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베트남의 응우엔 떤 쭝 총리는 베트남이 유치했던 다음 하계 아시안게임(아시아경기대회) 개최를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베트남은 2019년에 열릴 제18회 아시안게임에 지난 11년 7월 유치 신청을 하여, 12년 11월에 유치권을 따 냈었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는 "아시아게임 투자 규모와 재원 마련에 대한 커다란 이견이 존재하고 아시안게임 개최 목적과 의미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1억5000만 달러로 추산되던 개최 비용이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재정 위기, 경제 침체 영향을 받아 아시안게임을 개최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갑작스런 개최권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개최지 선정에서 29표를 얻은 베트남에 이어, 14표의 득표를 얻어 2위를 차지한 인도네시아가 개최의사를 밝혔다. 인도네시아 역시 경제적 부담을 인지하고 있으나 빠른 경제성장과 아세안 주도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자국의 위상을 감안한 행보로 보인다. 인도네시아는 1962년 제4회 아시안게임을 자카르타에서 개최한 이후 57년 만에 두 번째 개최에 나선 셈이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브라질이 월드컵 개최를 선언한 그 날부터 오늘날 까지도 브라질 국민들은 '축구는 사랑하지만, 월드컵은 사양한다'며, 고통받는 서민들을 외면한 채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브라질 정부와 FIFA를 향해 월드컵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매번 개최국이 정해지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약간의 비슷한 시위들이 벌어지지만, 이번 브라질 국민들은 정말 강한 분노를 내보이고 있다. 월드컵의 가장 큰 수혜자는 억대연봉을 받는 선수들이지, 경기장 밖에서는 구경은 커녕 각 지역의 경기장 건설로 인해 폭력적인 강제 철거를 당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브라질 국민들 말대로, 월드컵은 대체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한국에선 월드컵의 열기 때문에 세월호를 비롯한 다양한 한국사회의 이슈들이 묻힐까 걱정이 되어 '이번 월드컵을 보지 말자'라는 보이콧의 움직임도 곳곳에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응원을 하는 것이 반드시 이 어이 상실한 시국 사태들을 잊으려는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그게 정부에서 원하는 바이고, 나역시 한국인의 냄비근성이 우려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이번엔 한번 믿어보고 싶다. '잊지 않겠다'는 수많은 어른들의 말을. 근데 왠일인지 나도 이번 월드컵은 유독 관심이 안가 보지 않게 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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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베트남에서 남아공 월드컵을 맞이했었다. 우리집에는 아주아주 오래전의 선임 간사님들이 사 놓으신 후 물려 내려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치 유물같이 '뒤통수 나온 자그마한' 텔레비젼 한 대가 있었다. 심지어 그것도 고장이 나서 장식품으로 둔지 오래였는데, 월드컵을 핑계 삼아 괜히 수리를 했었다. 그런데 지지직 거리며 나오는 그 40여개의 많은 채널의 대부분은 왠일인지 '중동'의 방송으로 추정되는 채널들이었다. 심지어 '알자지라 방송'도 있었다. 거기에 베트남 정규 채널 두 세개. 그리고 정체모를 채널 두어개.
다행히 베트남 방송을 통해 우리나라 경기를 중심으로 몇개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처음에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슈가 되었던 시끄러운 '부부젤라' 소리를 들었을때,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베트남 방송 시스템을 탓했었다. 베트남 해설자와 아나운서가 중계를 한답시고 나와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다가 가끔씩 골이나 옵사이드 정도를 외쳐주고, 선수 설명은 커녕 가끔 골 잡은 선수 이름을 부르는 데도 틀린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계 화 면이 흔들리거나 끊기기도 하는 등 방송 시스템도 워낙 시원치 않았기에 난 '부부젤라' 소리가 당연히 베트남 방송 사고라고만 생각했었다. 무려 며칠 동안이나. ;;
오래된 고물 티비에서 나오는 소리가 부부젤라 소리임읗 알게 되었을때 쯤, 나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경기에 맞춰 주말 저녁, 경기 시작에 맞춰 티비를 켰다. 아주 가끔씩 한두마디 할까 말까 하는 베트남 해설자들 덕분에 거실엔 안그래도 시끄러운 부부젤라 소리만 가득 했다. 그런데 전반이 끝날 무렵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마을이 정전이 되어 나는 모든 전기가 끊긴 것이다. 껌껌한 거실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멍하니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전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후반전을 보지 못한 채, 부부젤라 소리를 다신 들을 수 없었다.
워낙 축구를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월드컵이 열리는 때만 반짝하는 한국 팬들과는 달리 평소에도 집에 늘상 축구 채널을 들어 놓는 사람들이 많다. 동남아시아 리그에서는 그래도 한때 우승을 한 적이 있을 정도지만, 사실 베트남 국가대표팀은 월드컵은 커녕 큰 규모의 여느 국제대회의 본선에 오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자국 리그보다는 매일 같이 프리미어 리그를 챙겨보고, 월드컵이라도 열릴라 치면 밤을 새서라도 모든 조의 전 경기를 빠지지 않고 본다. 베트남 어느 시골 마을에 가도 길거리에 등번호 10번의 'messi' 유니폼을 혹은 다른 유명 외국 축구선수의 유니폼(물론 베트남산 가짜 유니폼이다)을 입은 베트남 청년들을 찾는건 어렵지 않다. 또한 오토바이를 가다보면 자신이 속한 축구클럽의 유니폼을 입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축구를 즐기지 않는 여자들도 유명한 축구선수 몇명 쯤은 줄줄이 댈 수 있다. 적어도 내 몇 친구들 처럼 '메시가 뭐야? 아이스크림 이름이야? '정도의 대답은 나오질 않는다. 베트남 사람들의 축구 사랑 만큼은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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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빵집에 진열된 축구공 모양 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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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BIG-C 마트에 진열중인 월드컵 인형. 국가별 유니폼을 입고 있으나, 아쉽게도 우리 나라는 없다 ㅠㅠ |
그런 베트남에 다시 월드컵이 찾아왔다. 직원들이 새벽 다섯시에 다 함께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회사에 집합해야 한다는 문군 회사의 말도 안되는 말을 제외하고도, 우리 집 앞의 많은 카페나 맥주집들은 진작부터 큰 테레비젼 화면에 종일 월드컵 경기만 튼다. 여느 문방구나 작은 슈퍼에는 월드컵 대진표 포스터를 팔고, 시내에 있는 가게 앞에선 스크린을 펼쳐 놓고 축구를 보려는 손님을 받기도 한다. 이번엔 집에 고물 티비 조차도 없고, 왠일인지 축구에 더 관심이 안가게 되었지만, 어찌됐건 베트남에서의 월드컵은 다시 시작되었다.
브라질의 월드컵 이면의 이야기들을 하나 둘 접하면서 어쩌면 베트남이 아시안 게임을 포기한 것이 아주 잘 한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유치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포기였을텐데, 이유야 어쨌든 하노이나 호치민 등 대도시에서 이처럼 다양한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도시 사람들 말고, 아직 스포츠라는 여유를 가질 수 없는 농부들, 노동자들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베트남 인민들의 주머니 돈을 십시일반 모아 이 화려한 국제 경기를 치뤄 내기엔 베트남의 요즘은 쉽지 않다. 외국에서의 각종 투자 유치가 증가하고, 큰 고속도로가 여러개 만들어지고 있고, 국제 기차 및 도심의 지상철까지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높은 선물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얼마(기억안남) 이상의 '때'부자의 증가율이 가장 빠른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라는 한 리서치도 나왔다. 그건 다시말해 빈부 격차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란 뜻일지도. 몇년 째, 물가 상승은 엄청나게 진행되고 있고, 농부, 어부들과 도시 노동자, 그리고 소수민족들은 여전히 힘들다. 세계에 보여지고 있는 베트남과 베트남 속의 진짜 베트남은 너무나도 큰 갭이 있는 것이다.
기왕 용감하게 포기 한 거, 아시안 게임을 위해 투자유치 하려던 그것으로 베트남 서민들이 한번 더 기지개 펼 수 있도록 잘 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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