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HANOI's Scene' Project] #3_bị lạc đường đi trên trời

@Choi Yuri  /  집 앞 미싱사 골목
와다다다다... 저 골목 끝으로 달려가 고개를 들면 보이던 좁은 하늘이 사라졌다. 하노이의 벽은 높아만 갔고, 어느샌가 xi măng(시멘트)이 내 주위를 '뱅'하고 둘러쌌다. 좁은 골목, 결국 꼬마는 하늘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kết cục là bé ấy bị lạc đường đi trên trời.


2014년 11월 25일 화요일

['HANOI's Scene' Project] #2_Xanh, Sạch vì Cộng đồng

@Choi Yuri / 하노이 사범대 앞 육교 위

자주 오가던 그 육교 위가 오늘 달라져 있었다. 한켠엔 화분이 쫘악 걸려져 있고, 그 끝에는 깨끗한 쓰레기통이 있고, 그 가운데 설치된 배너에는 "푸르게, 깨끗하게. 공동체(모두)를 위하여!!" 라는 아름다운 멘트까지. 이 깨끗함이 얼마나 갈 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너무도 반가운 깨끗한 육교. 쓰레기통에 붙은 스티거로 유추컨데  암튼 훌륭한 변화같다. 하노이도 깨끗해질 수 있다. 물론 아주 천천히. ^^

"Xanh, Sạch vì Cộng đồng"

2014년 11월 23일 일요일

호떠이 (서호)의 October 카페를 가다

#1
문군이 느러지게 자느라 나는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거실의 온갖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도 하고, 집정리도 좀 했다. 왠일인지 일요일 아침공기는 상쾌하니 뭔가 다른 것만 같다. 

열한시가 넘어 스물스물 일어난 문군에게 빈 밥통의 실체를 말하자, 역시나 이때다 싶어 중국요리를 시켜 먹잔다. 음.. 중국요리는 한달에 한번 이상 안먹겠다는, 둘만의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으나, 먹은지 한달은 된 것 같으니 콜. 세트메뉴의 욕심에 못이겨 역시나 또 과하게 주문을 해 버렸다. 매번 우리가 시키는 세트메뉴에 젓가락이 세개씩 오는 걸 보니, 우리 둘이 먹은 음식은 3인분인 것 같다.


#2
어제부터 계획했던 오늘의 일정은 늦은 아점을 먹고 민속학박물관에 가는 것. 오늘은 일년에 한 번, 베트남 북부 소수민족여성의 수공예품 공정무역 사회적기업인 Craft Link에서 주최하는 소수민족 바자르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행사에 3년 전에 한번 가 봤는데, 소수민족과 관련된 전국의 여러 단체에서 모여 부스를 선보이고, 각 소수민족의 공연이나 흥미로운 참여 워크샵 등의 프로그램도 중간중간에 있었다. 게다가 이 기간 동안에는 Craft Link의 대부분의 제품을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나는 다행히도 어제 그 홍보물을 발견하고 오늘 가게 되었다. 

문군과 함께 오토바이에 오른 뒤, 확실한 주소를 찾기 위해 다시 그 홍보물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큰 실수를 깨달았다. 행사 날짜가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어제 행사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이런..


#3
우리는 급 계획을 바꾸어 UNIS(UN International School)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역시 오늘 국제하노이여성클럽 (IHWC)에서 주최하는 큰 바자르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처음 가 본 UNIS는 어마무시하게 큰 학교였다. 호떠이(서호) 옆에 붙은 신도시 지구 안에 위치하기도 했고,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학생들이 다니기 때문에 분위기 역시 다른 국제학교들과는 사뭇 달랐다. 학교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입장 표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섰다. 뭔가 이 체계적인 시스템에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쯤, 우리 앞의 앞 사람이 구매하려는 순간 표를 팔던 스탭 아줌마로부터 허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딱 만장을 출력했는데 지금 표가 다 팔렸어요. 규정상 만명 이상은 입장권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오늘은 제대로 꼬인 날인가 보다. 내키보다 훨씬 높은 천막으로 된 바자르 벽을 둘러봤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뾰죽한 수는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바자르에 내가 만나고 싶은 수 많은 엔지오와 사회적기업들이 부스를 차렸단다. 너무 아.깝.다... ㅠㅠ


#4
허망함과 섭섭함을 뒤로 하고 호떠이를 찾았다. 오토바이가 생기고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이다. 마음만 먹으면 차비 걱정 없이, 동선 걱정 없이 호떠이나 호앙끼엠 등 시내를 마음껏 오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드라이브를 마치고 우연히 찾은 이쁜 스튜디오 카페. 11월 어느 날에 만난 10월의 카페. 조용히 앉아 있으니 한바탕 해프닝이 별거 아닌듯 싶다.





9


   

  

2014년 11월 22일 토요일

+ 나의 베트남 여행 목록

그간 돌아다녔던 나의 베트남 여행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사진은 틈틈히 곳곳에 올려 놓았고, 글은 이곳 저곳에 써 놓았으나 아직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리진 못했다. 모든 여행기가 그렇하듯, 돌아오자마자 쓸 수 있는 그 순간을 놓치면 나중에 쓰기란 더 어렵다. 틈틈히 정리해서 올리겠다. 베트남 여행기만이라도.





나의 베트남 여행기
_계속 여행 중이니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 예정이겠죠?


<2010년>
201002 

Ha Noi

201003 

Ha Noi

201003 

Hoa Binh

201004 

Mt. BaVi <베트남-바비산> 하늘과 바람과 산과 바비우유 한 모금


201004 
Sapa <베트남-사파> 사파행 버스 - 
Bac Ha 


201005 
Ha Dong Silk Village


201007 
Ha Long Bay


201008 
Ha Long Bay - 
Ha Noi - 
Da Nang - 
Hoi An - 
Ha Noi 

201009 

HCMC - 
Tay Ninh - 
Muine <베트남-무이네> 내 이름은 '띠(Ti)'에요 - 
Na Trang <베트남-나짱> 나짱 옷 스러운, 나짱 옷과 같은...
              <베트남-나짱> 고독한 할아버지 여행자
              <베트남-나짱> 공정 다이빙에 대한 생각_ '다이빙 보트' 위에서 -

Da Lat - 
Na Trang


201010 
Da Nang - 
Quang Ngai - 
Hoi An - 
Da Nang

201010 

Da Nang - 
Quang Ngai - 
HCMC - 
Quang Ngai - 
Da Nang - 
Hoi An - 
Da Nang - 
Ha Noi

201011 

Mai Chau <베트남-마이쩌우>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201011 

Bat Trang Craft Village

201012 

Mt. Phang Xi Pang - 
Sapa

201012 

Mai Chau




<2011년>

201101 
Mai Chau

201102 

Hue <베트남-후에> 특명, 하노이에서 벗어나라
       <베트남-후에> 귀찮아
       <베트남-후에> '여행'과 '혼자'의 상관관계
       <베트남-후에> '방향인식불가능병' 환자의 달려라 오토바이


201103 

Quang Ngai - 
Da Nang - 
Quang Nam

201104 

Huong Pagoda

201104 

Quang Ngai -
Da Nang

201104 

Hai Phong

201105 

Mai Chau

201106 

Mr.Tam Dao

201108 

DaNang -
Quang Nam - 
Da Nang

201108 

Phu Quoc - 
HCMC - 
Vinh Long -
Con Tho -
HCMC

201110 

Ha Giang

201110 

Mai Chau

201111 

Ha Noi

201112 

Son Tay - 
Ha Noi

201112 

Ha Noi




<2012년>

201201 
Ha Noi

201202 

Cau Treo (Border to Laos) - 
Vinh

201202 

HCMC - 
ChauDoc - 
SongTien (Border to Cambodia)

201202 

HCMC - 
Buon Ma Tuot - 
KonTum - 
DaNang - 
Ha Noi

201203 

Mai Chau - 
MocChau - 
Mai Chau - 
Na Meo (Border to Laos)


201208 
Mai Chau - 
Ha Noi

201212 
Ha Noi



<2013년>

201301 
HCMC - 
Ha Noi - 
Mai Chau - 
Ha Noi - 
Quang Tri - 
Ha Noi (to Luang Prabang, Laos)

201302
Phu Quoc -
HCMC -
Ha Noi

201304 
HCMC - 
Cu Chi - 
Ca Mau - 
Lam Dong - 
Quang Ngai -
Hoi An - 
Hue - 
Quang Tri - 
Ha Noi - 
Mai Chau - 
Ha Noi (to Luang Prabang, Laos)



<2014년>

201404 
Mai Chau

201405 
Trang An

201406 
Mt.Cuc Phuong

201407 
Binh Phuc

201408 
Mai Chau - 
Moc Chau - 
Son La - 
Dien Bien Phu

201410 
Quang Tri

201411 
Thanh Hoa


2014년 11월 21일 금요일

[Thanh Hoa] 불편한 진실, '1대1 아동결연 사업'을 만나다 (1)_

*시작하기에 앞서 특정한 단체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 다수의 한국 국제개발협력 엔지오들이 하고 있는 '1대1 아동 결연 사업'에 대한 속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글쓴이의 의도를 이해 바랍니다.


베트남어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일을 했었다는 이유만으로, 베트남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도 따듯한 환대를 주신 보육원 스텝들. 선생님이자 엄마이자 멘토 역할을 하는 스텝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은 내가 아는 그 어느 기관 중에서도 제일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이 분들은 나와 함께 있는 이틀의 시간 내내 '당신이 와주어서 너무 즐겁다'는 말로 6시간 버스 이동의 피로를 싸악 녹게 해 주었다.   @Choi Yuri


얘기치 못했던 큰 환대와 무환 애정을 받고 돌아오는 여정. 학교에서 한 달여간 배운 베트남어보다 이틀간 보육원에서 만난 직원들, 아이들, 주민들과 더 많은 베트남어를 했다. 이렇게 길 위에서 더 잘 배우는 내가 굳이 책상 앞에 앉으려는 건 정말 욕심인 것인가도 싶다.

사실 내가 이번에 이곳을 더 가고 싶었던 이유는 '후원자와 아동을 일대일로 매칭 시켜준다는 '일대일 아동결연 사업'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후원자의 마음을 비교적 쉽게 끌 수 있는 방법이기에 실제로 많은 국제개발협력 엔지오에서 큰 사업 중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약 70%의 한국 엔지오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오래전 첫 월급을 받았을때 '한X야씨 열풍'에 휩쓸려 아프리카에 있는 한 아이의 결연후원을 시작 했었다. 그러나 이 바닥에 발을 담근 뒤로, 그것이 절대 좋은 후원의 방법만은 아님을 알게되었다. 후원 받을 아이들 사진을 늘어놓고 기부자가 고르는 위치에 있는 것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고, 그 마을, 혹은 학교 안에서의 후원 받지 못하는 아이의 소외됨 역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한 가정의 형제 중에 누구는 후원을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하는 사례들도 접하게 되었다. 정기적으로 후원자에게 보내지는 아이의 사진과 그림과 편지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어떠한 과정이 걸쳐지는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내 손에 오게 된 까만 피부의, 놀란 눈을 가진 아이의 사진과 메세지들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순간 나는 큰 마음을 먹고 기부를 끊고 다른 방식의 후원으로 변경하였다. 나 역시 기부를 끊을때, 내가 만약 멈추면 아이의 식사와 학업이 당장이라도 멈춰질 것만 같아서 죄스럽고 미안했다. 하지만 엔지오에서 홍보하는 내용들 처럼 내가 후원하는 그 돈의 100%가 몽땅 그 아이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후원이 끊긴다고 아이에게 돌아가는 지원이 뚝 멈출리도 없는 것이다. 만약 그런 시스템이라면 이건 정말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 *


나는 이렇게 1대1 아동결연을 반대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지만, 아직도 많은 단체들은 기본적으로 결연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몸담고 있었던 단체는 '한 아이에게 주는 지원보다 가족이, 혹은 마을이 함께 지속적으로 잘 사는 것이 더 필요하다'라는 생각으로 역시 아동결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에, 나는 실제로 그 현장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기회가 되어 다른 단체에서 각 마을의 결연 아동에게 지원을 하는 날에 함께 따라가보게 되었다.

이 날은 오전, 오후 통틀어 총 다섯개 마을을 가게 되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미리 준비해 둔, 봉투에 든 5만동(2,500원 상당)과 쌀 15kg 한 포대, 치약, 과자, 세제 등 생필품을 담은 선물 봉지 하나를 한달에 한번 각 마을의 인민위원회, 혹은 마을 회관에 모인 아동들에게 전달을 하는 것이다. 부모 중 한명, 혹은 할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도 있었으며, 혼자, 혹은 형제와 함께 온 아이도 있었다. 대부분 큼직한 자전거를 끌고 오지만, 간혹 밖에서 기다리는 형제, 혹은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기다리기도 한다. 만약 직접 오지 못한 경우, 이달의 지원 내역은 다음 달로 누적 이월된다. 실제로 이날 못 만났던 아이들이 몇 있었는데, 후원아동이 두 명뿐인 한 마을에선 조금 멀리 떨어진 산 위에 집이 있고, 정신 이상인 아버지, 오빠와 함께 지낸다는 한 여자아이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인민위원회 직원과 혼자 자전거를 끌고 온 나머지 한 여자아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아이의 안부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한 곳에 모이면 테이블에 뺑 둘러앉아 명단이 적힌 종이를 돌린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기 이름을 찾아 서명을 한다. 초등학교에 이제 막 들어갔다는 아이는 간신히 자기 이름을 찾아 펜을 꽉 쥐어잡아 꾹꾹 눌러가며 자기 이름을 쓰고, 한창 멋부린 사춘기 청소년들 역시 후딱 서명을 마친다. 함께 온 어른들은 멀찌감치 의자에 앉아 지켜본다.

명단을 적은 아이들은 바로 문 밖으로 나가 한명씩 사진을 찍고 들어온다. 아주 소수의 아이들을 빼 놓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얼굴 가까이 내민 카메라 랜즈를 보며 긴장한 눈치다. 이 사진들은 후원 아동 관리용, 혹은 후원자에게 보낼 용도일텐데, 순간 내가 처음 후원했던 그 아이의 똥그랗게 긴장된 눈도 이렇게 찍혀 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복잡해졌다. 사무실 내 책상 앞에 놓은 아이의 인적사항 적힌 사진 카드를 보고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괜히 으쓱해졌던 내 과거가 정말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이 모두 사진을 찍고 들어와 다시 한자리에 모이면, 지원금이 담긴 봉투를 각각 전달하고 그달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들어보니 이곳에서는 일년 열두달 중에 두 달은 후원자에게 편지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있고, 나머지는 추석, 설, 연말.. 등의 명절 프로그램을 같이 하고, 나머지 한 두달은 이렇게 오늘처럼 함께 영상을 보거나 한단다.

정말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느껴지는 담당 직원 anh은 오늘 닉부이치치의 짧은 영상 두개를 준비해 왔다. 처음엔 팔 다리 없는 닉부이치치의 모습에 아이들도 어른들도 그저 신기한 듯 웃거나 당황해 했지만, 닉부이치치의 이야기가 늘어 갈수록 모두들 진지해 진다. 그가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높은 곳에서 다이빙 하는 장면을 볼땐 아이들의 짧은 환호가 들리기도 했다. 영상을 본 후 Anh 은 아이들에게 소감을 묻고, 닉이 팔다리가 없지만 뭘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아이들 자신이 닉 보다 더 가진 것은 무엇인지 대답을 이끌어냈다.

어떤 마을에선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중도 잘하고, 직원이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는 데 반해, 어떤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엎드려져 있거나 잡담을 하고, 질문에는 꿀먹은 벙어리에 눈도 잘 못마주친다. 연유를 찾아보니 후원 아이들을 선정하는 마을 인민위원회마다 선정기준이 다른 것이다. 어떤 마을은 빈곤 계층 중에 공부를 잘 하는 순으로 주고, 어떤 마을은 하위 빈곤 계층부터 순서대로 아이들을 선정한 것 같다.

각 마을에서 30분여간(오늘은 이례적으로 프로그램이 짧은 날이란다)의 결연활동이 끝나고, 모두 밖으로 나와 차에 실었던 쌀과 선물보따리를 받아간다. 대부분 타고온 큼직한 자전거 뒤에 싣고 가지만, 간혹 밖에서 기다리는 형제, 혹은 친구의 오토바이에 지원품을 실어 가기도 한다.

_ (2)화에 계속

2014년 11월 20일 목요일

[Thanh Hoa] 베트남의 스승의 날

어젯 밤 열시 십분, 미친듯이 달리던 버스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휑한 1번 국도변에서 나를 내려줬다. 마중 나온 활동가 동생을 따라 마을 인민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인 '냐 응이(Nha Nghi, 여인숙쯤 되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묶었다. 동생 녀석이 미리 말해둔 턱에 가져온 tam chu(땀쭈, 베트남에서 숙박을 할땐 어디든 여권이나 이 거주증을 맡겨야 한다)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아니 꺼내 보여줄 카운터나 관리인 따위 없었다. 너무 늦은 탓인지 인민위원회 뒷편의 큰 게스트 하우스에 인기척이라곤 없었고, 어둠속에서 나를 맞이하는 건 큰 개 세마리의 으르렁 거림 뿐이었다.. ㄷㄷㄷ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인 오늘, 동생이 활동하는 보육원에 가서 직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선물 보따리를 차에 가득 실은 차를 타고 5개 마을 탐방이 시작되었다. 하노이에서 출장온 직원 anh과 활동가 동생, 지역 DOLISA 공무원 아저씨, 왕년에 경찰이었다던 운전기사 아저씨, 그리고 마침 학교가 쉬는 날(스승의 날) 센터에 남아 있던 보육원 아이들 몇명이 따라나섰다.



마을에 도착하니 인민위원회 바로 옆의 마을문화회관 건물에선 시끌벅쩍 행사가 한창이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학교 측에서 주최한 아이들의 공연이 있었는데, 마을 유치원의 코흘리개 미취학 아동들부터 제법 잘 짜여진 공연을 선보인 중학생 들까지.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베트남 전통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는데,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얼굴에 분칠을 하고 화려한 장식들을 했다. 








재밌는 것은 분명 모인 사람들 모두 베트남 주류 민족인 낑족(비엣족)임에도 불구하고 소수민족 의상을 입고 전통 춤을 흉내내는 것. 물론 전통적인 의상이나 춤과는 조금 다르게 변형되었지만, 베트남의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런 학교 행사때 마다 소수민족 전통 의상과 춤을 접할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길거리마다 꽃을 사려는 아이들 천지다. 천정부지지로 오른 꽃값이지만 주머니에서 너도 나도 쌈지돈을 꺼낸다. 아이들의 돈은 한정되었다만 그래도 어떻게 좀 더 예쁘고 큰 꽃을 살 수 없을까 머리들을 굴려본다.



스승의 날에 학교는 분명 쉬지만 선생님들은 여기저기서 찾아온 학생들을 맞이하느라 바뻐 보인다. 물론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같은 동네, 혹은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기에 가능하기도 하다. 학교 근처엔 방황하는 아이들이 천지다. 꽃다발 증정 행사를 마치고 삼삼 오오 모여 길거리에서 놀 궁리를 한다.이 금쪽같은 학생들만의 휴일, 학교는 쉬지만 다들 집에는 가기 싫은 모양이다. 그리고 옛 스승을 찾아오는 기특한 베트남 청년들도 간혹 보인다.


2014년 11월 19일 수요일

[Thanh Hoa] 오랜만의 버스 여행

내일은 베트남 스승의 날이다. 얼마전에 있었던 베트남 여성의 날처럼 길거리엔 꽃을 파는 노점들이 늘어서고, 학교에선 학생들이 (조금 과하다 싶도록) 정성을 모아 거대한 꽃다발이나 조화 꽃 장식을 스승에게 선물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번주에도 선생님이 베트남어 수업을 또 쉰단다. 몇주 째 주 하루씩만 수업 하는 중.. ㅠㅠ

Quang Binh(꽝빙)성이 고향인 친구가 휴가를 받았으니 집에 같이 가자고 해서 계획을 세웠었으나, 갑자기 집에 사정이 생겨 다음으로 미뤘다. 지난 Quang Tri(꽝찌)성 여행에서 역시 (내 수많은 여행 역사에서 한번도 없었던) 4인실 침대칸 기차 탑승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을 아쉬워 했기에, 이번엔 문군이 직원에게 부탁해 며칠 전에 미리 표를 사주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흑흑 ㅠㅠ 4인실 침대칸 기차는 나와 연이 아닌가보다.

갑자기 생긴 긴 연휴 (백수가 무슨 연휴가 따로 있겠냐만은)를 어찌 보낼까 하다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Thanh Hoa(타잉화)성에 가기로 했다. 역시 그쪽에 있는 엔지오 활동가 동생에게 급 연락을 하고 미딩터미널에서 버스를 잡아타고 가는 길.

4인실 기차여행과 맞바꾼 침대 버스 안, 다행히 자리가 많이 남아 2층 창가의, 원하는 침대 의자에 착석(?)을 했는데 역시나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출발한다'는 베트남 차장 아저씨의 말은 한번도 지켜진 적 없는 희대의 거짓말..!! 하지만 몁십번을 속아도 믿게된다. 믿고 싶은 거겠지.. ㅎㅎ

그렇게 한참을 정차해 있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내 앞자리 한 베트남 여학생이 노트와 펜을 들어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한참을 부동 자세로 그리고 또 그린다. 내 첫 여행이 생각난다. 나도 예전엔 그림 많이 그렸었는데..


자, 이제 다섯 시간만 자자. 모두 굳밤~