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지나다니며 눈으로만 봐왔던, 우리 집 1층의 삐까번쩍한 'OCEAN BANK'에 들어갔다. 하노이에 진출한 한국 은행들(외환, 우리, 신한, 기업 은행 등)에는 한국인 간부가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한국말을 잘하는 직원도 한 명 이상 상주하지만 베트남 사설 은행인 'OCEAN BANK'에는 전혀 외국인을 위한 서비스는 없었다. 각 창구에는 큰 자가용을 직접, 혹은 기사가 운전하는 자가용을 타고 온 하노이 부자들이 한껏 멋을 내고 앉아 은행 업무를 보고 있었고,내 옆에는 머리에 기름을 잔뜩 바르고 광나는 구두를 신은 아저씨와 높은 하이힐을 신고 머리를 잔뜩 부풀린 아줌마가 앉아 있었다. 얼마전 세계에서 부자가 많아지고 있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라는 기사를 본 것이 생각났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속도로 베트남 부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는 글이었다.
일반 보통 예금 계좌를 만들기 위해 베트남어로 어찌어찌 해보려다가, 은행업무에 필요한 전문용어 앞에서 역시나 입이 턱 막혔다. 심지어 통장을 만들고 예금을 할거냐 묻는 말에, '못짬 응인(100,000) 동' 정도 넣어둘까 하는 생각에 '못짬'이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못짬 치에우(100,000,000) 동??' 하고 되묻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 확신이 들었다. 난 그렇게 부자가 아니라고요..;; 앞으로 자주 사용할 은행일테니, '기왕 하는 거 신중하게 하자'라는 생각에 영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을 찾았다.
유일하게 영어를 한다고 소개 받은 어린 남자 직원도 나도 영어 실력은 더듬 더듬 이었다. 자리를 보아하나 나이를 보아하나 분명 말단 직원임에 틀림없었지만, 내 후줄그레한 몰골과는 관계없이 어찌나 친절한지 왠지 믿음이 갔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일반 예금 통장과 현금 카드, 그리고 SMS 무료 문자 서비스까지 신청했다. 그가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는 30여분이 지났을까.. 은행이 문 닫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모든 창구는 바빴고, 내가 힐끔힐끔 쳐다보자 신입 직원은 내 눈치를 보며 여러번이고 엉덩이를 떼었다 붙였다 하며 내가 신청한 계좌 계설이 다 되었는지 담당 창구에 물으러 다녔다.
그렇게 40분이 지나고, 그 직원이 나에게 연신 웃으며 메모지 하나를 넘기며 말했다.
"여기 이 계좌번호가 당신의 번호이니, 7일 뒤에 이 종이를 들고 통장과 카드를 찾으러 오세요"
"7일 뒤에요? 오늘 통장도 못 받고요?"
"아, 아니요. 주말을 빼고 7일 입니다. 주말은 이 은행이 쉬거든요."
"아.....네....."
여전히 너무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직원에게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나왔다. 40분을 기다렸는데 종이 쪽지 하나라니, 예금 통장 하나 만들기 쉽지 않다. ㅎㅎㅎ 그럼, 9일 뒤에 봅시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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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의 기다림 끝에 겨우 받은, 계좌번호 쪽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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