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6일 금요일

졸업 사진 촬영 그리고 자전거 주차권

바야흐로 베트남에 졸업 시즌이 왔다. 졸업을 압두고 대학생들은 졸업사진을 찍느라 바쁜데 요새는 졸업 사진을 위해 옷을 사고 꾸미는 것은 물론, 학교 밖에서 특별한 컨셉으로 촬영을 하기도 한다.

오늘 아침 조금 서둘러 도착한 학교 교정에서는 역시 졸업 사진 촬영이 한창이었다. 무슨 과인지 여학생의 비율이 극단적으로 많았는데, 여학생들은 평소에는 보기 힘든 하얀 아오자이를 곱게 차려 입었고, 남학생들은 역시나 청바지에 정장 자켓을 입고 여자들의 기에 눌려 구석에 조용히 있었다. 사진 촬영은 한눈에 봐도 한껏 끼부리는(?) 세명의 훈남 오빠들이 진행을 했고, 큼직한 카메라를 들고 앉아서 가운데 서서 뻘쭘해 하는 남자 교수님과 학생들을 웃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과물이야 모르겠지만 사진가 오빠들의 허세는 정말 프로급!!

하노이 사범대 학생들의 졸업 촬영

수업 전 강의실 앞에서 이 재미난 광경을 구경하는데 바로 그때 문제가 시작되었다. 이 장면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빼려다가 학교 안에 자전거를 주차 해 놓고 받은 '주차권'을 같이 뺀 모양이었다. 주차권이 사라짐 것을 알고는 주머니와 주변을 다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고, 나는 어쩔수 없이 그냥 수업에 들어갔다. 쉬는 시간에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에게 '나 주차권 잃어 버렸는데 어째..??'라고 문의를 한 결과, 여러가지 대답 중 한 친구로부터 '주차된 것이 자차임을 증명하기 위해 아주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수업이 끝나고 주차 관리 청년에게 갔다. 나는 자전거를 찾아 나오면서 최대한 비굴한 모습으로 '나 주차권 잃어버렸는데..'라고 모기만한 소리로 그 청년에게 말했다. 정오에 가까워지는 시간, 나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땀을 뻘뻘 흘렸다.

"잘 찾아봤어요?"
"네, 없어요"
"어디서 잃어버렸는데요?"
"아마 저쯤..?"
"에이... 베트남 사람이에요?"
"아니요. 한국 사람인데요."
"글씨 쓸 수 있어요?"
"네? 아.. 조금"
"그럼 여기다 써요. 이 위에거랑 똑같이"
"아.. 네.."


청년에게 받아든 공책에는 누군가의 글이 적혀져 있었고, 자세히 읽어보니 나처럼 주차권을 잃어버린 한 소년의 글이었다. 사범대 부속 고등학교 학생이 3일 전에 쓴 것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옆에 세워둠 채, 그 학생의 글을 읽으며 한자 한자 따라 썼다. 이름, 소속, 전화번호, 차량종류, 차량 색깔을 적고, '저는 오늘 주차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자전거는 제 것이 맞습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시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등등의 글과 함께 서명까지. 반성문 아닌 반성문을 쓰고, 주차권 분실 비용 만동을 내고서야 오늘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요 며칠 느끼는 건데 베트남 사람들은 오토바이에 비해 자전거의 가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확실히 자전거의 분실 위험이나 주차 관리를 더 소홀히 하는 것 같다. 우리집 지하 주차장에 자전거의 주차비로 월 3만동을 내는데, 보통 월 주차권을 만들어 주는데 반해 자전거는 주차권 필요 없다며 그녕 저기 구석에 알아서 주차 하란다. 베트남 사람들의 생각엔 이 땡볕에 무려 3키로의 거리를 굳이 자전거 타고 다니는 내가 이해가 안될 뿐더러, 확실히 자전거를 탈때 나를 더 어린 학생으로 본다. 하지만 자전거에 대한 그 가벼운 인식 덕분에 난 오늘 오토바이 주차권 분실에 비해 쉽게 일처리가 마무리 되었다. 으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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