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 혼자 있는 텅빈 집에 에어컨을 켜고 있기가 아까워서 (사실은 집에 혼자 있으면 자꾸 공부를 안하게 되기도 하고, 밥 차려먹기 귀찮기도 해서) 책을 들고 집 앞에 시원한 커피숍으로 갔다. 아주 오랜만에(?) 교재에 몰입해서 밀린 복습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창밖이 어둑해 지더니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만 같아졌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집에 오는 길에 문군이 선물 받아온 새 바지 기장을 수선하러 오랜만에 수선집을 들렀다. 그런데 미싱 선반은 몇 아이들의 의자가 되어 있었고 수선집 언니는 바닥에 앉아 널부러진 원피스를 재단 중이었다. 언니는 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그 방안에 있는 네 여자는 모두 티비 속 한국 드라마 삼매경이었다. 언니가 선반 위의 티비 한번, 바닥에 있는 원피스 한번, 그리고 나 한번을 보더니 하는 말.
"내일 오면 안돼?"
결국 바지는 내일 찾으러 가기로 하고, 그냥 나왔다. 여전히 네 여자는 티비에 빨려들어갈 듯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 어느새 저 옆동네까지 어둑해졌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베란다 문을 여니 바로 '쏴아아-' 하는 큰 빗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안개가 끼었고, 순식간에 장대비가 퍼부어 내렸다. 그리고 세상은 흑과 백으로 단순하게 나뉘어졌다. 시원하다. 낚아채듯 빠르게 빨래를 걷어 들였다. 베란다 바닥에 튀기는 물이 마루로 조금씩 들어왔지만,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청량한 바람이 마구 불어왔다.
'깨끗해져라. 깨끗해져라. 너도 나도 깨끗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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