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라는 곳은 나에게 참 특별한 곳이다. 어디론가의 모험을 꿈꾸던 스무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중학교 은사님을 오래간만에 찾아뵈어 당당히 호프집에서 치킨을 뜯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화제는 여행으로 흘러갔다. 선생님은 마침 얼마전 몇주간 동료 선생님들과 인도 북부를 다녀오셨다며 이런 저런 여행담을 이야기 해주셨으나, 지금 기억나는 것은 딱 한가지 여행자들 사이에 떠돌던 우스갯 소리뿐이다.
갠지스강이 흐르는 묘한 도시 바라나시에는 사람이 두명이 걸으면 꽉차는 골목들이 꾸불꾸불 이어져 있다. 사실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해 헤메는 것이 당연한데, 나는 바라나시를 두번째 갔을 때야 비로소 해질녁까지 그 골목골목을 기약없이 헤메는 것이 바라나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멋찐 일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어쩄든 선생님이 들려주신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는 이러했다. 일행들과 함께 바라나시 골목에서 메인 가트(갠지스 강변의 수십개의 가트가 있다)를 향해 가는데, 아무리 헤메도 가트가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헤메다가 한 골목에서 우연히 한국 여학생 두 명을 만났는데, 반가운 마음에 그 학생들에게 가트로 나가는 길을 물었다. 그러자 그 여학생들이 허탈한 실소를 보이며 하는 말, "저희는 어제부터 헤메고 있어요." 믿거나 말거나..
선생님의 인도여행기 몇 마디에 나는 무언가에 이끌려 목적지를 무작정 인도로 삼았고, 집 옆의 구립 도서관에 매일 가서 그 당시 10여권 정도 출판 되었던 인도여행기를 몽땅 읽어버렸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고, 몇 번의 시도와 실패 끝에 결국 1년뒤, 인도행 항공기에 몸을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20대 초중반을 함께 했던 남자친구 C도 인도라는 고리의 연이 있었다. 인도로 떠나기 한두달 전쯤부터 의경 부대에서 간간히 걸려온 C의 전화, 그리고 엽서 하나만 보내달라며 주소를 불러내던 그녀석에게 나는 귀찮다는 핑계로 주소를 적은 종이를 그냥 책상위에 방치해 두었었다. 그러다 여행을 떠나면서 눈에 띄는 그 종이를 챙겨갔다. 그러고는 49시간 기차 이동 끝에 캘커타에 안착하고서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그 엽서에 마음을 담아 보냈다. 사실 그 전에 인도 북부 '레'에서 먼저 집으로 한장의 엽서를 보냈으나, 그 엽서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다행히 C에게 보낸 엽서는 일주일만에 C의 부대에 도착했고, 마침 몇일째 시위대와 대치 중이라 힘들고 지쳐 있었다는 그 녀석에게 그 편지는 사막의 오아시스가 되어 주었다. 캘커타에서의 엽서는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왔고 우리의 연애는 시작되었다.
진부한 연애사의 끝이 다 그러하듯이 헤어짐과 만남의 번복, 그리고 속 안에 쌓여 있던 모진 말을 모두 내 뱉은 후에야 그 질기고 질겼던 줄다리기는 끝이 났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던 어느 날 C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사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나는 나처럼 마음의 평정을 찾고 있던 친구와 함꼐 커플이 안보이는 곳을 찾기 위해 크리스마스의 템플스테이를 찾아보았으나, 세상에나. 우리나라엔 성탄절 특집 같은 템플스테이도 있고, 유명한 절들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앞세워 비싼 가격을 요구했다. 우리는 결국 '설마 크리스마스에 누가 눈 쌓인 지리산에 오겠어..' 하는 생각으로 24일 지리산을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출발 전 그때 C가 다시 전화가 왔다. 인도에 갈거란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녀석은 인도는 커녕 동네 뒷산을 여행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니가 무슨 인도냐? 만약 세상 사람들이 인도여행을 다녀 온 사람, 안 다녀온사람, 그리고 다녀 왔지만 갈 필요 없었던 사람 이렇게 세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면, 넌 갈 필요 없었던 사람이 될꺼야." 그러자 그녀석이 말했다. "너 때문에 가보려고. 왜그렇게 인도 인도 노래를 불렀나 궁금해서. 너랑 같은 걸 보고 와보려고." 순간 그 녀석이 죽을만치 미웠던 전 남친이 아니라 기특한 철 없던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래. 다녀와. 혼자 이것저것 많이 보고와."
"응, 다녀와서 연락할께"
그렇게 떠난 그 녀석이 인도에서 보냈다고 했던 그 엽서는 그 녀석의 귀국 하루 전에 나에게 도착했다. 혹시나 변했을까, 뭔가 느끼고 달라졌을까.. 했던 기대감은 '인도는 힘들다. 여행이 피곤하다.' 몇마디 훽 적혀진 그 엽서를 보고는 더한 실망감으로 변했다. 그 녀석의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바로 다음날 우리는 예전에 만난 던 앞교 앞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하나 달라진 것 없는 그 모습과,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들까지 알아버린 나는 그 자리에서 미련을 깨끗히 정리했다. 몇 년간의 체증이 내려갔다. 마지막 자리에서 돌아 나오는 순간, 나는 그 녀석이 '인도를 다녀왔지만 안가니만 못했던 사람'이라는 것에 확신을 하게 되었다.
내 인도여행으로 시작된 연애은 그 녀석의 인도 여행으로 끝이 났다. 시작도 끝도 인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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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바라나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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