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3일 수요일

베트남에서 본 김정일 사망, 그리고 박제가 된 호치민


김정일 위원장 사망 소식을 들은 베트남 하노이의 분위기는? 


중국과 러시아 등이 정부 차원의 애도만 간단히 표명한 것에 반해, 대표적인 북한 우방국가인 '쿠바' 정부는 무려 3일간 전 국민적인 애도 기간을 갖고, 군사시설에도 조기를 계양하였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날,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에 애도를 표하고 조전을 보냈다고 한다.



하노이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에는 조기가 걸렸고, 하노이 유일의 북한 음식점인 '평양관' 직원들과 북한 유학생 등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국민들의 조문으로 대사관은 모처럼 분주했다고 한다. 그리고 하노이의 한인 밀집 지역 중 하나인 쭝화에 위치한 '평양관'의 입구는 셔터가 굳게 닫혀진 채, '사정상 당분간 봉사를 하지 못한다'는 한글 안내분이 붙여 있였다.


@ 연합뉴스






김일성은 김녓타잉, 김정일은 그냥 김정일?



센터로 들어오는 차 안에서 하다가 한 직원이 김정일 위원장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보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이 바로 생각이 안났는지 아 그 있잖아 누구지? 누구!! 를 한참이나 되묻던 중에 간신히 다른 직원 하나가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을 어렵사리 기억해 냈고,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이야기 하다가 김일성 주석의 이야기 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가물가물했던 김정일 위원장의 이름과는 달리 한치의 오차도 없이 베트남 직원들이 동시에 내뱉은 김일성 주석의 베트남 이름은 김 녓(Nhat) 타잉(Thanh). 풀이해 보자면 녓은 최고라는 의미의 베트남어 Nhat(녓)인것 같고, 타잉은 성공이라는 의미의 Thanh Cong(타잉 꽁) 이다. 즉, 김일성의 이름 세자는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베트남식으로 조금 바꿔 '김 녓 타잉(Kim Nhat Thanh)'으로 부른다. 김정일 위원장을 그냥 한글 그대로 김정일로 부르는 것과 달리 베트남 인민들에게도 김일성 주석의 이름은 고유명사처럼 불리우고 있었다.



아무리 아직도 베트남이 북한의 우방국가라 한다지만 베트남 인민들에게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은 과거 김일성 주석의 죽음과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시신이 영구 보존된 9명의 사회주의국가 지도자



김정일 시신을 영구 보존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2008년 일본 잡지인 주간문춘에 '김정일이 자신의 시신을 영구 보존하라는 유훈을 남겼다'라는 글이 남겨진 것이 그 근거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 관리 비용이 엄청나서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의 시신까지 보존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까지 영구 보존된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의 시신은 ▲구소련의 레닌(1924년) ▲불가리아의 디미트로프(1949년) ▲구소련의 스탈린(1953년)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고트발트(1953년) ▲베트남의 호치민(1969년) ▲앙골라의 네트(1979년) ▲가이아나의 바남(1985년) ▲중국 마오쩌둥(1976년) ▲북한 김일성(1994년) 등 총 9구다.



전 세계에 영구 보존되는 시신이 계속 9구로 남아있을 것인지, 2011년 새로운 1구의 추가로 10구의 시신이 보존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자신의 시신이 영구 보존 하기를 바란다는 김정일이 유훈이 사실이라면 그 9구 중 하나인 호치민의 그것과는 상당히 비교되는 대목이다. 



1969년 9월 9일, 베트남 독립 24주년 기념일에 베트남의 혁명가 호치민은 눈을 감았다. 철저한 금욕주의자였던 그의 유물은 입던 옷과 책 뿐이었다. 그리고 '인민의 돈과 시간을 장례식에 낭비하지 말라'라는 그 검소함을 받들어 장례는 엄숙하고 장중하게 35분만에 끝이났다. 호치민의 마지막 유언은 '죽어서 시신을 화장하여 일부는 고향에 뿌리고, 일부는 보관해 두었다가 통일이 된 후 남부에 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유언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나라와 인민을 하나로 단결시킨 국가의 정신적 지주가 사라져 흔들릴 것을 우려한 당 수뇌부가 그의 시신을 영구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호치민이 떠나고 4년 뒤 미군은 베트남에서 철수했고 1975년 베트남은 남북 통일이 되었다. 호치민은 살아서 독립과 통일을 보지 못했지만, 죽어서도 역시 자유롭지만은 못했다. 정신적 지주를 붙잡아 체제 유지와 권력 강화에 이용하려 했던 북베트남의 지도자들 때문에 그는 하노이의 무덤에서 박재가 되어야만 했고, 결국 재가 되어서라도 가고 싶었던 남쪽에는 갈 수 없었다.





호치민 묘에는 호치민이 없다?



호치민의 묘는 하노이 바딘 광장에 호치민 박물관, 호치민의 집 등과 함께 위치해 있다. 호치민 묘는 오전에만 개방되는데, 베트남의 영웅이자 국부로 불리우는 인물인 만큼 박제된 시신을 보기 위해선 복장에 예를 지키고 긴 줄을 따라 엄숙하고 신속하게 관람을 하고 나와야 한다. 그 시신은 작은 방 안의 유리관 안에 보존되어 있는데, 너무 가짜 같아서 진짜처럼 섬뜩하달까, 아니면 너무 진짜 같아서 오히려 가짜 같다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한 나라의 정신적 지주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베트남을 이해하는 데에 진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2011년 12월 현재, 호치민 묘에는 호치민이 없다. 호치민 역시 다른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의 시신들 처럼 2~3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러시아의 '생물구조연구센터'로 보내져 '발삼향액' 수조에 담가 방부처리를 받고 오는데, 그 기간은 한 달 이상 소요되므로 최근 몇 달 동안 하노이 호치민 묘에는 호치민이 없었던 것이다. 호치민은 지금 추운나라 러시아에서 방부처리를 받고 계신다.



세계 최고의 사체 영구 보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생물구조연구센터'는 1990년 10월 처음으로 그 존재가 외부에 알려졌는데, 호치민 뿐 아니라 김일성, 레닌, 마오쩌둥 등의 사체 영구보존 처리까지 담당했다. 이 연구기관은 '엠바밍(embalming)'이라는 기술을 이용, 사체를 방부처리해 생전 모습 그대로 보존한다. 러시아 매체들에 따르면 이 같이 사체를 영구보존하는 과정에 100만 달러(약 11억5000만원)가 소요됐으며, 지속적인 관리비용으로 연간 80만 달러(약 9억2000만원)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사실에 따라 계산해보면 베트남은 지난 42년간 호치민의 시신의 관리 비용으로 약 3,460만 달러(약 397억9000만원)를 썼으며, 북한 역시 김일성의 사체 영구보존을 위해 지난 17년간 약 1,460만 달러(약 167억9000만원)를 쓴 셈이 된다.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무척이나 아깝게 생각했던 검소한 국가 영웅 '호치민', 과연 그는 그 추운 나라에서 원하지 않던 수십억짜리 목욕을 하시면서 어떻게 베트남 인민들을 바라보실까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블로그의 글과 사진을 퍼가실때는 미리 동의를 구해주시고, 비방이나 욕설은 삼가 바랍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