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하노이행 반전(反轉) 버스 : '명품 버스'와 '에코 버스'


주말에 마을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 다행히 빽빽한 콩나무 시루버스는 아니었고, 고맙게도 할아버지 한 분이 내리면서 서 있는 몇몇 청년들을 밀치고 외국인인가 아닌가 하고 계속 눈이 마주쳤던 나를 끌어다가 자리에 앉혀주셨다. 덕분에 나는 시내로 나가는 동안 버스 뒷문 앞에서 편히 앉아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


빙다 시장에서 콩나물 버스 기다리기 : 트럭이 지나갈때마다 먼지가 뿌옇게 날리니 숨을 참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 반전(反轉) 하나. '명품 버스'



몇일 전 본 신문에서 인천 공항 면세점에 세계 최초로 루이비통 명품매장이 들어섰는데, 하루 매출이 무려 5억이고, 그게 면세점 전체 매출의 10%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 경향신문 관련 기사 클릭) 별걸로 다 1위를 한다 싶어 억소리 나게 놀랬었는데, 나는 오늘 버스에서도 명품 가방 때문에 한번 더 놀라게 되었다.



버스 뒷문 바로 뒤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가고 있는데, 젊은 여성이 명품 스타일의 커다란 숄더백을 매고 하차를 하기 위해 뒷문 앞에 섰다. 거 왜 한국여성들도 많이들 가지고 다니는 명품 가방중에 뤼X똥이나 샤X, X찌 등등의 명품 로고가 반복되어 도배질 된 커다란 가방이 있지 않나. 그와 거의 흡사한 모양의 가방이었는데, 뭔가 이상하다 싶어 유심히 살펴보니 가방에 도배된 로고는 그 어떠한 명품의 로고도 아니고, 다른 브랜드의 이미지도 아닌 '지하연(?)'이라는 요상한 한글이었다. 뜻 모를 한글인 '지하연', '지하연', '지하연'....글씨가 큰 가방의 앞뒤로 무한 반복 되어 있었다. 얼필 멀리서 보면 정말 명품 가방으로 오인할 만 했다. 



'지하연'이라는 한글이 혹시 가방 만든 베트남 사장님과 관련된 이름이거나, 한국 드라마를 너무 사랑하는 베트남 디자이너의 한국어 학구열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뜻도 의미도 모르는 한국어 명품 가방을 보니 왠지 신기하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한글을 이용한 세계적 의상 디자이너 이상봉 선생님께서 베트남 하노이 시골마을 콩나물 버스에 주민들이 이런 작품을 들고다닌다는 사실을 아시면 분명 울고 가시리라.



그런데 한참을 명품백에 팔려 있다가 정신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야말로 여기는 명품 세상..!! 한 무리의 동네 청년들이 입은 셔츠에는 '케빈 클XX'부터 시작해서 누가 뒤질세라 '돌체 엔 X바나', '샤X' 등의 로고와 글씨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고, 혼자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있는 아줌마 청바지의 뒷주머니에는 'X찌' 브랜드가, 멀미로 봉지에 얼굴을 넣고 고생하고 있는 여학생의 티셔츠에는 악마들이 입는다는 '프라X' 가, 그리고 잔돈을 한뭉치 들고 몸을 반쯤 차문 밖으로 뺀 채 소리를 지르는 '차장' 청년은 '아르마X' 모자에 '버X리'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이 버스에서 그 흔한 명품 브랜드 로고 하나 밖혀있지 않은 사람은 나 뿐이었다. 아 더러운 세상.


우리동네 27인승 랜트 버스 : 문법이 맞으니 이정도면 아름다운 한글표기다 ;;





# 반전(反轉) 둘. '에코 버스'
명품 백 여자가 내리고, 가끔은 수동으로 차장청년이 닫아야만 하는 반자동 뒷문 앞에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타란 파란 비닐봉지가 눈에 띄었다. 뒷문 바로 앞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문이 열릴때마다 문틈에 파란 봉지가 끼는지 마는지 노심초사 하는 것을 보니 봉지의 주인인듯 했다. 문이 열리고 닫히기를 여러번 하차를 위해 문앞에 선 아주머니가 드디어 소중한 파란봉지를 드는 순간, '푸드덕 푸드덕@#$!@%!%$;;;' 봉지 안에 숨죽여 있던 커다란 닭이 날개짓을하며 날뛰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뒤에서 차 문으로 다가오는 아저씨를 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무슨일인가 싶었는데 잠시 후 뒷문 앞, 즉 내 의자 바로 앞에 다가온 아저씨의 양 손에는 거꾸로 다리를 묶인 비둘기 한뭉치씩이 잡혀 있었다. 오마나 세상에. 



어렸을때 사람 두명 지나갈 것 같은 좁은 도로에 통통한 비둘기 한마리가 있으면 나는 그 비둘기가 안 보일때까지 기다려 주는 침착한(?) 아이었다. 그렇듯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동물 1위가 비둘기인데, 발목이 묶인 채 거꾸로 뒤집혀 어디론가 끌려가는 10여마리의 비둘기를 바로 앞에서 목격한데다가 심지어 한 녀석이 부리를 내 무릎 가까이에 콕콕 쪼아대려고 하는 그 몸짓에 나는 온몸의 신경세포가 미친듯이 뻗쳐 올랐다. 그러나 나의 신경세포와는 무관하게 이내 비둘기들은 버스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한 관심을 받으며(그게 사랑스런 애완의 느낌인지, 군침 도는 식용의 느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나마 버스 안의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나만 빼고.
'그래 비둘기들아, 너희도 잠시 후면 세상과 이별일텐데...'라는 생각으로 나는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무릎에 잔뜩 힘을 준 채, 먼 곳을 바라 봤다. 마치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이 '무념 무상', 주변의 관심이 하나로 모은 내 무릎 앞의 정체가 그것일리 없을꺼라는 '무념 무상', 버스 문이 열리고 아저씨가 내리는 그 순간까지 '무념 무상'....  



나는 오늘 동물과 인간이 상생하는 '에코 버스'를 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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