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부터 2년 간, 내가 베트남에서 활동할 동안 가장 많이 만난 집단은 베트남 대학생들이었다. 베트남에는 단과 별로 학교가 구성(하노이 외국어 대학교, 하노이 사범 대학교, 하노이 의학 대학교, 하노이 외상대학교, 하노이 건축 대학교, 하노이 미술 대학교 등..)되어 있어, 우리 나라 대학에서 학과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듯 이 곳에는 학교마다 학생들의 느낌이나 환경이 분명 다르다.
그 중 나와 친하게 지냈던 몇 집단의 대학생들은 하노이 소재의 명문 4년제 대학인 '하노이 외상대학교'에 재학 중인 친구들이다. 이 학교는 우리나라 '연대' 느낌의 대학으로 대입 점수로는 의대에 이어 하노이(곧 북부지역 전체를 의미)에서 2위를 달리는 학교라 한다. 이 학교 학생들에겐 전공이 전공인 만큼 영어는 필수이고, 베트남식 영어 발음을 구사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어릴 적 따로 영어 학원을 다니거나, 집에서 영어 과외를 했거나, 심지어 어학연수를 다녀 온 친구들도 있다. 그건 명문 대학교인 만큼 북부 각 지역에서 정말 똑똑한 친구들이 모이기도 했거니와, 어릴적부터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하노이에 사는 넉넉한 집안의 친구들도 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까진 외상대 대학생의 일부는 시골에서 부모님이 소 팔고 땅 팔아서 뒷바라지를 해 주시기도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개천에서 용 날 수있는 기회'가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처럼 베트남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 진다는 것은 곧, 고등 교육의 기회가 모든 학생들에게 고르게 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교육 없이 학교에서만 열심히 공부를 한 학생들은 점점 '외상대' 같은 명문 대학에 들어오는 게 어려워 진다고 한다. 출발선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자본주의는 이미 베트남에도 깊숙히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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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소수민족) 박물관에서 만났으나 관람은 뒷전, 시원한 카페에서 수다떨기 삼매경 |
"찌 유리(유리 언니)!! 우리 언제 만날까요?"
나는 예전의 기억만을 가지고 아무 생각 없이 평일 점심에 만나는 약속을 제안했지만, 이 친구들은 더이상 시간 널널한 대학생이 아니었다. 모두들 열심히들(심지어 토요일까지) 일하는 직장인이 되었고, 이제 여기서 시간 널널하게 노는 건 나 뿐이었다. 결국 만나기로 한 약속은 일요일 아침 9시. 내가 한참 잘 시간이었다. 심지어 내가 오후에 일이 있다고 하니 아침 8시부터 만나자는 걸, 간신히 미뤘다. 참 부지런한 것들..
매 방학이 되면, 여러 팀의 한국과 베트남 대학생들이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데, 봉사단의 가장 큰 효과는 한국 대학생들이 가지고 오는 그 어떠한 기자재나 선물들도, 한바탕 추고 가는 K-POP 춤이나 부채춤이나 태권도 공연도 아닌, 바로 '사람'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에겐 '주러 왔다가 배우러 갑니다'라는 조금은 뻔한 배움이 있고, 도심에서 나고 자란 베트남의 청년 인재들은 시골 마을에 가서 베트남의 이면을 마주하고 경험하고 느낄 수 있고, 베트남 농촌의 청소년들은 훌륭한 베트남 언니 오빠들을 만나면서 꿈을 키우는 것. 그것이 봉사단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그 무엇 중 하나일 것이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K-POP'이 이루어질 수 없는 없는 한 여름밤의 꿈이라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늘 열정적인 베트남 청년'들은 보고 배워서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다.
이 친구들은 내가 만났던 대학생 봉사단 팀 중에서도 가장 단합이 잘 되는 녀석들이었다. 마음이 잘 맞았고, 힘들어도 불평 한마디 없이 서로 도왔다. 이 팀의 대부분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었는데, 시골의 중학교 아이들과 노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라 했다. 더불어 열흘간의 활동이 끝나고 난 뒤, '언니처럼 NGO에서 일을 하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이 팀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이후의 활동 때문이다. 열흘간의 활동이 끝나고 몇달 뒤, 이 8명의 베트남 친구들은 평소에는 잘 타지도 않는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고 다시 그 중학교를 찾았다. 함께 어울렸던 아이들을 다시 만났고, 하노이에서 아름 아름 모아 온 중등 참고서를 학교 도서실에 기증했다. 내가 감동 받은 것은 정말로 다시 찾아갔다는 그 '사실'이었다. 봉사단 활동이 끝날 무렵 모든 학생들은 '다시 만나자'라는 서로에게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한다. 그러나 이 친구들은 자발적으로 학교를 다시 찾았고, 아이들에게 했던 약속을 정말로 지켜줬다. 참 고마웠다.
<제3회 ‘한-베 자원활동 캠프’ 참가자 ‘프엉(Phuong)'의 이야기>
그렇게 대학교 3, 4학년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졸업 후의 진로를 고민하던 녀석들이 이제는 야근과 월급과 결혼과 출산을 이야기하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상황과 위치는 많이 바뀌었다. 목욕탕 의자에 쪼그려 앉아 저렴한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놀았으나, 지금은 점심을 먹으러 일부러 맛있는 식당을 찾아간다. 이전에는 한 오토바이에 둘씩 타고, 혹은 자전거까지 동원해서 이동을 했으나, 이제는 급할땐 가끔 택시도 타고 한단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단 하나, 여전히 한명 빼고는 모두 남자친구가 없다는 것. 우리 나이로 스물 다섯 혹은 여섯이 된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은 결혼하고 심지어 애도 있는데 자신들은 남자친구도 없다며 징징댄다. 내가 보기에 이 친구들은 아직 결혼에 대한 부담과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베트남 최대 통신 회사 2년차 직원으로 토요일에도 일하고 가끔은 일요일에도 부르면 바로 나가야 한다고 툴툴 대면서도 자기가 하고 있는 마케팅 일이 너무 재밌다고 싱글벙글 하는 녀석, 멀쩡히 다니던 잘 나가는 은행을 그만 두고 조금 더 공부하고 싶다며 한국 유학을 결심한 녀석, 전공인 회계 일을 하지만 여전히 NGO 활동을 꿈꾸고 있는 녀석, 그리고 지금의 직업과는 무관하게 영어나 한국어를 꾸준히 혼자 공부하고 있다는 녀석들까지.
점점 더해지는 빈부의 양극화, 그리고 경제 수준에 비한 교육의 불평등, 도농간 문화적, 교육적 접근성의 확실한 격차. 베트남은 분명 젊지만 피라미드는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넉넉하게 살거나 혹은 꽤 괜찮은 교육을 받아서 몇십년 뒤, 이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젊은 친구들 중에 이렇게 괜찮은 녀석들이 아직 베트남에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똑똑하고도 바른 생각을 가진 청년들이 아직 베트남에 많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계속 괜찮은 청년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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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h trang cuon thit heo 전문점. 맛있도 값도 싼데, 집에서 멀지도 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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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먹은 My quang (중부 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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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쌀종이에 야채와 과일과 구운, 혹은 익힌 돼지고기를 싸서 먹는 'Banh trang cuon thit he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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