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4일 금요일

우리 딸 한국 올 날 진짜 얼마 안남았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자취생활 꽤나 했을법한 사람으로 보인다는데, 그게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몇끼도 굶어버리고 눈 앞에 보이는 건 모두 먹어치우는 내 불규칙스런 먹성 때문일수도 있고, 뭐든 그냥 뚝딱뚝딱 만들어 버리되 전문성은 전혀 없는 것이 티가 나서 일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사실 나는 이나이 먹도록 우리 부모님 집에 얹혀 살고 있는, 공식적으론 태어나서부터 계속 부모 밑에서 살아온 '여리고 고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엄마는 이제 방세를 내라고도 하고, 매끼 밥 값을 월별로 정산해서 내라고 하시지만 나는 그 속에서조차 딸에 대한 엄마의 무섭고도 따스한 정(?)을 느껴보려 노력한다.

근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에게 자취아닌 자취생활의 흔적들이 보이는 것은 자유로운 부모님 아래, 자취생활 못지 않게 밖을 싸돌아다닌 덕분인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어디에서만 살아 있는지 보고만 된다면 외박은 자유라는 모토아래, 대학교때 열심히도 외박을 해 왔었다. 그리고 역시 장기간의 해외 여행은 자유로웠으나 나는 그 풍요로운 권리에 대한 내 의무로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전화나 블로그에 글을 남겨 내 안부를 전해 드렸다. 아무리 전기 사용이 어려운 외지에 있어도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마을에서 인터넷 되는 곳에 가서 한참을 걸려 연락을 하곤 했다.

그리고 베트남에 온 이후로는 오늘까지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매주 주말에 한번씩 070 전화로 엄마와 전화를 하고 있다. 과거에 남자친구는 물론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먼저 건 적이 없고 통화를 즐겨 하는 편이 아니라 매번 최저 통화요금을 자랑하던 나였기에, 엄마와의 통화라는 것은 해외 생활 중 나의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사실 2년 넘게 엄마와 통화를 하니 그 전에 살 부딫히며 한 집에 살 때보다 확실히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예전에는 '엄마와 대화가 길어지면 무조건 싸움'이라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해외 나오면 다 애국자, 효자된다라는 말이 맞는 듯 이제는 정말 많이 완화되었다. 지금은 엄마가 한주간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충분히 들어줄 수 있게 되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누가 그랬다더라, 누가 그랬다더라 하는 둥의 잡담과 조금 더 낮부끄러운 얘기들 까지 '최대한 싸우지 않고' 얘기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엄마와의 전화통화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요령이 하나 있다면, 통화 중에 혹시 엄마가 '누가 또 어떤 부잣집 남자와 결혼을 했다더라' 라든지, '넌 거기에 남자 없냐'라든지, '오빠가 또 돈을 주었고 뭘 사줬다'라든지, 혹은 지난주와 지지난주에 했던 말이 또 반복하려 할 때는 나의 정신줄을 반쯤 놓은 상태로 경청하면 된다. 오랜 기간 수련해 온 나의 '멍' 능력이 있기에 가능하지만, 여기엔 '전화'라는 매게체의 서로를 보지 못하는 아름다운 역할도 한몫했다. (여행 초반에는 SKYPE로 화상전화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서로 귀찮아서 그냥 전화 통화만 한다 ;;;)



요 근래의 통화에서 울엄마의 마지막 말은 늘 "우리 딸 한국 올 날 진짜 얼마 안남았네"로 끝났다. 오늘의 통화의 마지막 주제도 어김없이 "우리 딸 한국 올 날 진짜 얼마 안남았네" 였는데, 갑자기 내가 오면 얼마전 TV에서 봤다던 생우동 가게에 가자고 하셨다. 뭐 생전 좋아하지도 않던 생우동을 먹고 싶어졌냐며 퉁명스럽게 되물었지만, 사실 내가 비교적 시간의 분배가 자유로웠던 시절에는 엄마와 소소한 먹거리를 먹으러 이곳저곳 시장들을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조금 미안해졌다. 곧이어 나도 엄마와 자주 가던 광장 시장에서 역시 얼마 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광장시장 '마약 김밥'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 역시 그 '마약 김밥'을 아시는지 그거 별거 아니라며 퉁명스럽게 얘기했지만, 내가 한국에 가면 '생우동'과 '마약 김밥'을 모두 먹으러 가자는 훈훈한 합의로 오늘의 통화는 끝이났다.


그렇게 엄마와의 전화통화가 끝난 후, 그동안 틈틈히 떠올랐던 한국가서 해 보고 싶은 것들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즐기기>
- 닥치고 여행
- 하루종일 서점에서 책 읽기
- 그동안 못봤던 음악 페스티벌들과 자잘한 공연들 열심히 보기
- 오토바이나 스쿠터 구입
- 순대곱창먹기
- 기타 더 열심히 치기
- 수영 배우기
- 꾸준히 달리기, 자전거 타기
- 마라톤
- 질리도록 연애하기
- 내 삶을 정의하는 말을 써 붙여 놓고 매일 아침 읽기

<사람 만나기>
- 지인들과 등산
- 엄마랑 무한정 시간 보내기 : 광장시장, 영화보기, 코스트코 가기, 조개구이집 가기, 지역축제가기, 기차여행, 목공교육 받기
- 비슷한 시기에 각 국가에서 귀국할 Fellow 2기 동기들을 진안에서 다시 만나 서로 그간의 얘기 듣기
- 공분근 선생님 등 나의 멘토가 되어주실 분들을 찾아가 좋은 말씀 듣기
- 우리 아파트 바로 앞에 생겼다는 동네 최초의 브랜드 커피숍에서 오밤 중에 동네친구들이랑 커피 한잔 하기
- 회사다니는 친구들한테 열심히 얻어먹기
- 소홀했던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배우고 준비하고 시작하기>
- 인문학 강좌 및 접할 수 있는 각종 강좌 듣기
- 가까운 대학 다니기 (대학다닐때 엄청나게 지불했던 것에 대해 다 못 뽑아 쓴 것 같다. 도강이든 도서관이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열심히 이용하기)
- 청소년 교육, 대안 교육 관련 교육 듣고 커뮤니티에 참여
- 청소년 여행 프로그램 인솔 및 루트 및 컨텐츠 찾기
- 지역 공동체 방문 및 공동체에 대한 교육
- 새로운 공정여행 프로그램에 대한 체험과 고민
- 여행가들의 글을 읽고 찾아뵙기
- 사회적기업 제도 및 기획 연구
- 내가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해야 할 방향에 대해 명확히 결정을 하고, 계획했던 일들을 시작하기


나열해 놓고 보니 많구나. 일부는 당장이 아니라 평생을 즐기고, 평생 동안 관계 맺고, 평생을 배워야 할 것들 인지도 모르겠다. 바쁘게 살자.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블로그의 글과 사진을 퍼가실때는 미리 동의를 구해주시고, 비방이나 욕설은 삼가 바랍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