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9일 금요일






#1. 추석맞이 정전



베트남의 추석은 어린이들을 위한 날이다. 물론 어린이날은 따로 있지만, 추석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축제가 이곳 저곳에서 열린다. 엄연히 국가 명절이지만 공식적인 휴일은 아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베 장애인 재활센터에서는 중추절 축제가 열렸다. 나도 재활센터에 가서 베트남 대학생들과 재활센터 아이들의 문화공연을 보고, 촛등 행사도 하며 아이들과 추석 분위기를 즐겼다. 






그렇게 하루 밤을 재활센터에서 자고 다음날 오전, 나는 CHOI씨의 꼬드김에 넘어가 시내 미용실에 가서 오래동안 의미 없이, 사실은 더워서 묶고 다니고자 길렀던 머리를 싹뚝 잘라버렸다. 늘 그렇듯 안경을 벗고 머리를 자르는 동안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머리 손질이 끝나고 안경을 끼는 순간 현실은 무섭게 다가온다. 나는 비싼 돈을 냈고, 고개를 들지 못한 채 한시간쯤 걸려 집으로 황급히 돌아왔다. 역시 우려한대로 집에 오는 버스에서는 아무도 내가 외국인인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해 어둑해 질 저녁 무렵 이었는데, 오늘은 한국의 추석 연휴인 만큼 평소와는 달리 왠지 잘 차려 먹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진수성찬을 차려 혼자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의 요리 솜씨에 감복하여 열심히 밥을 삼키는데 갑자기 전등이 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이미 해는 졌고, 마을 전체가 함께 정전이 된 덕에 나는 어둠속에서 입에 넣었던 밥알을 민망해 하며 씹어 삼켰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방에서 간신히 충전식 램프를 찾았다. 주방에 램프를 켜고 다시 식탁에 앉아 남아있는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다시 넣었는데 왠걸, 램프는 결국 방전이 되어버렸다.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에 여기저기 잘만 굴러다니던 빨간 양초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얄밉게도 초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촉감 하나에만 의지한 채 공기에 남은 밥을 입에다 밀어 넣었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얼려 두었던 비어 하노이 두 캔을 들고 나갔다. 역시 밖이 시원하다. 이제 가을이 오나보다. 내일은 여름 옷 정리를 좀 해야겠다. 한가위라 유난히 두리둥실 밝은 보름달 아래선 전기가 필요 없었다. 나는 경비 아저씨께 맥주를 한캔 드리고, 센터 마당의 시원한 돌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아 좋쿠나. 달님이 나보러 이렇게 밖에 나와보라고 전기를 꺼버리셨나보다. 쎈쓰있는 님.



잠시 후 아저씨가 경비실 어딘가에서 찾으셨는지 작은 초를 하나 가져다 주셨다. 나는 주신 작은 양초를 마당 테이블 위에 켜고, 기타를 가지고 나와 한곡조 튕겼다. 바람이 나무를 스치는 소리가 기가 막혔다. 확실히 방에서 퍼져 자는 것보다 멋찐 추석날이었다.








#2. 명절마다 시작되는 결심, 다시 공부 시작!!



- 베트남어 공부 : 요즘 통화할 때 마다 엄마의 레파토리는 "네가 인제 언제 또 베트남에 가겠니? 실컷 즐기다 와..!!" 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언젠가 한번 이상은 또 오지 않겠어?' 지만.. 엄마의 말씀에 순순히 "응"이라고 대답을 해주는 순한 양 놀이를 하고 있다. 엄니의 말씀은 베트남 여행이 아니라 그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지금을 즐기라는 심오한 뜻이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아쉬운 하루 하루를 보내며, 남들은 돈 주면서 어학연수도 간다는데 내 평생 이렇게 원어민에 둘러쌓인 완벽한 환경 속에서 외국어 배울 기회가 또 언제겠냐 싶어 베트남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게다가 지키지 못하는 약속이라도 공부와 인생 목표를 리셋해야만 하는 2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 아닌가.



왕년에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경비직원인 아잉 뚜언이 저녁 근무를 서는 평일(일주일에 3일 정도)에 함께 1시간 정도씩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근데 나의 베트남어 선생님이 된 아잉 뚜언이 어찌나 열심히인지, 분침이 8시 30분에 딱 도착하는 순간 베-한 사전을 옆에 차고 슬금슬금 나타난다. 발음 교정도 꼬박꼬박 해 주고, 숙제도 내준다. 고마워요, 아잉 뚜언. 우리 열심히 해 보아요.!! 




-  사회적 기업 조사 및 스터디 : 관련 책 10여권을 쌓아놓고 읽고 있으며, 여기저기서 필요한 자료들을 모으고 있다. 설렌다. 역시 뭐든 준비 과정이 가장 즐거운 거다.




-  영어 공부 : 평생 안고가야 할 공부로 생각 중이다. 천천히 꾸준히 공부하자. 몇점 몇졈 점수를 받는 게 필요한게 아니라 외국 문화를 더 알고, 외국 자료를 더 읽으며, 외국인 친구들을 더 많이 사귀기 위함이다. 나에게 외국어라는 과목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 없고 관심 없는 과목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언어를 넘어서 새로운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를 점점 알아가고 있다. 



영어, 베트남어를 접하고 나니 다른 외국어들도 배우고 싶은 욕구가 가득해졌다. 서른 넘어서의 남미 여행을 위한 스페인어, 일본인 다이버 친구들과 대화하기 위한 일본어 등등.. 한국에 가면 다른 외국어들도 열심히 빠져봐야겠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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