 정말이지 진심으로 공감되기 시작했다. 얼어죽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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