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9일 금요일

내친구 '돌제', Traditional Tibetan music artist 'Dorjee Tsering'

#1
지난 달 쯤인가, 오랜만에 연락이 온 돌제(Dorjee)는 나와 화상 통화를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캐나다에 있는 돌제와 한국에 있었던 나는 시차 때문에 같은 시간에 웹상에서 마주치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베트남 행 준비로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다. 그렇게 돌제의 화상 요청이 있은 며칠 후, 다시 만난 채팅 창에서 돌제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다행히 발견 후 최근에 수술을 마쳤고, 어느 정도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근래 사진에 급격히 살이 빠진 것 같았다. 나는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것 뿐 이었다.

"you will be alright. i play for you."

그렇게 돌제를 까마득히 잊은 채, 나는 베트남에 와버렸다. 그리고 며칠 전 그에게 다시 메세지가 왔다. 공연을 할 건데 포스터를 만들어 줄 수 있냐고. 안그래도 요새 갑자기 꺼지곤 하는 오래된 노트북이 포토샵 프로그램을 깔면 감당할 수 있을까가 의문이긴 했지만, 나는 기쁘게 돌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이보다도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즐겁게 작업을 했으니까.





#2
돌제를 처음 만난 건 2009년 4월, 인도 북부 '다람살라(Dharamshala)'에서 '윗동네'라 불리는 '맥그로드 간즈(McLeod Ganj)'에서 였다. '맥그로드 간즈'는 '달라이 라마'가 계시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곳으로 해발 1700m 이상의 고산 지역이다. 그 곳에는 중국의 박해를 피해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넘어 온 수많은 티베트인들과 그 자손들이 삶을 꾸리고 있다. 

@ 2009 맥그로드간즈. photo by Choi Yuri

나는 여행 중 맥그로드간즈에 푹 빠져 한 달 가량 머무르게 되었는데, 어둠이 내린 어느 평일 저녁, 우연히 숙소 앞 초등학교 교실 한칸에서 티베트 전통 음악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실 앞에선 키 작은 티베트 남자가 현재 티베트의 정치적 상황을 이야기 했고, 곧이어 전통 옷을 입은 돌제가 나와 티베트 전통 기타를 차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30분여간의 이 무료 공연에는 약 10명 내외의 외국인 관객들이 있었는데, 어떤 날은 서양의 가족 여행자들이 쿠키를 가지고 왔고, 어떤 날은 다른 여행자가 따듯한 차를 가지고 와서 나누어 먹기도 했으며 공연에 감동받은 사람들은 조금씩 후원금을 내고 갔다. 나는 티베트 전통 의상을 입고 열창하는 돌제의 음악과 열정에 쉽게 매료되었고, 이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공연을 막 마친 돌제를 찾아가 말했다. 당신이 필요하다면 무언가 돕고 싶다고. 그땐 지금보다도 더 어설픈 엉터리 영어였지만, 역시나 당시 완벽하지 않은 영어를 구사했던 돌제는 나의 말과 마음에 귀 귀울여 주었다. 어디서 그런 오지랍과 용기가 나왔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다음날 나는 터미널 옆 모모(티베트 만두) 식당에서 돌제를 만났다. 'Tibet Music Center'라는 이름으로 티베트 전통 음악 학교를 만드려는 그의 계획에 내가 디자인 작업을 맡기로 한 것이다. 마침 여행용 포토샵 프로그램(Adobe photoshop - portable Version)을 가지고 있던 다른 여행자에게 프로그램을 받아 돌제의 컴퓨터에 깔았다. 컴퓨터 성능은 프로그램을 따라가지 못했고, 클릭 한번에 몇 초씩은 정지가 되었다. 글씨체(font)를 고른다는 것은 사치였고, 일러스트레이션 프로그램이 없기에 포토샵으로 큰 이미지를 만들어 다양한 고로 타입과 플랜카드, 티셔츠와 도장 등의 디자인 작업을 간신히 간신히 해 나갔다.

@ Design by Choi Yuri 2009

@ Design by Choi Yuri 2009

@ Design by Choi Yuri 2009

맥그로드간즈에서 머무는 동안 나는 매일 동네 반장이라도 된듯 온 동네 일을 어슬렁거리며 참견하고 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숙소로 돌아와 전등 밑에서 눈을 비비며 작업을 했다. 내 작업 역사상 가장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가장 신나는 작업이기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그간의 내 어떤 일보다도 더 정성을 쏟았다. 그렇게 돌제의 컴퓨터를 빌린지 일주일이 채 안된 어느 날, 나는 오다 가다 동네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 언니와 함께 돌제 집에 모여 작업 마무리를 기념하는 쫑파티를 했다. 돌제는 양고기를 듬뿍 사다가 내가 좋아하는 모모를 직접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맥그로드 간즈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좁은 옥탑방에 모여 앉아 맛있는 레드 와인과 함께 모모를 배터지게 먹었다.

돌제네 집에서 작업 쫑파티. 레드와인을 마시고 레드페이스가 된 나


그 후로 나는 그 마을에 머무는 동안 돌제를 자주 만났다. 같이 밥을 먹기도 했고, 돌제의 공연을 다시 보러 가기도 했고, 돌제가 티베트 전통악기를 개인 교습하는 아저씨네 함께 놀러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돌제를 통해 조금이나마 이곳에 살고 있는 티베트 망명자들의 모습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돌제가 개인교습 하는 티베탄 아저씨네 집


내가 맥그로드 간즈를 떠나기로 한 며칠 전부터 돌제는 나에게 무언가 큰 보답을 하고 싶어했다. 읍내가 있는 아랫 동네에 가서 티베트 전통 의상을 맞춰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티베트란 나라의 어려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티베트 전통 음악을 이어가고 싶어하는 멋찐 청년의 영혼에 감동해 내 잉여시간을 보람있게 쓰게 된 것 뿐인데, 어느 순간 돌제는 나와의 만남을 '카르마(Karma)'로 생각하고 있었다. 티베트 의상을 맞추는 것은 꽤 비싼 비용이 들 뿐더러, 나는 그것이 '이성'의 감정으로 주는 선물로 느껴져서 점점 돌제를 피하게 되었다.

결국 떠나기 전날 밤, 나는 돌제의 연락을 거절하지 못한 채 마지막 인사를 하러 나갔다. 그마지막 인사가 내가 돌제에게 마땅히 해야 할 예의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조금은 나를 다르게 바라보는 돌제에게 어떻게 이별의 인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핑계로 쫑파티를 같이 했던 여행자 언니를 데리고 나갔다. 지난 며칠 동안 내가 돌제에게 표현했던 거부감은 곧 미안한 감정으로 바뀌기도 했으나, 인사하는 내내 이별의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돌제에게 나는 이전처럼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없었다. 결국 짧은 인사의 마지막, 돌제는 떠나는 나의 목에 까탁(Kathak, 축복을 기리는 흰 천)을 정성스레 걸어주었다. 그의 진심어린 마지막 인사에 나는 다시 만감이 교차했다.





#3
맥그로드 간즈에서 티베트 사람들을 만난 후, 한동안 나는 '티베트'라는 나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진 '티베트 사람들'에게 매료 되었다. '티베트' 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훅 하고 올라오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아마 그 곳 맥그로드 간즈에 다녀온, 혹은 티베트 사람들을 만나 본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가지게되는 감정일 것이다. 생김새가 너무도 비슷한 그네들을 보고 있노라면 티베탄들과 나와 연결된 뭔가의 끈을 찾게 되고, 그 나라의 처절한 정치적 상황을 보고 있자면 괜시리 미어저 오고, 그 안에서 평화롭되 굽히지 않은 채 저항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나'라는 존재가 아직 너무 작은 그릇 같아 한참을 숙연해 진다.

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이후로 더이상 나를 자신의 '이상형'이라 부르지 않고, '소울 시스터'라 부르는 돌제는 나에게 그냥 친구가 아닌 내 유일한 '티베탄' 친구다. 그의 티베탄 부모님은 인도에서 그를 낳았고, 그는 티베트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티베탄이며, 인도에서 티베트 전통 음악을 공부하고 널리 알리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외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한국사람들도 꽤 있다는 공장에서 일을 하며, 계속 티베트 전통 음악 작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돌제에게 티베트란 무엇일까? 돌제에게 국가란 무엇일까?


오랜만의 포스터 디자인 작업. 티베트 뮤지션 '돌제 텐징(Dorjee Tsering)'의 작은 콘서트.

토론토, 아니 캐나다에 지인이 없어 가보라고 할 사람이 없다만, 많은 사람들에게 티베트 음악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이런 청년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내 친구 돌제 개인의 삶을 바라보면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국가와 사회의 참으로 다양한 모순이 존재하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극복해 내고자 하는 작은 청년의 큰 열정도 보인다. 한 인간의 삶을 이렇게 뒤바꾸어 놓는 국가의 모습에 무기력해지다가도, 순리에 따라 이런 작은 에너지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그 알수 없는 힘(이게 바로 돌제가 자주 이야기 했던 '카르마'의 연장선 일지도)의 위대함 앞에 감동 받기도 한다. 

부디 돌제가 공연을 성공리에 잘 마쳤으면 좋겠다. 돌제의 공연에 많은 토론토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행진을 할리도 없고, 캐나다 정부가 중국에 'FREE TIBET'를 요구할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소소하게 '돌제' 혹은 '티베트'를 응원하러 모이는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의 따듯함을 함께 나누는 행복한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암 수술 후 첫번째 하는 이 공연을 통해 돌제가 계속 티베트 음악을 해 나갈 힘을 얻고, 티베트 사람들이 계속해서 굴하지 않는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돌제의 포스터를 만들면서 새롭게 알게 된 영어단어. 
'PWYC (Pay What You Can)' 쌩유 돌제 :)


<티베탄 전통 음악가, '돌제'를 소개합니다>


Traditional Tibetan music artist, Dorjee Tsering


Dorjee Tsering, a Tibetan in exile, was born in India. Like his mother, Dorjee developed a passion for traditional Tibetan music which later led him to become a Traditional Tibetan singer and folk musician. After leaving high school, Dorjee joined the Tibetan Institute for Performing Arts (TIPA) in Northern India, where he learned to play and master several traditional instruments including: the dranyen, piwang, flute, and the yang-qin. He also learned Tibetan opera, and several styles of dance. After graduating from TIPA Dorjee pursued his music career by performing throughout India, and later he opened and ran a Tibetan music school in Dharamshala, India. In more recent years Dorjee has performed at several music festivals in Europe, and across Canada. Last year he delighted North American fans by performing his well known “One Hour in Tibet” stage performance, in which he invites the audience to feel and experience the beauty of Tibetan culture, as well as the ongoing suffering of his people. Currently, Dorjee lives in Toronto, Canada where he hopes to remain to continue sharing his sublime, and exquisite culture.
https://www.facebook.com/dorjee.tsering.733
https://www.youtube.com/user/dorjeetseringus




돌제는 캐나다에 온 뒤로 살도 빠지고 머리도 짧게 잘라서 더 나이스해지긴 했지만, 난 예전의 뚱뚱하고 기름진 긴머리 휘날리던 돌제의 모습이 더 멋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돌제의 최신 곡들보다 예전 인도에서부터 부르던 티베트 전통음악이 더 맘에 든다. 요새 만든 음악은 왠지 인도 느낌이 물씬 난달까. 뮤직비디오 때문일까. ㅎㅎ

그래서 내맘대로 돌제의 티베트 전통 음악을 몇개 추천 해본다!!


1. Brithish Columbia에서 열린 Kispiox Music festival 공연
https://www.youtube.com/watch?v=85IiJeESbDU&list=UUXNSX2Z5WQCXfd9SAzxePwQ

2. 토론토의 Alexander M. 학교에서의 공연 (돌제에게 배웠던 곡!!^^)
https://www.youtube.com/watch?v=3UPUOgWlu9k&list=UUXNSX2Z5WQCXfd9SAzxePwQ

3. Dran-yean 댄스
https://www.youtube.com/watch?v=AF9qetWzLsA&list=UUXNSX2Z5WQCXfd9SAzxeP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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