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7일 토요일

하노이에서 가장 조용한 집

우리 집에는 티비가 없다. 기왕 없게 된거, 왠만하면 계속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안사려고 한다. 어디 경품으로 갑자기 티비가 들어오지 않는 한은 계속 없을 것 같다. 삼십년 이상을 종일 티비 소리 들리는 집에서 살아 왔으니 혼자 빈 집에 들어와도 보지 않는 티비를 켜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뭔가 다른 할거리를 찾지 않고 자연스레 쇼파에 누워 흥미 없는 채널들을 돌리곤 했다. 그래서 심지어 할일 없이 혼자 멍 때리더라도 조금은 내 생활을 하는 다른 거리들을 찾지 않을까 싶어 티비를 집에 두지 않겠다 결심을 했다. 사실, 생선 티비라는 것을 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사본 적이 없기에, 태어날 때부터 내눈에 보였던 그 부피 큰 박스를 내 거금을 들여가며 사는 것에 불만을 품은 것도 또하나의 이유다.

우리집에 그나마 큰 소리가 들리는 경우는 세 가지 정도이다. 첫째, 주말 오전에 문군이 노트북으로 야구 방송을 틀어놓은 채 잠이 드는 시간. 둘째, 평일에 내가 기타를 치면서 고래고래 엉터리 노래를 부르는 몇십 분의 시간. 셋째, 한국에 있는 엄마와 휴대폰으로 화상 통화를 잠깐씩 할 때 인터넷 성능의 문제를 괜시리 목소리로 커버하려는 마음이 들어서인지 크게 소리지르는 잠시.

이렇게 소리 지르고 뛰어다닐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문군이랑 집에서 배드민턴이나 제기는 차 봤다. 층간 소음? 괜찮다. 여기 아파트에선 애들이 복도에서 축구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니까), 가끔 인터넷으로 라디오는 듣지만 집에 꾸준한 소리를 내 줄 티비도 없기에 우리집은 참 조용하다. 베트남 도심에서는 쉬지 않는 크락션 소리('야 임마 비켜!!' 가 아니라 '나 지나가니 조심해요'의 의미^^)와 공사소리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참 다양한 소음들이 나는데, 다행히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은 큰 도로가 아닌 작은 도로들을 향해 있어 소음이 덜하다. 그나마도 해가 지고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을 닫으면, 하노이 시내에서 이리 고요한 장소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극 고요의 상태가 된다. 조용한 하노이라 나쁘지 않다.

가끔 영화를 본다. 티비가 없기에, 비어 있는 거실 한 벽을 화면 삼아 빔을 쏴서 한밤의 영화관을 만든다. 문군의 6년차 베트남 생활동안 가장 뿌듯해하는 것이다. 빔 프로젝트. 타지에서 외로운 밤을 달래 줄 좋은 친구였던 것이다. 가끔 한쪽 벽에 크게 빔을 쏴서 무한도전도 보고, 다큐도 보고, 영화도 본다.

오늘 그 '문군 영화관'에서 본 영화 '인사이드 르윈'. 한국에서부터 상영관에 가서 보고 싶었는데, 여기에 와서 이렇게 보게 되었다. 참 좋았다. 쇼파에 누워 비몽사몽 봤지만, 영화가 끝나고 느낌이 참 좋았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한 것도 아니었고, 자극적인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르윈의 목소리가 좋았고, 음악이 좋았고, 르윈의 삶이 애처로웠지만 지극히 공감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계속 찾아 듣게 되는 OST 몇 개를 올려본다. 영화에서 르윈이 말했던 것처럼 다 비슷비슷한 음악 같은 포크송 이지만, 첫 장면부터 반하게 했던 노래부터 밥딜런의 비공개 곡까지.. 이거 참 중독이다.

Inside Llewyn Davis OST <'Five Hundred Miles' - Justin Timberlake, Carey Mulligan, Stark Sands>

Inside Llewyn Davis OST <'Hang me, Oh Hang me' Oscar Isaac>

Inside Llewyn Davis OST <'Fale Wall' - Bob Dy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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